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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팔경(驪州八景)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5

여주팔경(驪州八景)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5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21.08.2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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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신문_여주세종문화재단 공동기획 여주문화유산_6

얼마 전에 여주시 여강(驪江) 강변인 여주초등학교 뒤편 청심루(淸心樓)터 표지석이 있는 곳에 여주의 예술가들이 여주팔경(驪州八景)을 표현한 작품을 설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사언시(四言詩)를 두고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지금 여주시청 홈페이지에는 ‘아름다운 여주팔경과 함께 즐거움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여주팔경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신륵모종(神勒暮鍾)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
2. 마암어등(馬巖漁燈) 마암앞 강가에 고기잡이배의 등불 밝히는 풍경
3. 학동모연(鶴洞暮煙) 강건너 학동에 저녁밥 짓는 연기
4. 연탄귀범(燕灘歸帆) 강여울에 돛단배 귀가하는 모습
5. 양도낙안(洋島落雁) 양섬에 기러기 떼 내리는 모습
6. 팔수장림(八藪長林) 오학리 강변의 무성한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7. 이릉두견(二陵杜鵑) 영릉과 녕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8. 파사과우(婆娑過雨)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
』입니다.

우선 한 말씀드리자면 여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소개한 여주팔경(驪州八景)의 제5경 ‘양도낙안(洋島落雁)’은 ‘양도낙안(羊島落雁)’를 잘못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의 주제는 이 여덟 풍경인데, 여주팔경(驪州八景) 중 ‘제7경 이릉두견(二陵杜鵑) 영릉과 녕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라고 것을 두고 이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학(漢學) 전문가인 한 분이 여주팔경은 전체가 하나의 시(詩)로 ‘이릉두견(二陵杜鵑)’은 요즘 말로 ‘라임’이 맞질 않는다며 ‘이릉청풍(二陵淸風)’ 즉, ‘영릉과 녕릉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이라고 하는 것을 제안하면서 작은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주시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 시험문제에도 나오는 것인데 틀리게 쓰면 안된다”는 주장을 펼쳐, 결국은 ‘이릉두견(二陵杜鵑)’으로 안내판을 설치했답니다.

이게 맞는 것인지는 필자로서도 확정할 수 없으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께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제가 쓴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공미술 여주를 그리다’를 통해 설치된 여주팔경 조형작품은 (“청심루”에서 여주팔경을 사색하다)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여주시와 여주세종문화재단이 주관한 사업으로 작가팀은 한국미술협회 여주지회와 여주민예총이 공동으로 작품기획과 제작을 진행했다(사진- 이장호)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공미술 여주를 그리다’를 통해 설치된 여주팔경 조형작품은 (“청심루”에서 여주팔경을 사색하다)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여주시와 여주세종문화재단이 주관한 사업으로 작가팀은 한국미술협회 여주지회와 여주민예총이 공동으로 작품기획과 제작을 진행했다(사진- 이장호)

 

■ 여주팔영(驪州八詠)

여주 풍경의 아름다움을 휘감은 것은 여강(驪江)이다. 조선의 서거정(徐居正, 1420년, 세종 2~1488년, 성종 19)은 “여강의 물은 월악(月嶽)에서 나와 달천(達川)과 합하여 금탄(金灘)이 되고, 앙암(仰巖)을 지나서 섬수(蟾水)를 만나 세찬 물줄기가 점차 넓어져 여강이 된다. 휘감아 돌고 소리 내며 흐르니 매우 맑아 아낄 만하다”라고 하였다. -사우당기(四友堂記)

그리고 그 여강(驪江) 가에 지어진 누대인 청심루(淸心樓)와 그 맞은 편에 넓게 펼쳐진 팔대수(八大藪)는 평양 연광정의 장림, 진주 촉석루의 죽림, 밀양 영남루의 율림, 울산 태화루의 죽림 등과 같이 누각과 숲이 어울린 아름다운 경관으로 고려와 조선 묵객(墨客)들의 사랑을 받았다. 

고려와 조선의 수많은 시문(詩文)의 주제가 된 여주팔경과 청심루는 가히 여주를 ‘고려와 조선 문학예술의 보물창고’로 만든 일등 공신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거정은 ‘여주팔영(驪州八詠)’을 △여강(驪江) △나룻배(渡舟) △팔대수(八大藪) △벽사(甓寺, 신륵사) △마암(馬巖) △영릉(英陵) △청심루(淸心樓) △연사(烟寺)로 노래했다. -한국고전번역원, 사가시집보유(四佳詩集補遺三)

서거정의 여주팔영(驪州八詠) 중 청심루(淸心樓)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높은 누각은 내 마음 맑게하고(樓高淸我心)
청심루 아래 강물은 흘러간다(其下有流水)
푸르고 맑아서 침을 뱉을 수 없지만(綠淨不可唾)
마음의 근심을 씻을 만하네(可以滌心累)
산천은 서로 얽히고설켜(山川欝相繆)
천리를 지나 만리에 뻗혔네(千里又萬里)
망치로 황학루를 부쉈다는(槌碎黃鶴樓)
비유 말에 나는 부끄러웠다(比語我曾恥)
호기가 당당했던 노련한 원룡은(豪哉老元龍)
바른 행실로 세속을 초월했다(擧擧蛻塵滓)

※황학루를 망치로 부순다는 말은 이태백이 위남능에게 주는 시에서 “내가 황학루를 부술 것이니 그대가 앵무주를 없애주게(醉後答丁十八以詩譏余槌碎黃鶴樓)”에서 나온 말이다.
※원룡(元龍):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진등(陳登)을 말한다.  유비가 서주목에 임명되자, 막관(幕官)에 임명됐고, 여포가 서주를 탈취한 후에는 비밀리에 조조에게 권하기를 여포를 일찍 없애는 것이 좋다고 했다.

-여주시사의 ‘자연과 역사: 여강(驪江)’을 다듬었다.

 

최숙정(崔淑精, 1433년(세종 15)~ 1480년(성종 11))은 서거정의 ‘여주팔영’을 차운(次韻)해 △여강(驪江) △나룻배(渡舟) △팔대수(八大藪) △벽사(甓寺, 신륵사) △마암(馬巖) △영릉(英陵) △청심루(淸心樓) △연촌(煙村)으로 노래했다. - 소요재집(逍遙齋集), 한국고전번역원 

□ 최숙정의 여주팔영(驪州八詠) 중 여강(驪江) 

강에 오던 비 잠깐 맑게 갰는데 / 江雨乍晴霽
강물은 갑자기 불어났구나 / 江水忽已滿
바람 부니 주름무늬 길게 퍼지고 / 風回縠紋長
해 뜨니 고기비늘 흩어지누나 / 日出魚鱗散
세상의 때는 아직 못 씻었으나 / 世累雖未湔
때 묻은 갓끈이나마 씻을 수 있네 / 塵纓聊可澣
하얀 갈매기는 본래 일 없어 / 白鷗本無事
무리 지어 맑고 따스한 하늘 노니네 / 群飛戱淸暖
어찌하면 얽매임을 벗어 버리고 / 何當謝拘束
호호탕탕 너희들과 벗이 될거나 / 浩蕩爲爾伴

-손성필 (역). 2019. 한국고전번역원. 원전: 동국여지지

김안국(金安國)의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 부분 - 모재선생집(慕齋先生集),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김안국(金安國)의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 부분 - 모재선생집(慕齋先生集),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팔영(八詠) 그리고 10영(十詠)과 16영(十六詠)

아름다운 풍경 여덟을 꼽아 노래하는 팔영(八詠)으로는 부족했는지 조문수(曺文秀. 1590년,선조 23, ~ 1647년,인조 25)는 청심루에서 바라본 청기정십영(淸奇亭十詠)을 읇었고, 김안국(金安國. 1478년, 성종 9~ 1543년, 중종38)과 신광한(申光漢. 1484년, 성종 15 ~ 1555년, 명종 10)은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을 노래했다. 각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조문수의 청기정십영(淸奇亭十詠)

△마암잔조(馬巖殘照) 마암의 저녁 노을
△용문제설(龍門霽雪) 눈이 그쳐 맑게 갠 용문산
△패수홍옆(貝藪紅葉) 단풍이 핀 패다수의 풍경
△입악청송(笠岳靑松) 입암의 푸른 소나무
△청심명월(淸心明月) 청심루의 밝은 달
△신륵소종(神勒疎鍾) 신륵사의 새벽 종소리
△오시취연(梧市炊煙) 오동나무마을의 밥짓는 연기
△이촌어화(梨村漁火) 이촌의 고깃배가 밝힌 불빛
△연탄귀범(燕灘歸帆) 제비여울에서 돌아가는 돛단배
△양도낙안(羊島落鴈) 양섬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

 

□ 김안국의 이호16경(梨湖十六景)

영릉서애(英陵瑞靄) 여릉의 상서로운 아지랑이
패수평초(具藪平楚) 패다수의 평평한 숲
치악부람(雉嶽浮嵐) 치악산에 뜬 푸른 기운
용문층취(龍門層翠) 비취색이 층층 쌓인 용문산
남지상연(南池賞蓮) 남쪽 못에서 연꽃을 감상하고
북야심매(北野尋梅) 북쪽 농막에서 매화를 찾아
반기설음(盤磯楔飮) 물가 반석에서 계제(제사) 술 마시고 
파성답청(婆城踏靑) 파사성의 파릇한 풀을 밟으며
장흥설려(長興雪驢) 장흥에서 눈 속에 나귀를 타고
교연우사(交淵雨蓑) 도롱이입고 비 오는 연못을 가고
대야운가(大野耘歌) 넓은 들에서 김매는 소리
두천목적(豆川牧笛) 두천에서 부는 목동의 젓대 소리
양진연수(楊津煙樹) 양화진의 연기와 나무
이호월정(梨湖月艇) 이호의 달과 고깃배
입포풍범(笠浦風帆) 삿갓 포구의 돛단배
환탄어화(丸灘漁火) 환탄 여울의 고기잡이 불

-모재선생집(慕齋先生集),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신광한의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은 김안국의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과 순서와 사언(四言) 자구가 조금 다른 것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영릉서애(英陵瑞靄) △패수평초(貝藪平楚) △치악부람(雉岳浮嵐) △용문층취(龍門層翠) △이호월정(梨湖月艇) △양진연수(楊津煙樹) △교연우사(交淵雨蓑) △장흥설려(長興雪驢) △반기계음(盤磯禊飮) △고성답청(姑城踏靑) △대야운가(大野耘歌) △두천목적(豆川牧笛) △남지상연(南池賞蓮) △북서심매(北墅尋梅) △환탄어화(丸灘漁火) △입포풍범(笠浦風帆)-기재집(企齋集),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진짜 ‘여주팔경(驪州八景)’은?

오랜 동안 여주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여주팔경이 다시 눈길을 끈 것은 2010년 7월 취임한 당시 김춘석 여주군수가 간부회의에서 “즉석에서 여주8경을 쓰라”는 시험을 보게 한 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다. 시험을 치른 간부 공무원들 중 곤혹스러운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후 2012년 6월 여주군은 외계수 옆(새능 재실 동쪽 강변)에 ‘옛 여주팔경 6경인 입암층암(笠岩層岩) 부활’을 홍보하고, 같은 해 8월 27일 향토유적 제21호로 지정했다.

여주시가 예산을 들여 옛 여주팔경 중 하나를 복원했지만, 입암층암(笠岩層岩)은 여주팔경에 설 자리가 없었다. 사실상 열외 된 제6경이 된 것이다.

앞에서 여주팔경(驪州八景) 작품을 두고 일어난 작은 소동을 소개드렸지만, 당시 공무원의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

여주시청 홈페이지에 소개 된 ‘여주팔경’
여주시청 홈페이지에 소개 된 ‘여주팔경’

 

현재 여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여주팔경(驪州八景)은 △신륵모종(神勒暮鍾) △마암어등(馬巖漁燈) △학동모연(鶴洞暮煙) △연탄귀범(燕灘歸帆) △양도낙안(洋島落雁) △팔수장림(八藪長林) △이릉두견(二陵杜鵑) △파사과우(婆娑過雨)로 소개하고 있다.

여주군. 1982. (문화유적 – 내 고장 전통 가꾸기)의 ‘여주팔경’
여주군. 1982. (문화유적 – 내 고장 전통 가꾸기)의 ‘여주팔경’

 

하지만 지난 1982년 당시 여주군이 발간한 <문화유적 –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는 여주팔경(驪州八景)을 △신륵모종(神勒暮鍾) △마암어등(馬巖漁燈) △학동모연(鶴洞暮煙) △연탄귀범(燕灘帰帆) △양도낙안(羊島落雁) △파사과우(婆娑過雨) △이릉청풍(二陵淸風) △팔수장림(八藪長林) 순서로 소개하고 ‘이릉청풍(二陵淸風) 대신에 이릉두견(二陵杜鵑)이라고 한 곳도 있다’고 적고 있다.

여주팔경(驪州八景)의 순서는 제1경부터 5경까지는 지금 여주시청 홈페이지와 같으나 제6경과 제8경이 지금과 다른 순서로 적혀있다. 물론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최근 40여년 사이에도 이렇게 바뀌었는데 그 전에는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여주신문_여주세종문화재단 공동기획 여주문화유산_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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