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주팔경(驪州八景)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6

여주팔경(驪州八景)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6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21.08.31 12:59
  • 수정 2021.09.07 07:38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주신문_여주세종문화재단 공동기획 여주문화유산_7

여지도(輿地圖 古4709-68-v.1-6) 일부. 지도위의 팔경 표시는 필자가 편집 (규장각 소장)
여지도(輿地圖 古4709-68-v.1-6) 일부. 지도위의 팔경 표시는 필자가 편집 (규장각 소장)

지금까지 여주팔경(驪州八景)에 대해 그동안 필자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들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여러 번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짧은 식견으로 이런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습니다. 또 앞서 여러 훌륭하신 선생님들과 선배들께서, 또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계신 분들께서도 이 주제로 이야기를 전했던 터라 내심 고민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덜컥 이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우리 여주에 대해 우리 아이들은 잘 모르고 있다는 현실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입니다.

어떤 부분은 사실에 입각한 증명을 하기 어려운 주장도 간혹 있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자료가 부족했고 필자의 배움이 부족하기에 어떤 부분은 미약한 사실에 필자의 상상력을 보태서 쓴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쓴 글이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또는 다른 지역에 사는 많은 분들이 우리 여주가 가진 다양하고 품격있는 역사와 문화예술의 고장임을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필자의 글에서 사실과 다르거나, 필자가 바르게 알지 못하고 쓴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시면 바로잡아 제대로 전달하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지승(地乘 奎15423-v.1-6) 일부. 지도위의 팔경 표시는 필자가 편집 (규장각 소장)
지승(地乘 奎15423-v.1-6) 일부. 지도위의 팔경 표시는 필자가 편집 (규장각 소장)

 

■ 여주팔경(驪州八景)의 무대는 청심루(淸心樓)

앞서 밝혔듯이 우리가 흔히 여주팔경(驪州八景)이라고 하는 여주의 여덟 풍경을 노래한 팔영시(八詠詩)만 해도 200여수가 넘는다고 한다. 팔영(八詠)만 하더라도 이러한데 여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문(詩文)을 일일이 소개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주의 아름다움을 직접 노래한 시뿐 아니라, 당시 교분이 있던 사람의 시(詩)를 차운(次韻)하여 지은 것도 상당히 많다.

앞서 소개한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을 지은 김안국(金安國)이  벼슬을 그만두고 여주(驪州)에 세운 범사정(泛槎亭)을  두고 지은 시에 화답한 것으로 관포시집(灌圃詩集)에 전하는 어득강(魚得江 1470년.성종 1~ 1550년.명종 5)의 <범사정(泛槎亭)> 주제만 간략히 소개한다.

어득강(魚得江)의 "범사정(泛槎亭)", 관포시집(灌圃詩集), 한국고전번역원
어득강(魚得江)의 "범사정(泛槎亭)", 관포시집(灌圃詩集), 한국고전번역원

 

△영릉서애(英陵瑞靄) △천녕폐현(川寧廢縣) △용문층취(龍門層翠) △치악부람(雉岳浮嵐) △이호월정(梨湖月艇) △반기계음(盤磯禊飮) △장흥설려(長興雪驢) △두천목적(豆川牧笛) △입포풍범(笠浦風帆) △환탄어화(丸灘漁火) △남지상연(南池賞蓮) △북서심매(北墅尋梅)

어득강(魚得江)은 김안국(金安國)의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 중 12 주제로 지은 이 시(詩)와 함께 <여주를 지나며(過驪州)>라는 시(詩)도 관포시집(灌圃詩集)에 전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여주팔경(驪州八景)이라고 하는 정형이 생기기 전, 여주의 풍광을 8경 또는 10경, 12경이나 16경으로 지은 시문(詩文)들은 다양했다. 

1724 해동지도(海東地圖 古大4709-41-v.1-8) 일부. 지도위의 팔경 표시는 필자가 편집 (규장각 소장)
1724 해동지도(海東地圖 古大4709-41-v.1-8) 일부. 지도위의 팔경 표시는 필자가 편집 (규장각 소장)

그리고 그것이 애초 여주라는 지역 전체에 대한 경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글을 지은 이들이 풍경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바라본 풍경에 대한 시(詩)라는 것이다.

「여주팔영이나 여주팔경은 읍치팔경(邑治八景)이라기 보다는 일정한 시점이 정해진 정자팔경(亭子八景)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호의 침류정과 여주의 청심루 등 남한강 주변에 조영된 누정은 금사와 여주의 핵심적 승경처로서 누정제영시 창작을 위한 시상(詩想)의 무대가 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 노재현(2011). 팔경시와 고지도에 투영된 여주팔경의 전승양상. 한국전통조경학회지. 29(1): p21.

여주팔영(驪州八詠) 또는 여주팔경(驪州八景) 창작의 무대는 여강(驪江)에 있는 청심루(淸心樓)가 무대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청심루가 없는 여주팔경은 결국 미완의 제영시(題詠詩)일 수밖에 없다.

■ 시문(詩文)과 고지도(古地圖)의 여주팔경

이색(李穡)의 금사팔영(金沙八詠)으로 대표되는 옛 천령현(川寧縣)에서 바라 본 금사지역 제영시는 1469년 여흥도호부가 여주목으로 승격하면서 천령현(川寧縣)을 통합한 후에도 김안국(金安國 1478~ 1543)의 금사팔영(金沙八詠)과 같은 작품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시문(詩文)을 통한 활동은 당시의 지도에도 반영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앞서 소개했듯이 지금의 여주팔경이 있기까지는 <금사팔영(金沙八詠)>과 <여주팔영(驪州八詠)>, <청기정십영(淸奇亭十詠)> 그리고 여지도(輿地圖) 등 고지도(古地圖)의 기록과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 나타난 사언(四言)이 변화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록들을 시간대별로 구분하면 ▲이색(李穡. 1328~ 1396) <금사팔영(金沙八詠)>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여주팔영(驪州八詠)> ▷최숙정(崔淑精. 1433~ 1480) <여주팔영(驪州八詠)> ▷김안국(金安國 1478~ 1543) <금사팔영(金沙八詠)> ▷김안국(金安國)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 ▷신광한(申光漢. 1484 ~1555) <금사팔영(金沙八詠)> ▷어득강(魚得江. 1470~ 1550) <범사정(泛槎亭)> ▷신광한(申光漢)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 ▷조문수(曺文秀 1590~ 1647) <청기정십영(淸奇亭十詠)> 순서로 정리할 수 있다. (인물의 태어난 순서로 정리한 것이며, 어득강(魚得江)의 범사정(泛槎亭)은 김안국(金安國)의 이호십육영(梨湖十六詠)의 차운(次韻)임을 밝히고 있어 뒤에 배열했다. 절대적 순서는 아님을 밝혀둔다.)

1737 광여도(廣輿圖 古4790-58) 일부. 지도위의 팔경 표시는 필자가 편집 (규장각 소장)
1737 광여도(廣輿圖 古4790-58) 일부. 지도위의 팔경 표시는 필자가 편집 (규장각 소장)

 

우선 연대를 알 수 없는 팔경(八景)이 기록된 고지도(古地圖)는 규장각 한국한연구원의 △여지도(輿地圖. 古4709-68-v.1-6)와 △지승(地乘. 奎15423-v.1-6),  ▷1724년 해동지도(海東地圖. 古大4709-41-v.1-8) ▷1737년 광여도(廣輿圖. 古4790-58) ▷1760년 여지도서(輿地圖書. 奎17368)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