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밥에 고깃국

이밥에 고깃국

  • 기자명 조대현(본사 객원논설위원)
  • 입력 2009.06.12 11:34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주초등학교 앞에 심긴 이팝나무가로수가 하얀 꽃잎을 열었다. 꽃핀 모습이 흰 쌀밥이 가득 담긴 밥그릇 같다고 하여 이팝나무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가 쑥을 뜯어다 쑥 버무리와 쑥 개떡을 만들었다. 앵두가 붉어지고 보리가 익을 무렵은 양식이 떨어져 굶주림이 극에 달하던 일명 ‘보리 고개’이다. 덜 여문 감자를 비집고, 밀 이삭을 불에 굽고 아카시아를 먹으며, 하얗게 핀 꽃도 쌀밥에 비유될 만큼 어렵던 시절! 거친 음식이지만 밀기울과 보릿겨로 만든 개떡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던 가장 좋은 먹 거리였고, 이나마 넉넉히 먹을 수 있다면 행복했다. 이 시절 장작불을 지펴 등 따시고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 지상 최고의 낙이고 소망이었다. ‘반소사음수하고 곡굉이 침지라도 낙역재기중이요 불의이 부차귀고 어아여부운이라’(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 ‘나물밥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삼아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나니, 옳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한낱 뜬구름과 같다’라는 논어 술이 편에 나오는 이 고시(古詩)는, 굶주림을 산야의 나물로 연명하던 그때 끼니조차 이어가기 어렵던 선비들이 마음의 위로로 삼기도 하였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에 의하면 백제 온조왕은 궁궐을 지으면서 “화려하지만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한 데 이르지 않아야”(新作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한다는 상량문을 적어 대들보를 올리고 검소하게 지었다고 했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 구전하는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가 생활의 본보기로 삼고 간직해야 할 정신이 아닐까 한다. 먹거리가 넘쳐나고 끼니를 거르는 이웃을 위해 사회 여러 곳에서 지원과 봉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넉넉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때일수록 이 고사는 우리사회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TV프로그램에서 ‘닥치는 대로 살아라!’라는 사훈이 소개되는 것을 관심을 가지고 시청하였다. 중소기업체 한 NGO가 어머님이 유언하신 말씀을 사훈으로 정하여 열심히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내용을 ‘있다, 없다’라는 주제로 방영한 것이다. 이 내용을 처음 접하였을 때 다소 의아하기도 하였으나, 현실에 슬기롭게 적응하면서 내일의 설계와 꿈을 키워가는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기업인의 신선한 인생여정 이야기는, 일확천금의 재화와 무소불위의 권력에 도취되어 있는 사회의 모습과는 다른 내용으로 세인의 관심을 불러올 수 있는 신선한 방송 주제였다. 재화(財貨)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수적인 수단이고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거나 성공의 잦대가 될 수 없다. 자기의 입지와 여건에 맞는 목표를 정하여 거기에다 단계를 더 높이는 꿈과 이상을 펼치면서, 그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과에 만족함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요즈음 화폐의 단위가 높아지고 물가가 올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억 단위의 재화를 쉽게 이야기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하루가 8만6400초이고 1년이 3천1백53만6천초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 초당 1원씩 100년간 저축을 하여야 31억5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모아진다는 계산이고 보면, 1억원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시체말로 장난이 아니다. 미국의 대재벌인 워렌 버핏과 점심식사 1끼를 함께 하는 기회가 경매에 붙여져 6억원에 낙찰된 사례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에 환원되어 사용되었다. 이것이 미국사회의 저력이고 우리가 따라 익혀야 할 기풍이다. 우리주변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는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사건들이 대부분 수십억을 넘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단위라는 TV방송 때문에, 오랜만에 별미로 맛보려 만든 쑥버무리와 쑥 개떡 맛과 흥취만 망쳐놓아 아쉽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