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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세상의 나날

개 같은 세상의 나날

  • 기자명 이상국(본사 객원논설위원)
  • 입력 2009.04.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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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터져 나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100만 불, 500만 불 운운에 대하여 국민들은 우울을 넘어 이 더러운 세상에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겨울 ‘태백산맥’을 읽었다. 읽으면서 좌경화 일변도 아닌가하고 의구 했지만, 기실 우리나라 근대사가 그러했다는 사실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평생 배우고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던 이념이며 긍지며 자존은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 내가 배운 것들, 내가 정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허구이며, 의리며 강철 같은 맹세들은 허깨비에 불과한 것들이 아닌가. 그날, 그날이 내겐 개 같은 세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인이 미전향 공산주의자란 몰매에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하라는 말이냐”로 되받아쳐 빼앗긴 기선을 되찾아 승기를 만들던 날, 머릿속 번개 스치듯 번쩍하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 오늘은 “그 돈 아내가 받은 것이고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하니 6, 7년 전의 그 신선했던 충격에 대한 반사적 배신감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야할 대통령이 한갓 모리배로 추락한 꼴이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는 것조차 나라 망신시키는 것만 같아 부끄럽고 창피한 게 아니라 오히려 막힌 속 뻥 뚫리는 것만 같아 시원하니 어인 심사일까. 국가안위 노심초사하던 애국애족의 도덕군자 연하던 내가 하루아침 저자거리에 내팽개쳐진 망나니로 변한 것은 아닐까. 그의 대통령 임기 내내, 말 많고 좌충우돌 단 하루 편할 날이 없던 날들에 대한 반사적 카타르시스일까. 이 미친 세상에 국민의 일원으로서의 나도 개 같이 변해 버린 것은 아닌지. 며칠 전 김영삼 전 대통령도 쓸 만한 말 한 마디를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인공위성을 날리는 것도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0년 세월동안 무작정 퍼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무작정 퍼주기 돈으로 인하여 돈 속에 든 견고한 인격에 대한 무차별적이며 성역과 오역(惡域)의 구별을 망각한 막강한 파괴력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전직 세무공무원으로 돈 받아먹고 파면당한 자기 형을 농사나 짓는 필부필부이며 이 필부에 불과한 자기 형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 갖다 바치는 운운으로 한 가장의 목숨을 앗아갔으면서도 모른 체 돌아선 대통령에게 과연 사람 냄새조차 나는지 사람 사는 세상에 찾아가 큼큼 거려 보고도 싶다. 내가 공직으로 있을 때 얘기다. 설이나 추석, 명절 때면 어김없이 상급기관에서 하급기관인 여주군청이나 읍면사무소 공무원들이 선물 주고 받나 조사차 나와 장기 암행 감사를 하곤 했다. 그 감사 기능에 대해 긍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기들 큰돈 먹는 거 안 보이게 작은 거 먹는 조무래기를 쫓아다니며 연막탄 터트려 혹세무민하는 꼴로만 보였다. 그런데 그 모호하고 불확정적 생각이 자명한 일로 들어난 꼴이니 대통령, 고위 공직자, 정치인들이 받아먹고 걸리면 패가망신이고 아니면 땅땅땅 배불리는 것. 그 뇌물로 패가망신도 요즘은 옛날처럼 낯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아버님 기왕에 파면 당할 거 크게 먹고 나오시지” “글쎄말이다. 아예 크게 놀걸 그 정도에 쫓겨나올 거란 생각은 못했지” 어느 여인이 뇌물로 파면당한 그녀의 시아버지와의 대화다. 이 가족, 지금 몰락한 가정도 낙인찍혀 표시난 장사꾼도 아니다. 매일 매일 스쳐 지나치는 우리들 이웃 중에 하나라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아는 스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왜 그렇게 늙었냐고 묻는다. 공무원 출신들은 그리 늙지 않던데. 나요. 나는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무슨 고생. 공무원이야 중노동을 하나. 고생이라면, 마음고생이겠지. 마음고생? 맞아. 주는 돈 안 받아먹는 거, 고통이지. 그 고통의 연속선상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내가 대견하고, 이렇게 핑계 댈 이유가 있어 행복하다. 주는 돈 안 받아먹는 고통을 견뎌내지 못한 대통령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일까. 아직 끝나지 않은 전직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자. 이 개 같은 나날들의 하루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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