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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대한 생각

길에 대한 생각

  • 기자명 추성칠(본사 객원논설위원)
  • 입력 2009.02.1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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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동양에서 이와 가까운 용어는 도(道)이다. 길은 삶의 한가운데 있고 여러 사람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다. 글자모양은 착( )과 수(首)의 회의문자로 착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걸어가는 모습이고, 수는 머리로 ‘도’란 걸으며 생각하는 것이다. 여주는 예전부터 서울을 오가는 과거길이었다. 여강의 청심루는 유명한 누각으로 오가는 과객과 문인들이 많은 글을 남겼다. 이곡, 이색, 김종직, 서거정, 이황, 유성룡, 송시열 등 당대 유명인사들이 선호하던 곳이었다. 영남에서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는 문경, 죽령, 추풍령 등을 지나는데 과거를 보려는 사람들은 꼭 문경(聞慶)을 거치려 했다. 영주, 삼척, 울진 등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죽령을 넘는 것이 빠른 길이다. 유생들이 돌아가더라도 한사코 문경을 고집한 것은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다.’ 는 뜻 때문이었다. 문경은 고려시대에 문희(聞喜)라 불렸다. 공민왕이 홍건적에 쫓길 때 고려군이 적을 무찔렀다는 기쁜 소식을 새재에서 들으면서 이름을 문희로 바꾸었고 조선시대에 문경으로 변하였다. 죽령과 추풍령을 기피한 것은 죽령은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뜻인 탓이다. 영남유생들이 이름 때문에 자주 넘었던 곳이 또 있다. 문경을 지나지 못하고 추풍령으로 가야할 때에는 되도록 추풍령의 남쪽 고개인 괘방령을 넘었다. 괘방령은 ‘방(榜)에 이름이 걸린다’는 뜻으로 급제자의 명단에 든다는 것을 유생들은 좋아했던 것이다. 길의 다른 의미 중의 하나는 바로 발자취이다. 발자취는 살아온 방식이다. 눈길에서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걸어 온 곳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경거망동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구선생은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밤에 눈길을 밟으며 가도 어지러이 갈 수 없나니, 지금 나의 길이 후인들의 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조심스러운가. 후세의 사람들은 선인들의 길을 따라 가려한다. 미끄러운 눈길이라도 함부로 걷지 않겠다는 선각자의 모습이 선명하다. 할아버지를 모욕한 죄로 부끄러워 평생 삿갓을 썼던 김병연의 시 **설경은 시각과 청각을 아우른다. ‘날아오니 조각조각 삼월 나비요, 밟아보니 소리소리 유월의 개구리로다’ 눈이 내리는 날 하늘을 쳐다보고 눈길을 걸어보라. 이청준의 소설 ‘눈길’은 다시 읽어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남의 손에 넘어간 집에서 아들에게 저녁밥을 지어 먹이고, 옷궤를 놓아 옛날의 분위기를 되찾게 만들고, 아들이 걸어간 눈길을 따라 돌아가면서 잘못 키웠다는 자책에 젖는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상이다. 눈길을 걸으면 자꾸 미끄러진다. 삶에서 미끄러짐은 더 나가기 위한 원동력이다. 넘어지면 일어나 되돌아본다. 그래야 이유를 안다. 우리가 국제통화기금의 원조를 받은 것은 주변을 되돌아보지 않고 달려간 때문이다.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생각하는 것도 미끄러짐 때문이다. 중국의 개혁자 루쉰(魯迅)은 소설 ‘고향’에서 희망이란 본래 있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길이 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여주는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조건을 가진 물류 중심지로 변하고 있다. 한반도의 중심지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요소는 물론 도로와 멋진 강을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어떤 지자체에서 ***원효(元曉) 트레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科擧)여행도 구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서산대사의 선시 踏雪夜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김병연의 설경 飛來片片三月蝶, 踏去聲聲六月蛙, 寒將不去多言雪, 醉惑以留更進杯 ***원효 트레일(Trail) 원효대사가 당나라에 갈 때 거쳐 간 경주에서 평택까지의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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