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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능력의 폭정을 이기기 위한 겸손”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능력의 폭정을 이기기 위한 겸손”

  • 기자명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 입력 2023.07.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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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두 나라가 있습니다. 두 나라 다 재산과 소득에서 똑같은 수준으로 불평등합니다. 국민 소득 13만원당 부유층 20퍼센트는 8만원을 가져가고, 빈곤층 20퍼센트는 2천 6백원밖에 못 가져갑니다. 소득 하위 50퍼센트는 17,000원만 벌고, 이는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소득(26,000원)보다 못합니다. 재산의 불평등 정도는 이보다 더합니다. 대개는 이런 사회를 불평등한 사회라 짐작하기 쉽습니다. “이 두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구나”(187쪽)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 나라는 신분제를 전제로 한 봉건 귀족정이며, 소득과 재산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느냐에 달려 있고,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사회입니다. 양반 집안에 태어난 사람은 부유하며, 농민이나 노비의 자식이면 가난을 면치 못합니다. 그들의 자녀도, 자녀의 자녀도 똑같은 운명입니다.

다른 한 나라는 능력주의 사회입니다. 현재 미국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재산과 소득은 세습 특권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각자의 노력과 재능에 따라 얻게 됩니다. ‘아메리카 드림’― 기회의 땅에서 열심히 배우고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이 있는 사회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사회가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거의 다 능력주의 사회가 봉건 귀족정 사회보다 낫다고 말하실 겁니다. 출생에 따라 계급을 정하는 귀족정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실 테니까요.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각자 가진 재능과 창의력으로 지금의 조건을 낫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이런 가정을 해보죠. 태어나기 전에 내가 취상위층이 될지 취하위층이 될지 처음부터 알고 있다고 하죠. 여러분이 부자라면, 또는 가난한 사람이라면 앞서 두 사회 중 어느 곳에 태어나고 싶으십니까? 잊으시면 안 되는 게 두 나라의 불평등 정도는 똑같이 심하다는 점입니다. 답은 뻔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부자라면, 나는 나의 부와 특권을 내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귀족정 나라를 선택할 것입니다. 반면 ‘내’가 가난하다면 나 자신 또는 내 자손들이 사회적 상승 기회를 갖을 수 있는 능력주의 사회를 선호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이클 샌델은, “소득과 재산만이 우리가 고려할 전부는 아니”(189쪽)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두 경우 모두 정반대로 생각할 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부 또는 가난은 각각의 사회적 지위와 자부심을 상징한다는 점 말이다. 귀족정 체제에서 상류계급 집안에 태어났다면 자신의 특권이 큰 행운임을(스스로의 성취가 아니라) 인식할 것이다. 한편 능력주의가 허용하는 최정상까지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으로 치고 올라갔다면, 자신의 성공은 물려받은 게 아니라 쟁취한 것임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귀족적 특권과 달리 능력주의적 성공은 스스로의 자리를 얻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런 관점에서 부자가 된다면 귀족제에서보다 능력주의 체제에서가 더 낫다.”(189쪽 ~ 190쪽)

능력주의는, “인종이나 출신 계층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 재능과 노력이 허락하는 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회가 정말로 평등하다면 꼭대기에 선 사람은 그 성공과 관련된 보상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145쪽)는 약속입니다. 미국 사회를 닮은 한국 사회 또한 능력주의가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입니다.

노력과 선도적 시도, 재능에 후하게 보상하는 체제는 사회적 부에 대한 각각의 기여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보상하는 체제나 정실주의로 정해진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체제보다 더 생산적일 것입니다. 오직 각자의 능력대로만 보상하는 시스템은 공정성을 갖습니다. 오로지 실제 성취만으로 사람들이 구별될 뿐, 다른 어떤 기준으로도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내’가 얻은 부와 명성은 ‘나’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입니다. 사실 이것이 능력주의의 기본 명제입니다. 힘써 일해서 내가 소득과 재산,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었으며, ‘나’는 “그러한 ‘취득의 자격’이 있”습니다. ‘나’의 “성공은 미덕의 증표”며,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이상 105쪽)입니다.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은 “통제 불가능한 요인(가령 인종, 출신계층, 성별)에 근거한 보상이나 박탈은 부당하다”(52쪽)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은 가족의 경제․사회적 배경, 본인의 일정한 재능의 소유(또는 결여)를 순전히 자기의 몫으로 봐도 되는 것인지 질문합니다.

샌델은 ‘SAT’를 예로 듭니다. 미국 대학 위원회(College Board)가 주관하는 SAT는 계층과 가문이 아니라 학업 성적(능력)만으로 학생을 뽑겠다는 이유로 실시된 대학 입학 능력 평가시험입니다. 샌델은 미국의 대학 입시, 특히 명문대에 대한 입학이 과열되면서 명문대 입학생들 중 부유층 자녀들이 저소득층 자녀보다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합니다. “경쟁이 심한 대학 학생들 대부분은 부유한 가정 출신이다. 아주 소수만이 저소득층 출신이며, 가장 경쟁률이 높은 미국 100개 대학 재학생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이 소득분위 상위 사분의 일 가정 출신이다. 겨우 3퍼센트만이 하위 사분의 일 출신이다.”(263쪽)

마이클 샌델은 개인의 성공은 ‘우연과 행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들은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영광을 오롯이 누릴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부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샌델에 따르면, 승자는 패자를 ‘무능력자’로 깔보며, 패자 또한 자신의 ‘불행’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합니다. 샌델이 우려하는 것은 이런 승자의 오만과 경멸, 패자의 자책과 좌절이 지속됨에 따라 사회 구성원간 공동체 의식이 크게 약화된다는 점입니다. 능력(주의)의 폭정으로 인해 시민들간 연대가 단절되고 부정의(不正義)한 통치가 조장된다는 겁니다.

샌델은 사람들이 능력주의에 대해 불평하는 건 보통 그 이상(理想)에 대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불평이다. 부유하고 유력한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들의 특권을 영구화하고, 전문적인 계급은 자신들의 유리함을 자녀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능력주의를 세습 귀족제로 탈바꿈시킨다. 대학들은 능력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고 하면서 부자와 인맥 좋은 사람들의 자녀를 유리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불평등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신화이며 아직 실현되지 못한 공허한 약속이다.”(196쪽)

사회적 상승에만 집중하는 것은 능력주의로 인해 성공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조롱을 받고 스스로 굴욕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샌델은 “실직자들의 고통은 다만 소득이 없다는 데서 나오지 않으며 그들이 공동선에 기여할 길이 막혔다는 데서도 비롯된다.”(320쪽)고 말합니다.

샌델은 중도 좌․우파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지배 엘리층에 대한, 능력주의에 희생된 루저(loser)들의 분노가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샌델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 강화 등 공동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능력주의를 사회의 주요 의제로 설정하고 논쟁을 통해 개선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샌델은 능력주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겸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 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또한 샌델은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는 겸손함이 우리를 갈라 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 도서정보

『공정하다는 착각, The Tyranny of Merit』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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