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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정의에 대한 질문”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정의에 대한 질문”

  • 기자명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 입력 2023.06.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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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정의’, 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만 그렇다면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요?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복지의 극대화’, ‘선택의 자유(자유방임과 공정성)’, ‘미덕과 좋은 삶’ 등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정의의 본질에 대해 질문합니다.

우선 영국의 도덕 철학자이자 법 개혁가인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해 말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용으로 합니다. 벤담에 따르면, “‘공리’를 극대화하는 행위는 무엇이든 옳”으며,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이나 불행을 막는 일체를 의미”(이상 63쪽)합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군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원형 경기장에 사자와 기독교인들을 함께 풀어 놓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사자에게 물어뜯기고 잡아먹힐 때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집단적 쾌감을 느낍니다. 공리주의자들의 주장대로라면 다수가 많은 행복을 느낀다면, 기독교인들의 처참한 죽음과 상관없이 이런 행위는 ‘정의’가 될 것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정의’라는 것은, 행복을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샌델은, 공리주의의 이러한 논리가 “사실이라면 도덕은 결국 비용과 이익을 계산하는 것에 불과하다.”(70쪽)고 말합니다.

우리가 보편적 인권을 믿는다면 공리주의자는 아닐 것입니다. 샌델은, “모든 인간이 그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면, 단순히 집단적 행복의 도구로 취급되는 것은 옳지 않”(161쪽)다고 말합니다.

공리주의와 다른 편에 위치한 자유주의 진영 중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내가 내 몸, 내 생명, 나라는 인간을 소유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것으로 무엇을 하든 내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 개인에게는 자유라는 기본권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한, 우리는 자신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98쪽)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 또한 자기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자유시장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가령, 모병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에서 “나라를 위해 이라크에서 무기를 든 사람들 대부분이 도시 빈민 지역이나 시골 출신”(134쪽)이라고 합니다.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자유가 제한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의 자유나 소비자의 선택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칸트의 말에 따르면, “도덕은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흥미, 바람, 욕구 기호 같은 경험적 요인에게 기반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가변적이고 우연적이어서 보편적 도덕 원칙, 예를 들어 보편적 인권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이상 166쪽)합니다.

칸트는 우리는 이성적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지녔다고 말합니다. 도덕(정의)이란 행복의 극대화나 그 밖의 어떤 목적과도 무관하며,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칸트는,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가 유용하다거나 편리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는, 의무 동기에서 비롯될 때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칸트는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의무 동기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에게 어떤 의무가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172쪽)습니다.

칸트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며, 의무, 자율, 정언 명령을 강조했다면, 존 롤스는 ‘평등’의 관점에서 정의를 바라봅니다. 롤스는 “소득과 기회의 분배는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임의적 요소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230쪽)고 말합니다. 출생, 사회적 혹은 경제적 이점,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 등이 롤스가 말한 임의적 요소입니다.

롤스는 기회 균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자유시장에서는 소득과 부가 공정하게(정의롭게) 배분된다고 볼 수 없다고 여깁니다. 롤스는 ‘차등의 원칙’을 말합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최소수혜자’에게 최대 이득이 되는 경우에만 허용되고, 모든 사람에게는 공정한 기회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롤스는 능력주의가 임의적 요소로 인한 부당한 이점을 어느 정도 상쇄하기는 하지만 정의롭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을 애써 같은 출발선에 세우더라도 타고난 재능과 그 재능을 요구하는 사회적 상황 등에 따라 부와 소득의 배분이 결정되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칸트와 롤스는 정의에 대한 기준을 달리 제시했지만, 두 사람 모두 인간의 권리가 공동선에 앞선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실현은 “좋은 시민, 좋은 인격을 키우는 데 있다”(353쪽)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해당 사회적 행위의 텔로스(telos) 즉, 목적, 목표, 핵심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었고, 때문에 “정치의 목적은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288쪽)이었습니다.

칸트와 롤스와 같은 자유주의 정의론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목적론적 정의론을 우려했습니다. 자유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텔로스에 따라 좋은 인격을 형성하거나 좋은 삶을 규정하려 든다면, 사람들에게 타인의 가치를 강요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개인을 스스로 자기 목적을 선택할 능력을 가진 자유롭고 독립된 자아로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생각이 좀 다릅니다. 샌델은 정의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샌델은 “선(좋음)에 대해 사유할 때 우리 정체성의 근원인 공동체의 선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 중립을 갈망하는 태도는 잘못 되었을 수 있다. 좋은 삶을 생각해 보지 않고 정의를 생각하기를 불가능하거나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354쪽)고 말합니다.

앞서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접근법을 탐구하고, 질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중 샌델은 스스로 “세 번째 방식을 선호”(379쪽)한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방식이란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가야 해서입니다. 샌들은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개입”하며, “정의는 올바른 분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이상 381쪽)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샌델에 따르면, 시민의식, 희생, 봉사, 시장의 도덕적 한계, 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샌델은 당연하게도 정의의 정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예화(例話)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그 질문들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의’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 도서정보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와이즈베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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