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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뒤틀린 아름다움이 드러내는 진실”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뒤틀린 아름다움이 드러내는 진실”

  • 기자명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 입력 2023.06.13 10:17
  • 수정 2023.06.1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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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악취미들』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동물농장』, 『1984』를 쓴,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를 통해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 네 가지를 말합니다.

우선 ‘순전한 이기심’으로 글을 쓴다는 겁니다. 일종의 허영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남들한테 똑똑해 보이고 싶고, 타인에게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글쓰기의 동인(動因)이 된다는 것이죠. 

‘미학적 열정’으로 글을 쓰기도 합니다. 보기에 빼어난 자연, 사물, 형상 등을 글에 담기 위해 씁니다. 또한, 언어의 선택과 배열, 그리고 언어가 축조하는 구조 자체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것도 미학적 열정에 해당합니다. 

‘역사적 충동’이 글쓰기의 연료로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자(記者)의 글쓰기가 그렇습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기록하는 것이 기자의 글쓰기니까요.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가 있습니다. 이때 ‘정치’의 의미는 폭이 넓습니다.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입니다.

오웰은 글쓰기 동기를 이렇게 구분하고 있지만, 제 생각에는 문학작품 대개는, 각 동기의 정도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네 가지 원료가 혼합돼 쓰이는 것 같습니다.

김도언의 소설집『악취미들』의 경우에는 제겐 미학적 열정이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보여주는 ‘미(美)’즉, 아름다움은 낯선 아름다움입니다. 일그러지고 뒤틀린 아름다움입니다. 어둡고 눅눅한 아름다움입니다.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쉽게 공감하기 힘듭니다. “동생의 주검을 앞에 두고 동생의 여자에게서 성욕을 느끼는 인물”(19쪽, <권태>), 택시에 탄 손님에게 아내와의 매춘을 주선하는 택시기사(<택시 드라이버>), 질투 때문에 친아들을 살해한 왕년의 스타 배우(<톱스타 살인사건 전말기>). ― 이들을 포함해 이 작품집에 수록된 10편의 단편소설 주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무언가를 잃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매미는 울었고 우는 것들을 깨워, 우는 것들이 함께 우는 밤이 계속되”고, “수도는 여전히 누수 상태”로 이들의 “삶도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서 어딘가로 새나가고 있는 상태입니다.”(이상 34쪽, <권태>)

이들은 상처와 위악과 광기를 “이제 그것들을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그것들을 전부 비워내고 고요하고 가벼워지길 원합니다.”(95쪽. <택시 드라이버>)

“서늘한 밤하늘을 새처럼 날아”서 “어느 골목의 굴뚝에 앉아 젖은 날개를 접어놓기를 바랍니다”(이상 255쪽. <밤하늘은 호수다>)면, 그 시간은 으깨지거나 유예됩니다.

작가는 이처럼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75쪽. <택시 드라이버>) 남루한 영혼들의 욕망과 상처, 열패감, 슬픔 등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쩌면 자기 자신(의 일부)이랄 수 있는 인물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이 불온한 영혼들의 순수한 모습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보면 『악취미들』안에 있는 몇몇 작품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소설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권태>의 경우 죽은 동생의 직업이 시인이고, <고통의 관리>의 ‘박성호’의 직업은 소설가입니다. <잔혹>의 ‘나’는 화가고, <밤하늘은 호수다>의 ‘나’는 시인 지망생입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지향과 허위 등에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고통의 관리>에서 술에 취한 소설가 박성호는 친구 종규와의 통화에서 “사실 소설가들에게는 이 세계에 대한, 이 시대에 대한 막중한 책무가 있단 말야. 현실이 은폐하고 있는 진실을 캐내서 보여줘야 하는 게 소설가라는 존재”(108쪽)라고 말합니다. “소설가는, 작가는 그 시대의 마지막 양심이라고 생각”(109쪽) 한다고 말합니다. 이혼한 전 부인과 통화에서는 “난 내힘으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어. 내 문장으로, 내 글로, 내 소설로 응 너도 알잖아. 그래, 그런데 난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고, 혁명도 하지 못하고, 다만 타락만 했을 뿐야. 그 절망으로 인해 난 망가져버린 거야”(115쪽)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 말들은 박성호의 허세와 구차한 자기변명에 불과합니다. 그가 이혼한 것은 아내의 친구와 바람이 나서였고, 술에 취한 채 밤늦게 후배 작가에게 전화해 지분거립니다. 출판사 사장에게 전화해서 책을 내게 해 달라고 하고, 유명 평론가에게 전화해서 자기 작품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합니다. 대학에서 전임 강사로 자리를 잡게 된 대학 동기에게 전화해서는 악담을 퍼붓습니다. 박성호는 자기 연민에 허우적대면서 위선적 행태를 보입니다. 박성호가 술에 못이겨 잠든 사이 박성호의 영혼이 “첫눈처럼 시리도록 맑을 거라고 생각”(124쪽)하는 한 팬으로부터 음성 메시지가 하나 도착합니다. 내용의 골자는 존경하는 선생님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문학(예술)가와 이런 허위를 알지 못하는 독자. 이 우스꽝스러운 불균형을 통해 작가는 문학(예술)의 진정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태>라는 작품에서는 ‘나’의 하나뿐인 동생 ‘청’이 죽습니다. 천재 시인으로 불렸던 청은 심야극장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은 요절한 천재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의 미발표 원고들을 손에 넣고 싶어 안달합니다. ‘나’는 청의 아내인 ‘홍’에 사랑 또는 욕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나’에게 자정에 넘은 시간에 낯선 여자가 전화를 걸어옵니다. ‘수’라는 여자는 ‘청’의 정부(情婦)였습니다. ‘수’라는 여자를 통해 알게 됩니다. ‘청’이 ‘수’라는 여자에게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했다는 것을요. 시, 라는 고결한(?) 예술에 복무했던 동생이 실제로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일삼았다는 사실은 우상(偶像)의 허망함, 문학(예술)의 허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악취미들』은, 뒤틀린 아름다움과 허울뿐인 문학(예술)의 민낯을 드러냄으로써, 되려 예술과 삶의 진실의 일면에 다다르려는 작가의 애씀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갖가지 욕망과 수치 등의 치명적인 양상을 그려냄으로써 삶과 문학에 대한 아름다움과 진실에 대해 환기시키고, 질문하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악취미들』은 오웰식으로 정의하자면, ‘미학적 열정’과 ‘정치적 목적’에 추동돼 집필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삶과 문학(예술)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한 편의 시(詩)와 같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서늘한 밤하늘을 새처럼 날아볼 수 없을까. 이를테면 까마귀처럼 어둠에 섞여 아무도 모르게 지치도록 날다가 어느 골목의 굴뚝에 앉아 젖은 날개를 접어놓을 수는 없을까. 어둠에 대해서만 말하는 까마귀의 침묵이 순정한 이유는 새벽의 검은 하늘을 날아보았기 때문일 거야. 누대에 걸친 그 숱한 야유와 경멸을 그가 견디는 것도 검은 하늘이 알려준 고독의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255쪽)

저자 김도언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돼 소설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2년에는 계간 「시인세계」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최근에 낸 시집으로는 『가능한 토마토와 불가능한 토요일』(문학세계사, 2022년)이 있습니다.

 

■ 도서정보

『악취미들』

김도언 지음

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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