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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다”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다”

  • 기자명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 입력 2023.06.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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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넛지, Nudge』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남성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남자용 소변기 중앙 부분에 파리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볼일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파리에 집중하게 돼 자연스럽게 목표물인 파리를 향해 소변을 보게 됩니다. 남성 소변기에 가짜 파리를 붙인 것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에서 시작했습니다. 소변기기에 가짜 파리를 붙여서 소변이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80%나 줄일 수 있었습니다.

가짜 파리 그림처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넛지’라고 합니다. 영어로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넛지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의미합니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비교적 유연하며 비(非)강제적인 유형의 개입주의라고 할 수 있”(20쪽)습니다. 선택을 강제하거나, 혹은 차단하지 않으며 선택하는 사람에게 심각한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20쪽)닙니다. 가령 마트에서 정크 푸드 진열을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닙니다. 일테면 건강에 좋은 음식을 소비자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하는 것이 넛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넛지의 전제는 인간은 온전히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통 경제학은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으로 설정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한다고 정의합니다.

저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웁니다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분들 중에 술과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다 알고 계시지 않나요? 인간이 (완벽히) 합리적이라면, 술과 담배 소비량은 줄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WHO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 사람들의 연간 알콜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인 5.8리터를 훌쩍 넘는 8.7리터로 한국은 술 많이 마시는 나라에 속합니다.

우리는 잘 압니다. 인간은 유혹 앞에서 종종 무릎 꿇는다는 것을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갖가지 선택들에 대해 일일이 깊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냉정한 상태일 때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욕망과 행동이 흥분의 ‘영향력에 들 때’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 올바로 이해하지 못”(73쪽)하고, 자기 통제에 실패합니다.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는 직감(관)인 시스템1과 집중과 노력이 필요한 시스템2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다만, 직감(관)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 시스템2가 자주 작동돼야 하지만 시스템2는 이를 힘들어하고 귀찮아 합니다. 리차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에서 시스템1을 ‘자동시스템’으로, 시스템2를 ‘숙고 시스템’으로 설명합니다. 각각의 기능은 대니얼 카너먼의 경우와 같습니다.

탈러와 선스타인도 대니얼 카너먼과 마찬가지로 전통 경제학의 인간 ― 호모 이코노미쿠스 ― 을 ‘이콘(Econ)’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콘이 아닌 사람을 ‘인간(Human)’이라 말합니다. 탈러와 선스타인도 카너먼과 마찬가지로 행동경제학자입니다. 탈러의 경우 경제학과 심리학의 가교를 이어 비이성적 인간 행동의 비밀을 밝혀낸 공을 인정받아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넛지』는 자동 시스템(시스템1)에 의존하는 ‘인간’이 사는 세상을 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으로 바꾸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불안전한 ‘인간’이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NGO, NPO 등 거버넌스가 인간이 유익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개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콘(Econ)’들만 산다면 ‘넛지’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이콘들은 “어렵고 빈도가 낮으며 적절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을뿐더러 선택과 경험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는 선택과 마주하게 될 때”(125쪽)도 합리적인 결정을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인간(Human)’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여러분이 가입하신 보험 증서를 살펴보십시오. 보험 가입 당시, 유사한 수많은 보험들의 약관과 특약을 일일이 꼼꼼히 비교해서 선택하셨나요? 중복되는 조항이 있는데도, 추가로 가입하시는 건 없으신가요?

넛지의 방법 중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되는 옵션 즉 기본 값)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주신문』의 구독에 대해 디폴트 옵션으로 1년 단위 자동 갱신을 설정했다고 생각해 보죠. 여러분이 1년 뒤 구독 해지 신청을 별도로 하지 않는 한 『여주신문』측은 구독자에게 계속 구독할지 여부를 묻지 않고 구독을 자동 연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게 기본값을 이렇게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여주시는 지난해 12월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어르신 친화도시로 인증을 받았고, 2023년 1월 18일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WHO의 어르신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GNAFCC)의 지향점은 노인들이 정든 곳에서 나이 들며, 활기찬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여주시 어르신 친화도시는 어르신들의 활동적(건강·참여·안전) 노화를 돕고 가능하게 하는 신체적·사회적 환경 조성을 위해 정책, 관련 서비스, 체계 등이 마련되는 지역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어르신 친화도시의 디폴트 즉 기본값은 당연 ‘어르신’입니다. 어르신을 기본값으로 야외환경과 공공시설을 포함해 도시기반 시설의 안전성, 편리성, 접근성이 제고된다면, 사실상 전 연령대가 혜택을 보게 됩니다. 가령, 교통 수단이 어르신을 대상으로 개선된다면, 유년층, 사회적 약자, 교통 약자들도 편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어르신들만을 위한 일자리 사업이나 돌봄을 제외하고는 사회 취약 계층인 어르신 기준에 맞는 도시 환경 조성은 모든 연령대의 주민들이 편의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르신이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 환경이라면, 전 연령층이 공공․민간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디폴트 옵션이 항상 올바른 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는 기업들이 디폴트 옵션을 악용해 고객의 손해로 돈을 벌기도 합니다. 때문에 “넛지에 대한 평가는 그 결과에 따라, 즉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지 아니면 도움을 주는지에 따라 달라”(362쪽)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공의 이익, ‘인간(Human)’의 편의를 위해 넛지를 적절히 설계하고 사용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서상 국가 또는 공공기관 등의 최소한의 개입도 탐탁하게 않게 여기는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반면 “인간들이 정말 오류를 범한다면 그 오류를 (강력한 강제와 금지로) 막음으로써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열성 개입주의자들도 있습니다.

탈러와 캐스타인은 ‘넛지’는 이 두 견해 사이를 유연하게 아우르는 “진정한 제3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토대로 한 우리의 제안들이 “보수주의든, 자유주의든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수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라고 믿고 있다.”(이상 371쪽)고 말합니다.

탈러와 캐스타인은 책에서 미국의 연금(저축), 투자, 대출(신용), 사회보장제도, 의료보험제도 등에 넛지가 가해진 경우를 설명하고 있는데, 한국과 시스템, 상황이 워낙 다르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감안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 도서정보

『넛지, Nudge』

리차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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