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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인간은 합리적일까?”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인간은 합리적일까?”

  • 기자명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 입력 2023.05.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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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공무원은, 「공무원법」에 따라 직무의 종류가 유사하고 그 책임과 곤란성 정도가 다른 직급의 군(群)인 직렬(職列)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행정직(렬)입니다만, 행정직 외에도 사회복지, 시설, 보건, 농업, 녹지, 전산 등을 비롯해 30가지 가까운 직렬이 있습니다.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안면이 있는 여주시 공무원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죠. A는 여러분과 종교 생활(교회, 사찰, 사원 등)을 같이 하는데, A가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A를 봤는데, 마침 장애인이 택시를 타는 것을 돕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이 공무원 A의 직렬은 무엇일까요?

‘봉사 활동’, ‘장애인’이라는 단어 때문에 사회복지나 보건 직렬을 떠올리지 않으셨나요? 그렇지만 A는 행정직일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2023년 5월 현재 여주시 공무원 전체 대비 행정직 비율은 39.4%, 사회복지직은 8.8%, 보건 관련 직렬은 5.2%입니다.  A가 종교 생활을 통해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어느 날 장애인의 대중교통 편의를 도와드린다고 해도, 통계상 행정직이 훨씬 많아 A를 행정직으로 추측하는 게 논리적입니다.

여러분이 공무원 A의 직렬에 대해 사회복지나 보건 쪽을 떠올리신 것은 기저율을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연상을 하며 이 기저율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기저율’이란, 어떤 요소가 통계적으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기본 비율을 말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여주시 전체 공무원 중 행정직, 사회복지, 보건직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에 해당합니다. 여러분이 A를 사회복지직이나 보건직으로 생각한 것은 제시된 단서들에 따라 인지하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대니얼 카너먼은 이렇게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며, 노력이 거의 또는 전혀 필요치 않고 자발적 통제를 모르는 생각”(39쪽) 프로세스에 ‘시스템1’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다른 말로 직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시스템1은 어림짐작, 편향, 인지적 편안함, 선행 경험에 대한 과신, 회상 용이성, 점화 효과, 후광 효과 등으로 인해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모르는 사실을 무시함으로써 너무나 큰 확신을 갖게 될 위험”(357쪽)이 있습니다.

시스템2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대부분은 시스템1에서 유래하지만 상황이 복잡해지면 시스템2가 임무를 넘겨 받습니다.”(45쪽) 카너먼이 말하는 ‘시스템2’는 복잡한 계산을 비롯해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주목하는 선택, 집중과 관련해 활동하는 생각 프로세스입니다. 직관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시스템2를 자주 사용해야 하지만, 인간의 뇌는 이를 힘들어하고 귀찮아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저자가 시스템2가 시스템1보다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1과 시스템2의 과정을 거쳐 인간이 ‘판단’ 등을 한다는 것인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시스템2의 몫이고, 이 시스템2는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대니얼 카너먼은, 시스템1의 작동은 진화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고 말합니다. “포식자 감지 시간이 100분의 몇 초만 줄어도 번식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높”(444쪽)아지니까요.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1 즉, 위험을 감지하는 직관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카너먼은 화재 상황에서 소방관의 결정을 예로 들며 “주변 환경이 대단히 규칙적이어서 예측이 가능할 때, 오랜 연습으로 그 규칙성을 익힐 수 있을 때”(357쪽) 직관도 능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스템1에 따라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우연의 역할을 과소평가할”(297쪽)뿐더러, 통계적 사실도 무시합니다. 카너먼은 다양한 실험 예시를 통해 “생각하기가 편하고 이야기에 일관성이 있다고 해서, 확신하는 믿음이 진짜라는 보장은 없다.”(357쪽)라고 말합니다.

카너먼은 전통 경제학에서 전제하고 있는 ‘합리적 인간’에 대해 의심합니다. 전통 경제학에서 인간은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성적 존재입니다. 반면 카너먼은 “사람은 결코 완벽히 합리적이지도, 노골적으로 이기적이지도 않으며, 취향은 절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것쯤은 심리학자에게 자명한 사실”(397쪽)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전통경제학에서)“인간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당시 널리 퍼진 독단적 단정에 의문을 제기”(22쪽)한 것이었습니다.

카너먼이 이러한 의구심을 발전시켜 제시한 것이‘행동경제학’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의 비합리성과 그에 따른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경제주체의 이면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전통 경제학의 인간을 ‘이콘(Econ)’이라고 부르고, 행동경제학의 인간을 ‘휴먼(Human)’이라 지칭합니다. 휴먼은 의사결정을 할 때 심리적․사회적 요소에 영향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예상, 확률 계산에서도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형입니다. 카너먼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한 ‘전망이론 prospect theory’을 통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합니다.

인간은 종종 비합리적으로 생각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험한 감염병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죠. 그런데 아이들을 치명적인 이 감염병에서 보호하는 백신이 0.001퍼센트 확률로 장애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백신 접종을 하시겠습니까?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떠십니까? 백신을 맞은 아이들 10만 명 가운데 한 명은 영구 장애가 생긴다고 합니다. 백신 접종을 하시겠습니까?

두 진술은 똑같은 내용을 달리 말한 것뿐입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명(의 아이)’이라는 구체적 언급을 한 두 번째 진술에 백신 접종을 더욱 많이 거부한답니다. 백신을 맞았지만 이상이 없는 9만 9,999명의 아이들은 뇌리에서 사라진 채, 백신을 맞고 영구 장애가 생긴 한 아이가 떠오르고, 그 아이가 내 아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잠재적 위험은 극히 희박해 무시할 정도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연상 작용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며, 통제할 수 없고, 충동적인 시스템1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습니다. 시스템1은 차단이 안 됩니다. “감정은 확률과 따로 놀뿐 아니라 정확한 확률에도 둔감”(474)합니다. 나태한 시스템2가 애써 끼어들려고 해도 틈이 없습니다.

카너먼의 이야기는 ‘인간의 합리성’을 신봉하는 사람들, 특히 전통 경제학자들,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리입니다. 그들이 상정하는 ‘이콘’은 OTT 회원 가입 때마다 깨알 같은 이용약관과 개인정보처리지침을 일일이 다 읽고 중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는 ‘합리적 인간’이니까요.

실제 여러분은 어떤가요? 아주 작은 글씨를 잘 읽기도 힘들뿐더러 그 내용을 본다하더라도 때로는 이해하기 힘들지 않으신가요? 보험 광고에서 늘 하는 말이 “자세한 내용은 약관을 참조하라”고 하는데, 그 약관을 상세히 읽어보고 결정하시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이콘과 달리 인간은 좋은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며, 정보를 제공하되 자유는 침해하지 않으면서 그런 도움을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606쪽)습니다. 가령 국가가 기업에게 ‘휴먼’인 고객이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약관을 만들라고 권장하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을 합리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을 때, 어쩌면 인간다운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Thinking Fast and Slow』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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