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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시선- 쌀 산업 특구를 부끄럽게 만든 날

기자의시선- 쌀 산업 특구를 부끄럽게 만든 날

  • 기자명 박관우 기자
  • 입력 2023.04.12 09:00
  • 수정 2023.04.1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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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편집국장
박관우 편집국장

전국 유일의 쌀 산업 특구, 전국 최초 모내기 행사, 대왕님표 여주쌀, 비옥한 토지에서 자란 곡식을 자랑하는 오곡나루 축제, 아름다운 세종대왕면의 유색 벼...

오랜 기간 여주시의 정체성은 자랑스런 쌀 산업특구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의 양곡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농민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자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인근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수백조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에 이어 들려온 뉴스에 농심은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쌀 정책에 대해서 윤석열 정부만 비판할 문제는 아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도 쌀 수급에 실패해 쌀값 대폭락을 만든 바 있다.

여야를 떠나 대한민국 집권세력과 정부는 이제 쌀을 생산하는 것에 긍정적이지 않다. 또 쌀값을 유지하는 것에도 부정적이고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삶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어서 정치권에서 들려온 발언들은 “밥 한 공기 비우기” 정책과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대한 언급, 그리고 어느 칼럼리스트의 “농촌 70대 먹여 살리는 데 헛돈 쓴다”는 말이었다.

개인 간에도 예절이 필요하듯이 정부 정책에 있어서도 설득 과정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농촌에 큰 변화를 만들어 올 수밖에 없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 ‘거부권’이라는 단어와 ‘포퓰리즘’이라는 정치구호로 단정지어 말하는 것은 너무 예절이 없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6.25가 발생한 1950년, 대한민국은 양곡관리법을 법률로 제정하고 70년 넘게 쌀의 수급을 조절해 왔다. 흉년이 들면 쌀값이 올라 도시민들에게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사 둔 쌀을 풀었고, 풍년이 들면 쌀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쌀을 사들였다.

시간이 지나며 무역을 중시하는 정책과 대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농업은 희생되고 농촌은 쇠락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이제 4% 남짓이다. 농촌인구도 고령화하여 외국인노동자들의 힘을 빌리고 있다.

이것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무엇인가? 대안은 무엇인가? 쌀 생산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규모의 경제를 위해 소농을 없앨 계획이라면 그들의 토지는 현실적인 가격으로 사줄 것인가? 아니면 외국에서 사다 먹을 계획인가?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종은 한국, 일본, 중국 북부와 미국 캘리포니아 정도에서만 생산한다. 현실적으로 미국에서 모두 사서 먹을 수는 없다. 외국에 곡물을 전량 의존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대안 없이 정쟁만 이어지는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하루아침에 자랑스러운 전국 유일의 쌀산업특구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쌀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조상님들이 한결 같이 지켜온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도 부끄러워졌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정쟁에 하루아침에 ‘쌀’이 천덕꾸러기로 희생양이 되었다.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역사가 강제적으로 굴욕이 되어 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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