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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보편적 인류애”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보편적 인류애”

  • 기자명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 입력 2023.04.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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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엔 겐자부로 지음, 『개인적 체험』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작품 내에서 주인공은, 영어로 새(鳥)를 뜻하는 ‘버드(Bird)’로 불립니다. 그가 버드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은 열다섯 살 때였습니다. 새를 닮았다고 해서 버드라고 불린 이후로 그는 계속 버드입니다.

버드라는 별명은 “어떤 장소에서건 어떤 종류의 친구 사이에서건 통용되고 있”(98쪽)습니다. 그의 아내도, 장인도 그를 ‘버드’라고 부릅니다. 버드는 스물일곱 살 사 개월을 지상에서 살고 있으며, 곧 한 아이의 아빠가 됩니다.

버드는 오랫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싶어했고, “그 여행을 한 다음에 「아프리카의 하늘」이라는 모험기를 출판하는 간절한 꿈”(18~19쪽)을 갖고 있습니다. 버드는, 하지만 이제 곧 태어나는 아기가 이러한 자신의 바람을 닫아버릴 것이라고, 아프리카로 떠나는 여행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불안해 합니다.

아프리카 지도를 사고, 오락실에서 만난 앳된 젊은이들과 한바탕 싸움을 한 다음 날, 버드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비가 오는 궃은 길을 자전거로 내달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가 이런 말을 먼저 합니다. “우선 실물을 보시겠소?”(36쪽)

실물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의사는 말합니다. “뇌 헤르니아입니다. 두개골의 결손으로 뇌의 내용물이 빠져 나온거죠. 내가 결혼하여 이 병원을 세운 이래 처음 보는 경우입니다. 대단히 드문 경우인데, 정말 놀랐어요!:”(39쪽) 아이가 선천성 기형아였던 것입니다.

일종의 혹을 달고 나온 것인데, 수술을 통해 혹을 제거한다고 해도 “식물”(46쪽)처럼 되거나 “지능이 아주 낮은 아이로 자랄 가능성 있는”(242쪽) 상태입니다.

버드는 이 아이를 ‘괴물’이라고 말합니다, “식물적 존재, 아기 괴물을 위해 평생을 매달려 살”아야 하는 자신의 미래로부터 도망치려고 합니다. “아프리카 여행의 꿈을 방어하려고 식물적인 존재의 중압, 아기 괴물의 중압을 벗어 던지고 싶어”(117쪽)합니다.

버드는 술로 도망가고, 대학시절 여자친구인 가네코의 집에 자신을 유폐해 버립니다. 아이를 수술할 대학병원에서 아기가 자연사(死)하기를 바랍니다. 버드에게 아이는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기만 해도 극히 개인적인 수치심이 목구멍까지 뜨겁게 치받는 고유의 불행”(68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개인에 한정된, 전혀 개인적인 체험”(180쪽)이라고 말합니다.

버드는 자신의 고통이, 다른 모든 인간 세계에서 고립된 자신 혼자만의 우물을 절망적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여깁니다. 자신의 체험이 인간 일반에 관계된 진실이나 의미 따위는 한 조각도 없는, 개인적 체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는 “오로지 기괴한 아기라는 개인적인 재난에 얽매여 이 현실 세계와는 등을 돌”(185쪽)립니다. 그는 아기의 존재가 자신의 세계를 점령할 게 두려워 아이의 수술을 거부합니다. 심지어 아이를 살해하려고 합니다.

제가 다시 읽은, ‘꿈이 있는 집’ 출판사에서 간행한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은 절판됐습니다. 『개인적 체험』을 읽으시려면, 을유출판사에서 2009년에 펴낸 책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게 1994년입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26년 만에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입니다. 『개인적 체험』은 오에 겐자부로가 1964년에 쓴 소설인데,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에 소개된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책의 경우, 표지 3분의 1 크기를 할애해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써있으니 말이죠.

사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노벨문학상’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한 작가가 쓴 작품 전체가, ‘이상(理想)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경우에 주는 상입니다.

1994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오에 겐자부로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 속에서 개인적인 것을 깊이 파고 들어감으로써 인간에게 공통되는 것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국에서 『설국(雪國)』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 이유와는 대비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인의 심정의 본질을 그린 대단히 섬세한 표현”이 수상의 주된 사유였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을 읽다 보면, 보편적 인류애(愛)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더라도, 종국에는 인간 본연(本然)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국가주의와 천황제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일본 천황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에게, 손수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함께 수여하려 하자 이렇게 말하며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나는 전후 민주주의자이므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

소위 ‘평화 헌법 조항’이라고 불리는, 일본 헌법 제9조 개정에 적극 반대했고, 자위대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일본 정치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두고 “일본과 일본 젊은 세대의 장래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일”이라며 일갈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평생 일본의 과거 전쟁 책임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발언했고, 피해자들과 소통하고자 애썼습니다. 이러한 그의 말과 행동은 보편적 인류애를 추구한 그의 문학세계와 맞닿아 있고,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월 3일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88세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3년은, 1963년에 태어난 그의 장남 오에 히카리가 60세를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오에 히카리는 두개골에 이상이 있어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 자랐습니다. 소설 『개인적 체험』은 오에 겐자부로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도서정보

『개인적 체험』

오엔 겐자부로 지음

이규조 옮김

꿈이 있는 집,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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