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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궁극적 진리”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궁극적 진리”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23.03.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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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이 소설은 1327년 11월 말 이탈리아 북부의 어느 수도원에서 일어난 7일간 일을 담고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파와 프랑스 아비뇽이 근거지인 교황파의 회담이 열릴 곳이었습니다.

14세기 초 중세 유럽은 황제권과 교황권의 대립이 가팔랐습니다. 1305년에 새로 선출된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 왕의 강력한 간섭을 받으며 로마로 돌아가지 못한 채 프랑스에 체류합니다. 프랑스 필립 4세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대립 끝에 프랑스 아비뇽에 교황을 유폐시킨 이후 교황이 아비뇽에 거주했던 약 70년 기간을 아비뇽 유수라고 부릅니다.

바스커빌 출신의 황제 루드비히의 외교 자문 윌리엄 수사와 윌리엄의 시자(侍子)이자 수련사인, 아드소는 회담 준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수도원을 방문합니다.

이 소설은 아드소의 시각으로 기술되지만, 주인공은 윌리엄 수사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탐정 소설 『셜록 홈즈』시리즈에서 기록자는 왓슨 박사지만, 주인공은 홈즈인 것처럼 말이죠.

윌리엄, 아드소, 이 두 사람이 수도원에 도착한 첫날, 해당 수도원의 수도사 아델로의 사망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수도원장은 윌리엄에게 이 사건의 수사를 부탁합니다.

과거 한 때 이단(異端) 심판관이었던 윌리엄 수사는 자신을 “자연을 공부하는 사람”(337p)이라고 말합니다. 윌리엄은 철학, 자연과학 등에 정통한 사람으로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이성의 세례를 받고 인간의 자유 의지를 신뢰하며, 신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사람입니다.

윌리엄과 아드소가 앞서 아델모의 사망사고를 수사하는 가운데, 학승 베난티오와 베랑가리오가 잇따라 의문의 죽음을 맞습니다. 일련의 연쇄적 죽음은 요한계시록에 수록된 7가지 재앙의 재현처럼 보여지며, 수도원 전체가 불안에 떱니다. 윌리엄 일행은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를 거듭하는 가운데 사건의 중심에 수도원 장서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 시대는 신권(神權)이 교회 안 만이 아니라 담장 밖 세상까지 단속하고 규율하던 시대였습니다. 누가 진정 신의 대리자냐는 물음을 두고 황제파와 교황파, 수도회간 갈등이 뾰족하게 솟았던 - 이단, 마녀, 악마라는 저주를 받으며 애꿎은 사람들이 불에 타죽거나 사지가 찢겨졌던- 비이성, 광신의 시대였습니다.

분명 이 작품의 화자는 아드소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시대를 관찰하는 사람은 윌리엄입니다. 윌리엄은 수도원 장서관으로 대변되는 중세 시대 횡행했던 진리에 대한 지독한 열망과 독점욕, 그로 인한 폐쇄적 교조주의에 대해 회의합니다.

윌리엄과 아드소는 수도사들의 연이은 의문의 죽음 핵심에는 장서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비밀리에 침입하지만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끝’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동안 마침 베르나르 기를 대표로 하는 교황측 사절과 미켈레를 대표하는 황제측 사절단이 문제의 수도원에 도착합니다. 교황측과 황제측이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 연쇄 살인사건 단서를 알아내 윌리엄에게 전달하려던 세베리노가 누군가에게 살해 당하고, 현장에 있었던 레미지오가 범인으로 지목됩니다.

심문을 맡은 사람은 교황측 대표 베르나르 기. 엄혹한 이단 심판관인 베르나르 기에 의해 살인 사건은 이단 재판으로 비화되고, 레미지오는 전날 붙잡힌 살바토레와 함께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자백하기 이릅니다. 그렇지만 수도사들의 죽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장서관과 함께 수도원 전체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 소설을 쓴 사람은 움베르토 에코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입니다. 『장미의 이름』은 그가 쓴 첫 소설입니다.

소설의 서문을 보면, ‘나’는 1968년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손에 넣게 됩니다. 책은 1842년 라 수르스 수도원장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번역한 책도 원본을 번역한 게 아니었습니다. 18세기 석학 마비용 수도사가 편집한 사본이었고, 원본은 14세기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인 멜크 수도원 출신의 수도사 아드소의 수기입니다. 아드소가 백발 노인이 된 뒤 젊은 시절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양피지에 라틴어로 작성 사건의 기록이 원본입니다. 그러니까 소설 『장미의 이름』은 ‘나’가 아드소의 수기를 풀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재밌는 점은, 이 서문이 ‘허구’라는 것입니다. ‘아드소의 수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이 작품이 사실에 기반했다고 생각하게끔 일종의 트릭을 쓴 것입니다. 참고로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은 이런 방식을 차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움베르트 에코는 중세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이단 심판 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요? 소설 말미에 윌리엄은 아드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단자 중에서 성자가 나오고 선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호르헤가, 능히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나름의 진리를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허위로 여겨지는 것과 몸을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르헤가 아르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762p)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책 정보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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