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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아이와 함께 찾는 시간의 의미”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아이와 함께 찾는 시간의 의미”

  • 기자명 김수영
  • 입력 2023.03.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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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시간을 파는 상점』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한비야 씨가 쓴 『그건, 사랑이었네』(푸른숲, 2009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을 90세라고 생각하고 축구경기에 비교해 보자. 전반전 45분, 후반전 45분. … 전반전 29분을 뛰고 있는 선수가 몇 골 들어갔다고, 이건 절대 만회할 수 없다고, 이미 진 경기라고 짐 싸서 집에 가는 축구 경기를 보았는가? 세상에 그런 경기를 보았는가 말이다. 당신의 인생 경기도 마찬가지다. 늘 점검하고 상기하자. 나는 내 인생 경기에서 몇 분을 뛰고 있는지. 내 시간은 얼마나 충분한지.”

 

이 문장은 20~30대 청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올해 마흔여덟인 저는 축구 경기에 비교하면 후반전 3분째를 뛰고 있는 셈입니다. 돌이켜보면 전반전 스코어가 썩 좋지 못한 편입니다만, 후반전에는 경기가 이렇게 끝나더라도 품격있는 경기를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100세 철학자로 유명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중앙일보』(2020. 9. 28.)와 인터뷰에서 ‘60세~90세’를“사회인으로 일하는”시기라고 말합니다.

"40년 전에는 인생을 2단계로 봤다. 태어나서 30세까지 교육받는 기간, 30세부터 60세까지 직장인으로 일하고 끝나는 두 단계로만 봤다. 이제는 90세까지 사니까 사회인으로 일하는 60~90세 기간을 추가해 인생을 3단계로 봐야 한다. 나무를 보면 열매를 남기는 기간이 제일 소중하다. 내가 살아보니까 60~90까지가 그렇더라. 90이 돼야 좀 늙더라. 나이 들기 전에 셋째 단계인 60~90세 인생을 미리 설계해야 한다.”

 

인생을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의 총량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각자의 시간의 분량은 신(神)만이 아시는 겁니다만, 그 시간 안에 사람은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사랑, 즐거움, 애통함 등의 온갖 일과 감정을 겪으며 지내게 됩니다.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 보면 인생의 시기별로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10대는 시속 10㎞, 20대는 20㎞, 30대는 30㎞, 40대는 40km’식으로 점점 빨라진다고 말이죠. 상황에 따라서도 시간의 흐름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군대에 복무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 시간은 느릿느릿 발걸음을 떼는 것 같습니다. 일의 마감에 쫓길 때, 친구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 때는 시간은 조급함과 아쉬움을 성큼성큼 앞서갑니다.

 

김선영 작가의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이 ‘시간’을 소재로 한 청소년 소설입니다. 김선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저는 처음 제목만 보고 판타지 소설을 예상했습니다만, 읽어보니 주인공인 백온조의 ‘성장’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는 큰애가 읽길래 평소 청소년 문학 시장이 협소하다고 생각한 저는, 큰애와 공감대도 형성할 겸 책을 읽었습니다.

주인공 백온조의 아빠는 온조가 중학교에 막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소방대원이었던 온조의 아빠는 ‘불사조’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여러 위험한 화재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이없게도 어느 날 화재 현장으로 가는 도중 과속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다고 온조가 침울하게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친구들과 함께 밝고 명랑하고, 꿋꿋하게 학교생활을 해 나갑니다.

방학을 이용해 빵집과 쌀국수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합니다. 온조는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 생활을 통해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간의 구체성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오너가 되는‘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운영합니다. 메인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깔아 놉니다.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에게는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어세오세요. 여기는 ‘시간을 파는 상점’입니다. 당신의 특별한 부탁을 들어드립니다.”(50쪽)

 

앞서 “당신의 특별한 부탁을 들어드립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온조의 시간을 파는 상점은, 누군가가 시간을 할애해야 할 일을 의뢰받아 온조가 대신해 주는 것입니다. 일종의 ‘심부름센터’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을 파는 상점’은 나름 확실한 운영 방침이 있습니다. “옳지 않은 일은 절대 접수하지 않을 것. 의뢰인에게 마음이든 뭐든 조금의 위로라도 줄 수 있는 일을 선택할 것.”(49쪽)

온조는, 닉네임‘네 곁에’의 장물사건 의뢰를 시작으로 ‘강토’할아버지와 만남, 하늘나라로 떠난 ‘작은선생님’의 우편을 배달하며, “삶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 같”은 “그 치열함의 무늬가 결국 삶은 아닐까?”(이상 126쪽)라고 생각합니다.

온조는 의뢰인들의 특별한 부탁을 들어주고, 난주, 혜지, 정이현 등 친구들과 여러 일을 겪으며 성장합니다.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이 쓸 법한 입말과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온조의 성장 과정을 재밌고, 깔끔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겪은 온조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262쪽)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뱀꼬리(蛇足)를 덧붙이자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잘 모르는, 그렇지만 문맥상으로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고유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검색을 해보시길 권유드립니다. 아이의 한국어 단어 능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지음

자음과 모음,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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