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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유일한 반역자, 인간”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유일한 반역자, 인간”

  • 기자명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 입력 2023.02.2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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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이기적 유전자』가 처음 출간됐던 1976년만 해도 ‘유전자’라는 용어 자체가 대중들에게는 무척 낯설었을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그랬을 겁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유전자 검사는 한국에서 할 수 없어 미국에 의뢰합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유전자라는 단어가 무척 친숙합니다. 범죄 드라마에서 기본 수사 과정으로 유전자 검사가 나오고, 특히 한국 드라마의 단골 이슈인 ‘친자 확인’에서 빠지지 않는 게 유전자 검사입니다.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네플릭스 한국 드라마 『더 글로리, The Glory』에서도 ‘친자 확인’이 갈등의 중요한 축이 됩니다.

유전자는 여러 세대 동안 존속할 가능성이 있는 염색체의 작은 도막을 말합니다. 『이기적 유전자』에 수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비유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육체가 하나의 빌딩이라고 해보죠. 그 빌딩에는 여러 개의 사무실(방)이 있겠죠. 그 사무실이 세포입니다. 그 사무실에는 책장이 있는데, 그게 세포의 핵입니다. 이 책장에는 46권의 책이 있습니다. 46권이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염색체가 46개이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책은 염색체입니다. 그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유전자(정보)가 적혀 있는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를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97쪽)라고 정의합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진화의 주체를 개개의 생물체가 아닌, 유전자로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는 생존 기계,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 된 로봇 운반자”(33쪽)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개개의 생존 기계인 우리는 수십 년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잘하면 100년 넘게 생존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기대 수명은 10년 단위가 아닌 1백만 년 단위로 측정됩니다.

책에 따르면, “유성생식을 하는 종에서 개체는 자연선택의 중요한 단위가 되기에는 너무 크고 수명이 짧”(507쪽)습니다. 이에 반해 유전자는 “불멸의 존재”(99쪽)라고 말합니다. 유전자는 자기 복제자이고, 인간은 이러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옮기는 운반 기계입니다. 인간 개체는 임무를 다하면 ‘죽음’과 함께 폐기됩니다. 유전자는 세대를 넘어 “지질학적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영원하다.”(100쪽)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유전자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저자는 지구상에 생물이 생기기 이전에 일반적인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유전자라고 합니다. 또한 저자는 최초의 유전자(들)가 담겨 있던 곳을 ‘원시 수프’라고 지칭합니다. 중요한 것은 유전자를 누가(神) 디자인을 했다거나 유전자 자체가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유전자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유전자는 그저 자기 이익에 맞게 자기를 복제할 뿐입니다.

유전자의 이익은 보다 많이, 보다 긴 세월 동안 자신이 복제된 사본을 남기는 겁니다. 번식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속하는 유전자는 “장수, 다산, 복제의 정확성”(101쪽)이라는 특성을 갖습니다.

책 제목인 『이기적 유전자』만 보고, 어떤 분들은 그렇다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이기심이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의 원리라는 말로 오해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기적’이란 유전자가 “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진화”(54쪽)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이기적’이란, 유전자에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가 유전자 활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입니다. 유전자는 ‘이기적’으로 자기 복제를 통한 생존 성공을 추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개별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움직임에 따라 유전자간 협력이 생겨납니다. 성공한 유전자란 오랫동안 많은 개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정 유전자가 여러 개의 몸을 갈아 타고, 다음 세대에 전해지려면 같이 몸을 공유하는 다른 유전자와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예전부터 여러 세대 동안 생존기계를 거쳐오면서 협력을 통해 번영을 누려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유전자는 언젠가는 죽을, 생존 기계를 만들기 위하여 유전자 풀 내 동료 유전자들 집단과 협력하며 살아”(116쪽)갑니다.

인간의 몸이 유전자의 생존기계이자 운반자라고 해서 인간의 행동 전부를 유전자가 조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596쪽)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덧붙여 피임을 할 때마다 우리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매우 간단하게 유전자의 조정에 반기를 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현재의 저출산 현상도 ‘이기적 유전자’의 이익에 반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 책에서 ‘밈(meme)’이라는 새로운 자기 복제자를 제시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나 SNS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와 콘텐츠를 이르는 말로 쓰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 말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만든 용어입니다.

‘밈’은 인간의 문화에서 비롯된 문화 전달, 모방의 복제자를 말합니다. 유전자는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닙니다. 밈 역시 밈 풀에서 번질 때는 모방이라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 다닙니다.

가령, 어느 사회에서 집값, 생활비, 교육비, 자기 생활 추구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아이 없는 삶이 생존과 생활에 이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를 모방(복제)합니다. 비혼자, 딩크족(결혼은 하되 아이를 두지 않는 부부)들이 사회 상당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게 밈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생명의 근원인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뇌를 의식적으로 교화하는 이기적 밈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요?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에게는 의식적인 선견지명이라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의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377쪽)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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