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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20- 그만둘 용기

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20- 그만둘 용기

  • 기자명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 입력 2022.12.0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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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사람으로서 ‘잘’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선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합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른 생명을 잡아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의 삶이 곧 타 생명의 죽임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모진 생인가요.

타 생명의 죽임 위에 견디는 삶이어서 그런지, 사람으로서 한 생애는 ‘선’보다 ‘악’에 기울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서 ‘선’에 좀 더 기울어진 생애를 살았던 인도의 위대한 영혼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수없이 많은 타락의 길이 열려 있다. 타락하려고 일부러 애쓸 필요도 없다. 애를 쓰려면 타락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선한 길을 가도록 도와준다고 생각되는 거룩한 책을 공경하라. 공경하되 책장에 고이 모셔 두면 안 된다. 생활 속에서 그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간디는 거룩한 책인 『바가바드기타』의 가르침을 따라 일상을 살아간 사람으로 보입니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이제, 비판하지 않는 그대에게, 이 신비스러운 지식과 아울러 특별한 지식을 알려주리니, 이를 앎으로써 그대는 악에서 풀려날 것이니라. 이는 학문의 왕이요, 신비스러움의 왕이요, 순수요, 다스림이요, 곧장 알 수 있는 것이요, 다르마의 본질이요, 실천하기 쉬운 것이요, 변하지 않는 것이로다. (9-1, 2)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받아들임’을 뜻합니다. 어떤 가르침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여 실천하는 행위를 ‘잘 받아들임’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가르침이 다 옳다 하더라도 내 처지에서 실천 가능한 것부터 받아들여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지식이냐가 중요합니다. 인류가 만들어온 ‘신비스러운 지식’이나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면 ‘악’에서 풀려날 수 없을 겁니다. 어떤 지식은 악을 조장하기도 하니까요.

 

나는 가끔 아내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논어 좀 읽어. 요새 왜 논어를 안 읽어?”

이 말에 담긴 속뜻을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요새 행위가 나빠졌어. 특별하고 거룩한 책을 읽고 성찰 좀 해.”

 

동양 고전인 『논어』라는 책을 읽을 땐 그나마 좀 괜찮은 행위를 했다는 것이죠. 타고나기를 못나게 태어난 사람인지라, 신비스럽고 특별하고 거룩한 책을 읽고 그 가르침을 따르려고 애쓰지 않으면 금방 악한 쪽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틀림없는 꾸지람입니다. 내가 논어를 읽고 논어 관련한 책을 쓰고 강의하고 다닐 땐 조금은 ‘좋은 사람’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위에 인용한 간디의 말에도 수많은 타락의 길이 열려 있고 애쓰지 않아도 사람은 그냥 타락의 길로 간다고 했습니다. 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라는 ‘역수행주(逆水行舟)’와 같습니다. 강물에서 노를 저어 거슬러 올라야 하는 배가 노 젓기를 멈추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자리에도 있을 수도 없죠.

‘노를 젓는 행위’는 거룩하고 신비롭고 특별한 지식을 쌓는 일과 같습니다. 사람은 공부하지 않으면 현재 수준도 유지하지 못하고 점점 퇴보한다는 경고입니다. 퇴보의 다른 말은 ‘수구’라고도 하고 ‘아집’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수구적이며 아집을 보여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주변은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수구적이고 아집을 가진 사람은 비판하기보다는 비난하는 경우가 많고, 편 가르기와 차별을 잘합니다.

여기서 바가바드기타의 노래를 또 하나 들어봅시다.

 

나는 모든 존재를 동등하게 대하느니, 내게는 사랑하지 않는 자도 없고 사랑하는 자도 없도다. 그러나 자기 몸을 바쳐 나를 예배하는 자들은 내 안에도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느니라. (9-29)

 

노래에서 ‘자기 몸을 바쳐 나를 예배하는 자’란 말은, 신비롭고 거룩하고 특별한 책을 공경하며 읽어 지식을 습득하는 자를 말합니다. ‘내 안에도 있고 그들 안에도 있다.’는 말은 거룩한 지식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그 실천의 내용이 모든 존재를 동등하게 대하며 사랑하지 않음도 없고 사랑함도 없다는 그런 행위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아마 이 경지는 사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대멸종의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대멸종이 오면 최상위 포식자는 단 한 개체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합니다. 현재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입니다. 인류 대멸종은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핵전쟁이 일어나거나, 지진이나 화산 폭발로 깊은 바닷속의 바이러스들이 재앙을 몰고 오거나, 항성이 폭발하여 소행성들이 지구와 충돌하거나, 기후가 변화하여 해수면이 상승하고 동토가 녹아 잠들어 있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깨어나거나, 과학의 발달로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시나리오든 다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중에 지진, 화산, 소행성 충돌을 제외하고는 다 인간이 스스로 불러오는 재앙들입니다. 기후 변화도 인간이 100% 원인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바로 ‘그만둘 용기’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내 권력을 유지하려는 욕망, 많이 소유한 돈으로 다른 사람을 부리려는 욕망, 인간은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의식 등등을 내려놓고 그릇된 탐욕 추구를 그만둬야 합니다. 이울러 지구 안에서 만들어진 생산물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공유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평화로 가는 길은 그리 많은 선택지가 없어 보입니다.

 

이번 글이 쓰기로 약속한 20회입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나도 연재를 그만둘 용기를 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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