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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상실감”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상실감”

  • 기자명 김수영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 입력 2022.11.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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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Singleman』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가수 양희은 씨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만큼 이별의 아픔을 절절히 표현한 곡이 있을까 싶습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 인 것 같아.

『싱글맨』의 주인공 ‘조지’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死別)했습니다. ‘그 사람’은 운전을 하다가 트럭과 충돌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58세 조지는, ‘그 사람’과 같이 살던 녹나무길 집에서 이제 홀로 남아 ‘그 사람’의 부재를 반복해서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 과거입니다. 그렇지만 조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도 생생하게 ‘그 사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조지는 ‘그 사람’을 “내 삶이야”(209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조지가 살고 있는 1962년 미국은, 여느 시대가 그랬듯 변화와 위협, 불안, 안정이 뒤범벅이 된 시대였습니다. 해변의 경관을 망치는 아파트가 건설되고, 언론이 성도착자를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을 신문에 싣고, 쿠바를 당장 공격하라는 상원의원이 목소리를 높이던 때였습니다. 조지는 이러한 시대와 불화(不和)합니다.

20년대와 30년대의 위기 상황에서, 전쟁은 조지에게 질병과 같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 훨씬 더 끔찍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살아남아서 파편만 남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96쪽)입니다.

이 공포는, ‘그 사람’이 조지의 곁을 떠나서 드는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아침을 먹으며, 두 잔 혹은 세 잔 째 커피를 마시며, 머릿속에 있는 무엇이든 서로 나눴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사람’은 없습니다.

조지의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은 두통만 있어도. 손가락만 베어도, 치질에도 신음하고 불평하고 법석을 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트럭이 ‘그 사람’의 자동차를 제대로 들이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으깨진 몸은 병원에서 행하는 의례가 아무 소용도 없을 정도로 비참했습니다.(105쪽)

혼자인, 조지는 ‘그 사람’이 없는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그 사람’이 떠난 후로 늘 그렇듯, 밋밋하고 지루한 일상입니다. 언제나처럼 눈뜨고, 출근하고, 강의하고, 퇴근하는 그의 하루. 조지는 ‘그 사람’의 옛 여자를 병문안하고, 오랜 친구와 저녁을 먹고,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제자인 케니를 만납니다.

그렇지만 보험 가입 권유 전화 마냥 불쑥불쑥 찾아오는 상실감에 조지의 마음은 아립니다. 숨어있던 염증이 나타나듯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삶 여기저기에서 형태를 달리하며 드러냅니다. 조지에게‘그 사람’은 무엇의 대용품이 아니었을뿐더러 ‘그 사람’을 대신할 그 어떤 대용품도 없습니다. 그 어디에도.

조지에게 ‘그 사람’은 전부였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자, 양희은 씨의 노래 가사처럼 조지는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조지는 만족스럽게 보내는 저녁을 생각하다가도 금세 그 저녁을 무의미하게 만들 허점을 발견합니다.

“그 그림에서 빠진 것은 짐이다. 소파 맞은편에 반대로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짐. 각자 책에 몰두하고 있지만, 서로 상대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는 두 사람.”(117쪽)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그 사람’의 이름은 ‘짐’입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남성’입니다. 그리고 ‘조지’역시 남성입니다.

말하자면 미국에 사는 영국인인 조지는 동성애자입니다. 이방인이자 소수자입니다. 「싱글맨」의 작가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도 영국 출신으로 독일에 이주했다 미국에 정착했고, 동성애자였습니다. 작가는「싱글맨」에서 조지라는 인물을 통해 성 소수자에 대한 인간적 관찰을 통해 이들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동성애(자) 소설’로 말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그 어느 작품보다 ‘상실감’이 짙게 배인 일상을 잘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뒤 찾아온 쓸쓸하고 고단한 일상을 절제되고 정돈된 문장으로 담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사별로 인한 상실감이 연인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자식, 형제․자매, 친구 등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은 일상을 짓이길 정도의 무게일 것입니다.

최근 이태원에서 큰 사고로 156명이 생을 달리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사고 수습이나 면밀한 재난 방지 대책 수립보다는 정략적인 새된 목소리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유가족과 지인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앞으로 짊어지고 갈 상실감을 감당할 수 있도록 차분한 애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소설『싱글맨』은 2009년 톰 포드 감독에 의해 동명(同名)의 영화로 제작․개봉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는 소설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영화 또한 잘 만들어졌습니다. 조지 역을 맡은 콜린 퍼스(Colin Firth)가 이 영화로 2009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 도서정보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싱글맨』, Singleman」

(그책,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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