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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9

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9

  • 기자명 장주식 작가
  • 입력 2022.11.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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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잃으면 설 곳이 없다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공자의 어록인 <논어>에는 제자가 질문하고 스승 공자가 대답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질문에 가장 뛰어난 제자인 자공이 스승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정치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먹을거리가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자공이 또 묻습니다.

“만약 부득이해서 셋 중 하나에 신경을 쓸 수 없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까?”

“무기겠지.”

“또 만약에 말입니다. 남은 둘 중 하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면요?”

“먹을거리지.”

“먹을 게 없어도 됩니까?”

공자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예로부터 죽음이란 늘 있어 온 것이다. 하지만 정치하는 자는 백성에게 신뢰를 잃으면 설 곳이 없다.”

 

이 대화에서 공자는 정치가에게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백성이 굶어서 죽거나 전쟁이 나서 무기에 죽는 일은 늘 있어 온 일이란 것입니다. 흉년이 들면 정치가가 책임을 지기는 합니다. 물론 전쟁에서도 정치가의 책임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성을 들여 먹을거리를 늘리고 전쟁을 막으려 애쓴다면 충분히 정치가로서 설 자리는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백성에게 신뢰를 잃은 정치가는 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과연 우리 정치가들은 백성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얻고 있을까요? 어떤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집단이 국회의원이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행정가도 신뢰도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가바드기타의 노래 한 구절을 들어봅니다.

오, 파르타여. 이 지고의 존재는 옹근 헌신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모든 것이 그 안에 있고 모든 것이 그로써 퍼져나오느니라. (8-22)

 

사실 정치가는 ‘지고’의 존재를 지향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류가 부족을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가가 등장했습니다. 이름은 수장이나, 추장이나, 제사장이나 다 달랐지만요. 이름은 달라도 수장이 맡은 내용은 비슷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재물은 모두 내놓아야 하고 힘들고, 병들고,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야 했습니다. 그 대가는 수장이라는 명예와 백성들이 보내는 환호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수장을 아무나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지고의 존재는 ‘옹근 헌신’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요. 수장의 옹근 헌신은 백성들의 절대적인 신뢰가 그 바탕이었습니다. 신뢰로부터 모든 것이 나오니까요. 공자도 제자 자공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창칼을 맞아 죽는 건 인간사에 늘 있어 왔고 수장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애쓰는 인물이다. 그런데 애를 써서 성과를 내는 바탕은 신뢰라는 것이죠.

 

현재 민주사회에서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후보자를 선택하는 조건은 첫째가 도덕성입니다. 도덕성이란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후보자를 능력 보고 뽑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저변에 깔린 것은 결국 도덕성입니다.

선거로 뽑힌 정치가에겐 막강한 권력을 줍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신뢰할만한 사람이 큰 권력을 가지면 분명 정의롭고, 공정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어떤 일이 잘 진행 되기 위해선 질서가 필요합니다. 순서를 잃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선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신뢰할만한 이에게 질서를 잡을 힘을 주는 것이죠. 그것이 현대 민주사회에서 대의정치를 가능하게 한 토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과연 후보자가 신뢰할만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후보자는 물론 후보자를 내세우는 정당들이 아주 기가 막힌 가면을 쓰고 포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한 사회가 신뢰 사회가 되려면 필요한 정의, 공정, 자유, 상식 같은 말들이 선거 기간 동안 엄청나게 오염됩니다. 부정의가 정의로 탈바꿈하고 불공정이 공정으로 뒤바뀌고 하다못해 반자유가 자유의 가면을 쓰기도 합니다. 투표권자는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투표가 끝납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선거는 끝나고 누군가는 권력을 틀어쥡니다. 이것이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정치가들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권력은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거란 걸 말이죠. 권력을 사유화했다가는 멸문의 화를 입고 맙니다. 권력을 가지는 기간은 너무나 짧고, 권력이 주는 화는 너무나 길고 참담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가바드기타의 노래를 하나 더 들어보죠.

 

브라마의 하룻낮이 천년 세월이요 브라마의 하룻밤이 또한 천년 세월임을 아는 자들, 그들이 진실로 낮이 무엇인지 밤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이로다. (8-17)

 

브라마는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근본 원동력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어마어마한 ‘힘’인 것이죠. 선거를 통해 정치가가 갖게 된 힘도 다르지 않습니다. 노래에서 낮을 평화로 밤을 지옥으로 비유해 본다면, 정치가가 가진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명확해집니다. 낮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함부로 힘을 썼다간, 하룻낮과 밤에 천년 지옥을 맛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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