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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격몽요결, 擊蒙要訣」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격몽요결, 擊蒙要訣」

  • 기자명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 입력 2022.10.2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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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관리가 되어 배불리 먹기만 해서는 안 된다”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책의 제목인 「격몽요결」에서 ‘격몽’은 몽매(蒙昧)를 격(擊)하다는 것으로 ‘어리석음을 쳐서 깨우치다’는 뜻입니다. 요결은 말 그대로 요긴한 비결로, ‘격몽요결’을 풀이하자면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요긴한 비결’이라 하겠습니다.

「격몽요결」은 유학 기초 교재라 할 수 있는데, 율곡이 이 책을 쓴 근본 취지는 ‘성인(참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을 일러두는 것입니다.

책의 구성이 그렇습니다. 서문으로 시작해 <입지장(立志章, 뜻을 세우다)>, <혁구습장(革舊習章, 낡은 습관을 개혁하라)>, <지신장(持身章, 몸가짐)>, <독서장(讀書章, 책을 읽다)>, <사친장(事親章, 어버이를 섬기다)>, <상제장(喪制章, 장사 제도)>, <제례장(祭禮章, 제사 의례)>, <거가장(居家章, 집 안에서의 생활)>, <접인장(接人章, 사람 대하는 법)>, <처세장(處世章, 세상에 처하는 법)> 등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장의 소제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율곡은 「격몽요결」을 통해 학문을 하는 바른 자세와 방법은 물론 관혼상제(冠婚喪祭)시 예법과 올바른 가정생활과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세상과 교류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봉건․유교 사회의 윤리․도덕과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내용이 많습니다. 학문과 그에 따른 책읽기 목표가 성리학의 ‘성인’이 되는 것이어서 지금의 ‘공부 현실’과는 괴리가 큽니다.

그렇지만, 가령 “자기를 이겨내는 공부가 일상생활에서는 가장 절실하다.”(67쪽), “배우려는 자는 한결같이 도를 향해야 할 것이며, 바깥 사물(外物)이 (자신을) 이기게 해서는 안 된다. 바깥 사물 가운데에서 바르지 못한 것은 마땅히 일정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69쪽) 등의 가르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귀담아 들어야 할 배움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겉과 속이 한결같아야 하며 그윽한 데서도 드러난 곳에 있는 것처럼 해야 하며, 혼자 있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있을 때처럼 하며, 이 마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푸른 하늘에 있는 밝은 해를 볼 수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72쪽)

홀로 있는 사적 공간에서도 타인과 있는 공적 공간에서처럼 삿된 생각과 행동을 삼갈 수 있다면 격조 있는 인품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상제장(喪制章, 장사 제도)>, <제례장(祭禮章, 제사 의례)>의 경우, 당시 유학의 예법(주자가례, 朱子家禮에 근거)을 기술한 것으로, 현재 장사․제례에 참고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부분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자질이 좋으면서도 배우지 못한 자는 한갓 예법에 얽매여 따르는 것이 효도가 되는 줄 알고, (자기) 생명을 손상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것임을 알지 못한 채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질병이 생겼는데도 차마 권도(權道)에 따르지 못하여 결국 목숨을 잃는 자가 있기도 하니 매우 애석한 일이다. 이 때문에 슬퍼하다가 파리하여 목숨을 상하는 것을 군자들은 불효라고 했던 것이다.”

조선왕조에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조선 12대 임금 인종(仁宗)입니다. 야사(野史)에서는 서른 나이에 요절한 ‘인종’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독살한 것으로 전하고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인종은 부왕의 죽음을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사망했습니다.

선왕 중종(中宗)이 사망하자, 인종은 머리를 풀고 맨발로 뜰 밑에 엎드려 엿새 동안이나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고, 다섯 달 동안 계속 곡(哭)을 했습니다. 이렇게 선왕의 장례를 치르느라 몸이 허약해진 인종은 음력 5월의 폭염에 시달려 병석에 눕고 말았으며, 급기야 사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율곡 이이를 학자(學者)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율곡이 분명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학자이지만 않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율곡은 뛰어난 정치가이자 행정가였습니다. 율곡은 당면한 시대의 문제를 정확히 보고, 진단해 이를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율곡은 ‘경장(更張)’을 지속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경장’이라는 말은 거문고의 줄을 다른 줄로 팽팽하게 고쳐 맨다는 말로, 율곡은 누적된 정치·사회적 폐단을 개혁하고 사회체제를 일신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율곡의 ‘경장’의 핵심 내용은 우선, 정치나 학문을 하는 데서 단순히 권위에 얽매이거나 유속(流俗)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자주적 비판 정신을 가질 것, 둘째 백성들의 생활고를 시급히 해결할 것, 셋째 교육과 교육제도의 합리적 운영 등 일대 교육혁신을 단행할 것, 넷째 계층간의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데서 오는 사회적 폐습을 혁파하는 것 등입니다.

안타깝게서도 율곡의 ‘경장’은 당시 조정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에 낙담한 율곡은 1577년 황해도 해주의 석담으로 낙향합니다. 해주에서 5년을 지내는데 이 시기에 지은 책이 「격몽요결 (擊蒙要訣)」, 「성학집요 聖學輯要」입니다.

율곡의 ‘경장’이 결국 실패한 원인이 뭘까요?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이이는 결국 당쟁을 버텨내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공자와 맹자가 곁에 있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개혁은 늘 쉽지 않았다.”- 이정철, <못 다 이룬 개혁> 「경향신문」(2019.10.31.)

공무원으로서 「격몽요결」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은 항상 명심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생활을 위한 벼슬을 하더라도 청렴하고 부지런히 일을 해서 공무를 받들어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노는 관리가 되어 배불리 먹기만 해서는 안 된다.”

율곡 이이 지음, 김원중 옮김 「격몽요결, 擊蒙要訣」(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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