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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8

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8

  • 기자명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 입력 2022.10.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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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기본자산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기본소득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기본소득제는 올해 3월 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철회하기도 했지요. 현재 최고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도 선거 때마다 이슈가 됩니다. 유럽에서는 실험을 해보는 나라도 있고, 스위스는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70% 반대로 부결되기도 했습니다.

그럼 기본소득은 도대체 얼마나 줘야 의미가 있는 걸까요? 한 달에 5만 원, 10만 원은 줘봐야 용돈에 지나지 않으니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이 무색합니다. 기본소득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금액은 천차만별이지만,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해 가는 금액은 GDP(일인당 국민소득)의 25%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2022년 현재, GDP가 약 3만 달러입니다. 지금 환율이 1400원이니 한화로 4200만원 정도 됩니다. 25%이면 1050만이고 월 87만 5천 원입니다. 한국 국적이 있으면 모두 받게 됩니다. 태아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출생신고가 된 뒤에 받아야 한다고 정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4인 가족이 연간 받는 기본소득은 4200만원이 됩니다. 이 정도면 현재 우리 경제 상황에서 그야말로 ‘기본’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재원입니다. 과연 어떤 돈으로 기본소득을 주느냐는 것이죠. 1인당 1050만원에 우리 국민을 5천만 명으로 봤을 때 연간 소요되는 재원은 약 525조원입니다. 대한민국 2022년 총예산은 548조원입니다. 기본소득을 주고 나면 예산이 바닥이 나는군요. 그렇다면 이것은 현재의 재정 운용으로는 불가능한 계획입니다.

그런데도 기본소득제가 너무나 중요하여 꼭 시행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선결조건이 있습니다. 세금이 올라가야 합니다. 525조라는 재원을 마련하려면 지금보다 두 배 정도 세금을 내야 합니다. 모든 소득세, 법인세도 2배를 내야하고 부가가치세도 좀 더 올려야 하고 상속세나 증여세도 두 배 세금을 거둬야 합니다. 토지나 주택보유세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탄소세’도 지금보다 훨씬 높여서 받아야 하고 다양한 세금을 더 마련하여 부과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세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세금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면 실질적인 기본소득의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계산도 이미 다 끝나있지요. 하지만 바로 여기서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들어가는 세금을 누가 주로 낼까요? 그렇습니다. 소득이 많거나 보유한 재산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합니다. 소득이 낮은 사람은 세금이 아주 적거나 없을 수도 있지요. 물론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누구나 부가가치세를 내야 하니까, 부가가치세는 예외가 있을 수 없지요. 하지만 부가가치세도 고가일수록 세금이 높으니 결국 부유한 계층이 세금을 더 내게 될 겁니다. 결론은 ‘부자가 세금을 많이 낸다.’입니다. 물론 지금도 부자가 세금을 더 내는 구조입니다만, 기본소득제를 운용하려면 지금보다 최소한 두 배는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제라는 것은 ‘부의 분배’가 그 기본 철학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자본주의는 ‘부의 분배’가 목적이 아닙니다. 사유재산제에 기반하여 경제가 발달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유재산은 거의 신성불가침과 같습니다. 20세기 초반부터 강력하게 일어났던 ‘공산주의’ 실험은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재산을 공유하자는 취지는 좋았으나, 국유화한 재산을 관리하는 권력이 대부분 부패했습니다. 국유재산을 골고루 나눠 가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지배층이 사유화했고, 피지배자인 국민은 경제활동 의욕이 위축되어 나라 전체가 가난해지고 말았던 것이죠.

재산 공유화는 ‘선한 권력’이 필수입니다. 이 선한 권력도 국민에 의해 뽑혀야 하고, 지속되어야 한다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가 거기에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현재 시스템으로는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기본소득제를 운영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재원 마련에 가장 중요한 부유 계층의 동의가 필수입니다. 내가 가진 재산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죠. 먼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희년’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25년이나 50년을 주기로 사람들이 지고 있는 빚을 탕감해주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본자산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기쁠 희를 써서 희년인 것이죠. 그러나 희년 같은 경우도 ‘은혜를 베푸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지는 복지의 대상이 모멸감과 굴욕감을 가질 수 있는 단점이 있죠.

결국 기본소득이 시행될 수 있으려면 구성원 모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기본 성품은 기본소득 같은 제도에 동의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내가 가지는 데는 의욕을 불사르지만 나눠주는 데는 미지근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가바드 기타의 노래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힘센 자들의 힘이로되, 탐욕과 욕정에 섞이지 않은 힘이요 만물 속에 있는 욕망이로되 정의에서 떠나지 않은 욕망이니라. (7-11)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자본이 힘입니다. 그 힘이 ‘탐욕과 욕정에 섞이지 않은 힘’이면서 ‘정의에서 떠나지 않은 욕망’일 수 있다면, 어쩌면 기본소득제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기본소득이 비참한 상태의 이웃이 없게 하고, 모두가 고르게 행복하고 다 함께 평화로운 길이라고 해도 말이죠.

 

기본소득제가 넘어야 할 산은 에베레스트보다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더 효율적인 방안으로 ‘기본자산’을 주장합니다. 빈털터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누구나 기본자산이 있다면 인간으로 기본적인 존엄은 지켜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구체적인 방안으로, 막 사회에 나서는 20세 청년에게 ‘1억 원의 기본자산’을 주자는 것이죠. 평생 1회만 주므로 기본소득보다는 훨씬 재원이 적게 들 것입니다. 기본자산제를 주장하는 학자도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웠습니다. 유한책임만 지는 유한주식회사 체제가 아니라 무한책임을 지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같은 구조로 시스템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참 어려운 일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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