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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이름은 작게 이룸은 크게 - 노자와 평화”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이름은 작게 이룸은 크게 - 노자와 평화”

  • 기자명 김수영
  • 입력 2022.10.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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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과 지혜”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노자는 늘 ‘도’를 이야기 하는데요, 도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황홀’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는 밝음도 아니요 어둠도 아니며 밝음과 어둠이 극한에 이르러 다시 어두워지거나 밝아지려는 바로 그 순간, 그 어슴푸레하고 흐릿하며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상황, 그게 도라는 겁니다.”(90쪽)

위 ‘황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글쓴이에 따르면, 있다가 없어지면 ‘황(恍)’이라 하고 없다가 생겨나면 ‘홀(惚)’이라고 합니다. 두 글자를 합치면 ‘황홀’이 됩니다. 밝음이 극한까지 가서 어두워지려고 어슴푸레한 상태를 ‘황’이라고 하고 어둠이 극한에 이르러 다시 밝아지려는 상태를 ‘홀’이라고 합니다. 황홀은 결국 밝음도 아니요. 어둠도 아닌 것을 말합니다.

근대 이후 한국인 의식을 지배한 것은 서양의 세계관일 것입니다. 서양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주체와 객체의 분리입니다. 눈앞의 책상에 대해 생각한다고 보죠. 서양철학은 생각의 ‘대상’인 책상과 생각하는 주체인 ‘나’를 분리합니다. ‘주체와 객체 이원론’은 서양 철학의 전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광우, 홍승기 공저,「고전의 시작 : 서양철학」(생각학교, 2015) 중>

노자의 도(道)는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주체가 객체가 되고, 객체가 주체가 됩니다. 아니 주체-객체의 개념이 처음부터 없다고 봐야 합니다.

노자의 도는 적요(寂寥)입니다.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 하나 없는 묵묵함이 적(寂)이고 요(寥)는 형체가 없이 텅 빈 상태입니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절대고요. 절대공허! 바로 이 적요가 ‘도’의 모습”(106쪽)이라고 합니다.

한울님을 비롯 하늘과 땅과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 않고 이원화되지 않는 일체성을 갖”(155쪽)는 것이 노자의 도(道)인 것 같습니다. 스밈과 섞임으로 경계가 모호하거나, 아예 없는, 그래서 저절로 조화와 안정을 이루는 세계라 생각됩니다.

구별 짓지 않으면 다툼도 질시도 없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같은 무게를 가지니, 만물 하나하나 소중하고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노자는 “가장 낮은 곳으로 온갖 더러운 것을 끌어안고”(39쪽) 가는 물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모습이 통나무 같으며 밖으로 은은하게 드러나는 것도 흰 천 같은 그러”(83쪽)한 소박함을 갖추라고 이릅니다. 노자의 도(道)가 평화와 잇닿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작게 이룸은 크게 – 노자와 평화」는 노자의「도덕경」81장 중 도경 37경을 장주식 작가의 짧은 이야기와 전기중 서예가의 글씨로 풀어낸 책입니다.

장주식 작가의 단정하고 결곡한 문장에 실린 이야기는 어려울 수 있는 노자의 생각을 편하게 읽게 해줍니다. 도경을 한문 원문 또는 원문과 한글 등으로 쓴 전기중 선생의 붓글씨는 그 자체로 작품입니다.

이 책은 얇지만, 무겁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나를 아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노자는 남을 아는 건 ‘지혜’이지만 나를 아는 건 ‘밝음’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지혜를 갖는 것보다 ‘밝음’을 얻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밝음’은 어떻게 얻을까요? “나의 무지를 자각하”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일까? 하고 회의”(140쪽) 할 때 환해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눈이 뜨여야 내 일상이 보이고 그래야만 세상을, 삶을,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70쪽)

물론 저랑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기본소득제’관련입니다. 작가는 ‘고르게 나눠 가지는’ 대표적 방법으로 ‘기본소득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이 주장해 왔지만 과연 언제 실행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제도입니다. 세상에 주어진 자연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 재산이므로 자연 속에서 생산된 것도 골고루 나눠가져야 한다는 생각 바탕에서 기본소득제는 탄생합니다.”(134쪽)

‘기본소득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이 제도를 지지하는 다른 분들처럼 ‘보편적 복지’에 의미를 두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본소득제’는 경제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11장 <차 한 대를 열 사람이 공유하는 시대>에서 자율주행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공유 자동차가 운행되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죠. 당장 택시업 종사자들이 실직을 하고, 자동차 생산량이 줄어드니 자동차 제조업에도 큰 감원이 있을 겁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4차 산업 혁명이 본격화되면, 기존의 산업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규모 실직 상태가 도래하면, 당연히 소비가 줍니다. 내수가 줄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됩니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실직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필요한 물품을 사게 되고 이를 통해 기업은 활동을 지속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형태이겠지만 일자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국가재정이 안정되고 국가 예산을 통해 국민 생활을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되는 거죠.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과연 기본소득은 얼마나 되어야 할까요? 물가, 금리, 통화량 등 시장 경제의 각종 변수를 고려할 때 도대체 기본소득은 얼마가 적정할까요?

기본소득제가 시장경제의 유지․활성화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공동 재산”을 “골고루 나눠가져야 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시장경제 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앎’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일까?

나는 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나?

‘밝음’과 ‘지혜’를 얻고자 하시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도서정보

지은이: 장주식 글, 전기중 글씨

책이름: 「이름은 작게 이룸은 크게 – 노자와 평화」

발행처: 여주신문,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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