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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나를 찾는 시간”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나를 찾는 시간”

  • 기자명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 입력 2022.08.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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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기회”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김수영 여주시 중앙동 민원복지팀장

십수 년 전에 진로에 대해 부모님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생이 잔인한 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지라도 나이 때에 이르러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거지.”

당시만 하더라도 그 말씀을 흘려 들었습니다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크고, 나이를 먹을수록 예전 어머니 말씀이 자주 생각나고는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이전에 미리 알고 실감했더라면 잘못과 실수가 덜 했을텐데…인생이 진짜 잔인하구나, 라는 느낌이 들고는 합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씨가 쓴 「나를 찾는 시간」을 읽다보니, 어머니가 하신 말씀과 유사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인생이란 직접 거치고 겪어봐야 비로소 하나씩 알게 되는, 마지막까지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156쪽)

이 책은 저자가 뇌종양 수술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시작한 두 번째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수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6쪽)고 말합니다. 책날개에 기재돼 있듯이, 저자가 큰 병마를 겪으며 느낀 것은, “세상은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니, 우리의 삶은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자가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문턱을 넘기까지 8개월이 걸렸습니다. 2개월은 수술한 대학병원에서, 6개월은 재활병원에서 투병과 재활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후유증은 여전합니다. 혀를 올리는 힘이 약해져서 말이 살짝 어눌하고, 연하장애로 8개월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다 회복됐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아 음식을 삼킬 때 남들보다 불편하고 힘듭니다. 한때 앉아만 있어도 의식을 잃게 만들었던 기립성 저혈압도 많이 호전됐지만 위협이 상존하는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저자는“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는 신체의 이런저런 기능들을 잃기는 했지만, 여전히 갖고있는 것들이 많다.”(201쪽)고 말합니다. 저는 저자가 이렇게 말할 수 이유는 생애 처음으로 오롯한 만난 ‘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극에서 리어왕은 자신에 대한 세 딸의 사랑을 시험합니다. 맏딸 고너릴은 달콤한 말로 아버지의 테스트를 통과해 리어왕의 권력과 영토를 물려받습니다만, 하루 아침에 표변해 리어왕을 박대합니다. 혼란과 당혹으로 큰 충격을 받은 리어왕이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따져 묻는 것이 바로 이 말입니다.

나는 과연 누구일까요? 바쁜 일상속에서 이런 존재론적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입시지옥, 취업전쟁, 결혼․출산․육아, 직장생활 등을 하면서‘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기나 한 걸까요?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는데, 이유는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는 살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어쩌면 ‘멈춤’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인 것도 같습니다.

저자는 갑작스러운 뇌종양 수술과 투병생활을 통해 이 ‘멈춤’의 기회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된 그는 “세상에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101쪽)였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회한이 아닌, ‘나’와 나를 둘러싼 작고 소소하고, 고요한 것들에 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저자는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일어서는 두 번째 삶 앞에서, 자신이 “본래 살고 싶었던 삶을 살자”(110쪽)고 다짐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거창한 것이 아닌, “그저 소소하고 가벼운 삶이면 충분하다”고 마음 먹습니다.(202쪽)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좋은 것들만 사랑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하고 못난 모습, 가슴 아픈 실패, 원하지 않았던 상황들, 이런 것들까지도 겸허히 인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자신의 전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능해진다.”(223쪽)

이 책은 외부에 시선이 아닌, 무리나 조직, 진영의 규율․강령에 자신을 맞춰서는 나를 찾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결국 사람들이 모여있는 저 세상이 아닌 내 자신에게 달려있지 않겠는가.”라고 말이죠.

책을 읽다보면 큰 병을 겪었다지만, 집도 있고, 형편도 쪼들리지 않으니 ‘제주도 한달살이’ 등 여행도 가고, 비싼 공연도 보고 하며 생활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자 역시 “내 손에 돈이 없으면 삶의 자유를 얻기 어렵다”고 말합니다.(167쪽) 그리고는 연금 저축 및 보험 가입을 권유합니다.

삶의 길을 걷다 멈췄다고 모든 사람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살피지도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습니다. 저자가 ‘나’를 찾아가기까지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무던 애를 씁니다. 그는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하고, 만들고, 가꿔가며 사유의 지평을 넓힙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영혼이 살아있는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이 들어서도 배우고 깨우침을 얻으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언제나 세상 다른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끊임없이 좋은 책과 말들을 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를 하면서 계속 깨우치는 생활을 하는 것이야말로 늙지 않는 영혼을 간직하는 길이다.”(176쪽)

참고로, 이 책의 부제는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입니다.

 

■ 도서정보 - 나를 찾는 시간

지은이: 유창선   /  새빛북스,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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