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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5

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5

  • 기자명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 입력 2022.08.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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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의 원인은 배가 아니다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몇 년 전 몽골 여행을 갔습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러시아제 군용 트럭을 빌렸습니다. 한국인 여행자 4명과 현지인 운전기사와 한국말을 잘하는 안내인, 이렇게 6명이 함께 움직였지요.

외국 여행은 냄새와 소리부터 달라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 몽골은 수도를 나서고부터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에 감탄사조차 잊어버릴 정도입니다. 사방팔방이 아니라 360방이 온통 초원입니다. 그것도 내 무릎보다 높은 풀이나 나무가 없는 키 낮은 풀만 자라는 초원! 360도 원이 모두 지평선입니다. 어디에 서나 내가 바로 원의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온종일 달리고 또 달려도 초원입니다. 8월의 초원은 형형색색의 꽃을 피웠습니다. 간간이 게르가 하나씩 점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염소 떼가 비탈을 오가거나 낙타 떼가 한가롭게 지나갑니다. 길은 따로 없습니다. 차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 열 갈래 스무 갈래로 나 있습니다. 현지인인 운전기사와 안내인이 없다면 방향을 찾아갈 수도 없습니다.

달리다 달리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때 우리는 차를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냥 그 자리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기로 했죠. 초원의 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놀라움 그 자체였죠. 밤하늘은 온통 별입니다. 한국에서도 별을 봤으나 이렇게 별이 많은지는 몰랐습니다. 땅에 돋은 풀 만큼이나 하늘에 돋은 별도 많았지요.

더욱 놀라운 건 별들이 손으로 잡을 만큼 낮게 뜬다는 것입니다. 같이 간 한 친구가 일어서서 북쪽의 북두칠성과 남쪽의 남 십자성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섰습니다. 밑에서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으니 꼭 그렇게 손으로 잡은 것처럼 나옵니다.

신세계 여행지의 흥에 취해 나는 술을 과하게 마셨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한두 잔 먹기 시작한 술 한 병을 몽땅 비워버린 겁니다. 초원을 호령하던 대장군 이름을 딴 보드카, 그 도수 높은 징기스칸 커다란 한 병을!

여행지 흥에 취해 술을 마실 땐 좋기만 했으나, 그다음 날이 문제였습니다. 숙취가 심해 두통에다 배탈이 심각했습니다. 울퉁불퉁한 초원길을 달리는 러시아제 군용트럭에 탄 사람은 어떨까요? 몸이 마구 출렁거리니 창자 속에선 난리가 났지요. 함께 다니는 일행이 있으니 자꾸 차를 멈출 수도 없습니다. 괄약근에 힘을 주고 버티다 보니 식은땀이 삐질삐질 납니다. 차가 멈출 때마다 구릉을 향해 달립니다. 사방이 초원이고 나무 하나 없으니 낮은 구렁을 찾아가 최대한 몸을 낮추고 볼일을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행에게서 최대한 떨어진 먼 거리로 가서 말이죠.

몇 번 그러고 나니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갑니다. 몸에서 나오는 거라곤 시퍼런 물입니다. 입은 쓰디쓰고 말이죠. 완전히 지옥 같은 한나절을 보낸 것이죠. 여기서 바가바드기타의 노래를 한 가락 들어보겠습니다.

 

감각으로 맛보는 즐거움은 다만 비참의 광갱일 따름이요, 그것들은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느니라. 오, 카운테야여. 슬기로운 자는 그것들 속에서 희희낙락하지 않느니라. (5-22)

 

맞습니다. 새 여행지의 감각으로 맛보는 즐거움이 지나쳤던 것입니다. 그 즐거움은 노랫말처럼 ‘다만 비참의 광갱’일 따름이었습니다. ‘광갱’은 광물을 파내기 위해 지하 깊숙이 파들어가는 굴입니다. ‘징기스칸에 취함’이란 감각의 즐거움은 그다음 날 한나절 비참의 광갱이 되었던 것입니다. 첫 잔의 즐거움이란 시작이 지옥 같은 한나절의 마침으로 이루어졌던 것이죠.

우리 팀 중에는 역시 ‘슬기로운 자’가 있었습니다. 술을 잘 마시면서도 내일을 위해 조금 절제했던 친구. 그 친구는 징기스칸에 희희낙락하지 않음으로써, 그다음 날도 여전히 신세계의 즐거움을 만끽했던 것이죠.

 

이곳 지상에서 자기 육체의 사슬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 핏줄기를 타고 흐르는 탐욕과 분노의 물결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 그가 곧 요기요 행복한 사람이로다. (5-23)

 

술이 한잔 몸속에 들어가면, 핏줄기를 타고 흐르는 술에 대한 탐욕이 분출합니다. 그래서 ‘한 잔 더!’를 외치는 것이죠. 그 욕망을 가로막는 것에 대하여는 분노를 하게 되고 말입니다. 나는 몽골에서, 핏줄기를 타고 흐르는 알코올에 대한 탐욕과 분노를 거스를 수 있었다면, 지옥 같은 한나절이 아니라 행복한 한나절을 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몽골 초원 여행의 둘째 날 지독한 배탈을 앓았던 것은 결코 ‘배’가 원인 아니었습니다. 나의 배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징기스칸에 대한 탐욕을 내려놓지 못한 내 감각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세계의 흥에 취해 나 자신을 잠깐 잃어버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바가바드기타의 이 노래를 생각해 봅니다.

 

밖으로 향하는 감각의 대상을 모두 끊어버리고, 눈썹 사이에 눈길을 고정시키고 앉아 들숨과 날숨을 고르게 하며 자신의 감각과 생각과 지성을 놓치지 않고 보는 사람, 동경과 두려움과 분노를 모두 제거하고 다만 자유에 뜻을 둔 사람, 그 사람은 이미 해방된 사람이로다. (5-27, 28)

 

‘감각에서의 해방’이라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기타’는 노래합니다. 눈썹 사이에 눈길을 고정시키고 들숨과 날숨을 고르게 해봅니다. 눈은 감는 것이 좋겠습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밖으로 향하는 감각이 더욱 생동할테니까요. 눈을 뜨고도 눈길을 고정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요.

안정된 숨 안에서 나의 감각과 생각과 지성을 조화시켜 봅니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동경과 두려움과 분노를 제거합니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내 몸과 내 감각은 아주 자유롭게 해방됩니다. 몽골 초원의 첫날밤, 이 노래를 알았다면 적용해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징기스칸의 감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고, 나의 지성으로 억눌러 제거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그다음 날 한나절의 지옥은 없었겠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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