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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0

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0

  • 기자명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 입력 2022.06.0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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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와 절제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상당히 위험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유럽국가 핀란드가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NATO :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정식으로 가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핀란드 이웃 나라인 스웨덴도 나토 가입을 공식화했습니다.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동유럽에 군대를 주둔한 소련군과 군사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1949년에 체결한 북대서양조약의 수행기구입니다. 북아메리카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10개국 등 총 12개 나라가 처음 가입했지요. 2020년 현재, 회원국이 30개국입니다. 동유럽 국가들도 많이 가입하자, 러시아는 나토를 자신들을 위협하는 강력한 적대세력으로 규정합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와 이웃한 나라 스웨덴도 마찬가지고요. 이 두 나라는 나토와 소련 두 세력 중 어디에도 편들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습니다. 그것이 나라의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고 두 나라 국민은 믿었던 것이지요.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까지도 나토 가입을 찬성하는 국민은 20-30% 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현재 핀란드 국민의 70% 이상이 나토 가입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변화가 왔을까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맞대고 있는 국경이 무려 1300 km가 넘습니다. 길어도 보통 긴 국경이 아니지요. 하지만 핀란드 국민은 나토와 러시아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핀란드 국민의 믿음은 매우 경지가 높은 것이었습니다. 평화가 총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바라는 신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니까요. 그런데 매우 심각한 불안이 덮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향해 심하게 도발하지 않았음에도 침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핀란드 국민이 러시아를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 침공당할 수 있다!”

아무리 핀란드 국민 개개인이 총칼 없는 평화 유지의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런 불안을 떨치기 어렵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눈앞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가 있고, 아무런 죄도 없는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희생당하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무려 1300 km나 되는 러시아와 국경! 국경에 거주하고 있는 핀란드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집니다. 결국 불안감을 해소할 방법으로 핀란드는 나토 가입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나토는 회원국이 침공당하면 자동으로 군사개입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핀란드로선 든든한 보험을 드는 것이죠. 핀란드의 움직임을 보고 스웨덴도 발걸음을 맞춥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20-30% 정도이던 나토 가입 찬성률이 70%로 치솟았지만, 여전히 30% 가까이 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핀란드 국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반대하는 핀란드 국민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할까요? 여기서 바가바드기타의 노래 한 구절을 들어 보겠습니다.

 

모든 감각이 저마다 대상을 향해 좋아하고 싫어하도록 되어 있거니와, 사람은 저들 감각의 지배 아래 들어가서는 아니 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를 에워싸고 끊임없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3-34)

 

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30% 국민은 아마도 ‘감각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신념에 철저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요. 의심과 불안이라는 감각이 나토에 가입하라고 끊임없이 유혹하는데도 이들은 신념을 유지합니다.

강 대 강으로 대치하면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선언하자, 러시아는 핀란드와 스웨덴에 핵을 포함한 공격도 가능하다는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어떤 전문가는 세계 3차대전을 경고하기도 합니다. 정말 듣기에도 끔찍한 경고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핀란드 국민의 인내는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요? 아니면 평화 염원의 신념이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요? 핀란드 국민은 스스로 결정한 중립국의 지위 유지라는 절제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정할 수 있는 한계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경지인 것이죠. 따라서 한계라고 부르지 않고 ‘절제’라고 명명합니다. 핀란드 국민은 절제의 미덕을 잘 보여주었고, 총칼 없이 평화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모범 사례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름다운 절제의 모습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자명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아쉬운 현실입니다. 원인을 제공한 측에서는 원인을 해소할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더욱 나쁜 방향으로 치달으려 합니다. 그 끝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테니까요. 결국 더 성숙한 시민이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절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감각의 지배 아래 들어가 끊임없이 휘둘리는 연약한 신념을 가진 이에게 절제를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절제는 나라와 나라, 단체와 단체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 간에도 무척 필요한 덕목입니다. 사람 사이에 미워하는 감정이 생겨났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 번 미운털이 박히면 그 감각에서 헤어나기 참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미운 놈이 잘하면 더 밉다, 는 말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감정 상태는 상대는 물론 자신을 위해서도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감각의 지배 아래 들어가 절제를 잃어버렸으니까요.

절제를 할 수만 있다면 그 미운 놈도 ‘다시 바라볼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다시 바라볼 여유는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 될 것이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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