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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0

장주식의 바가바드기타와 평화 10

  • 기자명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 입력 2022.05.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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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손님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장주식 작가·인문사랑방 쑈 지기

어제 집에 손님이 일곱 명 왔습니다. 어른 다섯에 초등생 하나 유치원생 하나입니다. 오월의 뜰에는 꽃이 많습니다. 눈을 사로잡는 비누풀꽃 무더기, 눈에 확 띄는 보랏빛 큰 공 같은 알리움 꽃들. 무엇보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장미와 작약이 눈길을 끕니다. 작은 연못 속의 노란 꽃창포도 있군요.

그런데 손님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주인공은 시금치였습니다. 텃밭 가에 때를 놓쳐 먹지 못한 시금치가 한 무더기 있습니다. 잎과 줄기가 세어 어차피 못 먹게 된 것, 꽃 보고 씨나 받는다고 뽑아내지 않고 그냥 뒀지요. 시금치는 마음껏 잎이 넓어지고 검푸른색으로 삐죽삐죽 솟아나 기세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곳곳에는 둥근 꽃망울을 단 꽃대가 쭉쭉 올라오고요.

“세상에! 이게 시금치라고요?”

시금치를 세상 처음 본다는 눈빛으로 손님들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잎이 연할 때 잘라내 뜨거운 물에 데쳐서 먹는 시금치. 그 연하디연한 시금치가 저렇게 기세 좋고 두꺼운 잎에 굵은 나뭇가지처럼 꽃대를 밀어 올리다니요.

그렇게 인기 절정 시금치를 보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타고난 재주를 다 펴보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참 많겠구나.’

우리가 맛있게 먹는 시금치 연한 잎이 시금치의 모든 것이 아니듯, 우리가 늘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겠지요. 내가 보는 짧은 시간과 단면들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바가바드기타의 노래를 하나 들어 봅시다.

깨달은 자가 깨닫지 못한 자의 마음을 어지럽혀선 안 되나니, 깨닫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얽매여 있도다. 깨달은 자는 오히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모든 일을 이룸으로써 깨닫지 못한 자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어야 하느니라. (3-26)

우리가 시금치를 보듯이 우리의 삶도 한 단면만 보고 전체를 깨달은 것처럼 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데 노래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깨달은 자가 깨닫지 못한 자의 마음을 어지럽혀 선 안 된다.’는 곳입니다. 이 말을 역으로 보면, 깨닫지 못한 자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람은 결국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아이구, 이 답답아.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하면서 사람을 몰아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몰아붙이는 사람 역시 깨닫지 못한 자라는 얘기입니다. 남을 답답하게 보는 자신의 행동에 얽매여 있으니까요.

우리 집 처마 밑에는 제비집이 있습니다. 4월 중순에 수컷 한 마리가 와서 지난해 지어놓은 집을 둘러보고 가더니 며칠 만에 짝을 데려왔습니다. 둘이 지지배배 아주 시끄럽게 지저귀더니 집을 다듬기 시작하더군요. 부드러운 지푸라기와 털을 물어다 넣고 알을 낳을 준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알을 낳고 암컷이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부지런히 날아다닙니다. 먹이를 물어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외적에 대한 경계가 삼엄합니다. 수컷 제비가 아주 싫어하는 외적은 물까치와 고양이입니다. 가끔은 뱀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까치는 몹시 사나운데, 더러 보면 제비집 안을 노리기도 합니다. 집 안에 있는 알을 노리는 모양입니다.

덩치가 서너 배나 되는 물까치를 제비 수컷은 사정없이 공격합니다. 직접 몸을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위협하는 비행입니다. 정말 ‘쏜살같다’는 말이 멋진 비유임을 절감합니다. 펜텀기 모양으로 제비가 두 날개를 펴고 자기 온몸을 내리꽂는 비행은 기가 질릴 정도입니다.

가끔은 마당에 선 나에게도 날아오다 휘익! 곡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저절로 목을 움츠리며 피하게 되더군요. 덩치가 훨씬 큰 물까치가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이유가 이해되었습니다.

고양이들은 반응이 다양합니다. 제비 팬텀기가 날아와도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고양이도 있고, 앞발을 들어 제비를 치려는 고양이도 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중 한 고양이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져 우리가 ‘고등어’라 이름 지어 부르는 고양이 암컷인데요, 얘는 제비가 위협하는 비행을 하면 얼른 몸을 낮춰 풀숲으로 들어가더군요. 풀숲이 가까운 곳에 없는 마당 한 가운데라면 머리를 낮춰 피합니다. 제비를 낚아채려 하거나 노려보거나 하는 몸짓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제비도 더는 고등어를 공격하지 않더군요. 고등어가 제비집 가까운 데크에 앉아 있어도 그저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다른 고양이가 오면 몹시 사납게 공격하는데 말입니다. 고등어와 제비는 서로 공존의 평화를 누리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런 모습은 보는 나에게도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바가바드기타의 노래를 하나 더 읽어보지요.

가장 훌륭한 사람이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니, 그가 이룬 모범을 세계가 따르는 도다. (3-21)

노래의 ‘가장 훌륭한 사람’을 나는 우리 마당의 고양이 고등어에게 빗대어봅니다. 스스로에게 편안하여 다른 이도 편안하게 하는 고등어의 행동. 간디는 이런 말을 합니다.

“크리슈나에게는 온 세상이 손님이고 그래서 그는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다.”

온 세상이 손님이라는 말! 참 좋습니다. 우리는 내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는 할 수 있는 정성을 다 쏟습니다. 내가 내 손님에게 쏟는 정성은 자연스럽게 그 온기가 퍼져나갑니다. 기타의 노랫가락처럼 ‘그가 이룬 모범을 세계가 따른다’는 말처럼 말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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