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다. 

꽃집에서 잘 기른 예쁜 꽃을 꽃병에 꼽고, 수반에는 가을날의 풍경을 만드는 그런 꽃은 아니었지만, 담장도 변변치 않은 팍팍한 시골살림에도 철따라 들꽃이 유리로 만든 커피 병이나, 작은 항아리에 무심하게 꼽는 것이 어머니 즐거움의 하나였다.

작은 시골집에서 텃밭을 가꿀 때 길 모퉁이에 수선화를 심는 내게 “꽃으로 뭐해? 고추나 심지”라던 옆집 아저씨도 꽃이 필 때는 “꽃이 예쁘네, 보기에 좋네”라고 한 말씀 하셨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제일 많이 시켰던 것의 하나가 “우리반 화단 가꾸기”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코로나19로 사람과 사람사이에 ‘거리두기’를 하라는 지침 때문에... 때로는 일찌감치 불 꺼진 거리의 분위기 때문에 꽃을 가까이 하는 것이 왠지 어색했던 날이 지속됐다.

이런 시국에 꽃과 함께 즐거운 놀이가 일상이 된 여주시 금사면 산북면 장흥리 산골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있다.

장흥리 할머니들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일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권역행복센터에서다. 문화·체육시설이 부족한 이포권역 주민들의 문화·복지·체육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장흥리 할머니들의 작품전시회가 열렸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전시는 할머니들의 그림과 이야기로 만든 책과 함께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유명한 화가나 작가도 아닌 산골마을 할머니들의 전시 멤버는 가장 나이가 어린 78세 이숙현 할머니와 노명식 할머니. 그리고 83세의 이화단 할머니와 84세의 박정숙 할머니, 87세의 홍갑예 할머니 등 다섯 분이다.

할머니들의 그림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감상하다 보면 어떤 것에서는 울컥하는 마음도 들지만, 대부분의 작품에는 할머니들이 마을 꽃길 가꾸기를 놀이삼아 함께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흠뻑 묻어난다.

세상에 또 이렇게 순수한 그림이 있을까할 정도로 깨끗한 작품을 보고 읽다보면, 어머니와 옆집 아저씨의 마음도 이러셨구나 느껴진다.

할머니들이 도화지에 그리고 도자기판에 그린 그림은 이날 금사면 이장연찬회 참석을 위해 금사면 이포권역행복센터를 방문한 마을 이장들과 강종희 금사면장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참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난생 처음 그림을 그려봤다”는 할머니들은 “애들이, 엄마 잘하셨어요. 축하해요. 멋져요.”라는 말에 어깨가 으쓱했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그림책 제목 ‘꽃길’에 어울리게 꽃 그림이 많은 것은 마을 꽃길 가꾸기를 함께하면서 매일 만나는 꽃을 보며, 꽃 이름과 추억을 떠 올리는 생활이 그대로 그려졌다.

책을 만들고 전시회를 하는 기분에 대해 “진짜 좋아요. 잘 그린다고 그렸어도 우습지 뭐. 마음에는 그랬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좋아요”라는 할머니들.

할머니들이 그림책을 만들기까지 함께한 같은 마을의 나현수(59) 산촌마을활성화센터 매니저와 어르신 문해교육 강사 강영시 씨(63), 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여주시 점동면 도리 강마을에 사는 최인혜 동화작가(59)와 정성을 보탠 노복연 편집기획자(56) 등 여성 4인방의 활약도 곳곳에 묻어있다.

어르신들과 최인혜 동화작가의 만남을 주선한 문해교육 강사 강영시 씨, 어르신들의 그림과 이야기 뭉치를 버리기 너무 아까워 책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 노복연 편집기획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은 면장님이 이곳에서 전시를 하자기에 부랴부랴 남편에게 도자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했다”는 나현수 매니저.

그리고 이 활동을 지원한 도리생명길협동조합과 여주세종문화재단의 어르신 문화활동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 최고령 작가들의 콜라보(collaboration) 그림책 출간과 전시회를 만들어낸 힘이 되었다.

다만, 장흥리 산골할머니들의 그림책은 소량만 인쇄되어 일반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발간 즉시 희귀본이 된 셈이니, 아쉽지만 할머니들의 내년 작품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길 기대해 볼 수밖에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