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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정신은 세종정신·북벌정신·왕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여주 정신은 세종정신·북벌정신·왕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21.11.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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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조성문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여주 정체성 확립에 있어 청심루(淸心樓)는 눈여겨 봐야 될 유적

조성문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조성문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장호 여주신문 대표기자(이하 이장호) 안녕하세요. 이장호입니다. 오늘은 여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열정이 넘치시는 분을 모셨습니다. 조성문 경기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님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성문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하 조성문) 네 안녕하세요

△이장호 많은 분들이 조성문 선생님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또 오늘 처음 만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여주 시민들께 본인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성문 네. 크게 중요한 이력은 없어요. 문화원에서 20년 근무하다  퇴직을 했고요. 어떻게  운이 닿아서 재단을 만들었는데 세종문화재단에서 9개월 정도 근무를 하면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 1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이장호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계시는지 궁금한데요?

▲조성문 요즘은 올해 제가 여주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가 됐습니다. 그래서 여강길에 배치가 돼서 일주일에 두 번 또는 세 번 정도 근무를 하면서 여강길도 익히고, 지금은 코로나 기간이라서 외부에서 사람들을 안내하지는 못하지만은 그 안내를 하기 위한 준비와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교육청과 연계해 고등학교 대상 여주학 교과서 만들어

△이장호 제가 앞서서 오랫동안 여주 지역에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열정이 넘치신다 그랬는데요. 요즘 여주학 교과서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주 교과서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를 해 주신 것 같은데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조성문 여주학 교과서는 연도는 확실치 않습니다마는 한 12년 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 과정 속에서 지역을 아는 그런 장이 교과서 속에 마련이 돼 있어서 지역의 아이들이 우리 고장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기본은 돼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지역학과 연결돼 있는 또 지역학을 연구하는 지원 조례를 만들어서 지역에 있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동안에 자기가 사는 고장을 더 알 수 있게 하는 그런 폭넓게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이 돼 있었습니다. 

거기에 힘입어서 경기도 31개 시군 중에서 선도적인 지역에서 지역학 교과서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들이 이루게 됐고 우리도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여주 교육청에서 아주 능력 있는 장학사 선생님이 오시면서 굉장히 활발하게 교과서 만드는 작업이 진행이 돼서 약 한 5개월 만에 전국에서 모범이 될 만한 여주학 교과서 그것이 만들어져서 대상은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입니다마는 그것이 최근에 경기도 교육청으로부터 교과서 인가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여주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해서 지역학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마련돼 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장호 우선은 고등학교 2학년인데 교육 과정은 초등학교에서 먼저 시작됐잖아요.

▲조성문 그렇죠.

△이장호 그러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을 위한 교과서는 아직 준비가 안 됐네요.

▲조성문 예 지금 초등학교 3, 4학년은 사회 교과서가 그 안에 일부가 이 지역을 아는 주요 유적을 소개하는 정도의 항목이 지역 선생님들의 토론에 의해서 교과서 형태부터 삽입돼서 가르쳐 오고 있는 그런 실정입니다. 중학교는 아직 거기까지 가지는 않은 거고요.

△이장호 그럼 고등학교 과정이 만들어졌으면 중학교나 초등학교 과정도 곧 만들어질 수 있겠네요.

▲조성문 네. 그렇게 되는 것들이 순서이겠죠.

△이장호 이렇게 좋은 성과를 거뒀다니까 반갑기도 한데요. 여주 교과서에 가장 큰 골격이랄까. 어떠한 것을 중점을 두고 혹시 만들어졌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광여도(廣輿圖  古4790-58) 의 여주목 부분(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광여도(廣輿圖 古4790-58) 의 여주목 부분(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성문 전체적인 지역의 역사, 산업 그리고 기후, 문화유적 이렇게 해서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 교과서입니다.

△이장호 이 교과서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그동안 여주 문화원에 계실 때도 여주의 인물, 역사, 유적에 대한 여러 가지 탐사 프로그램이나 이런 것도 많이 진행하셨던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주에서 가장 우리 대외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여주 시민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인물 또는 역사 유적에 대해 선생님이 추천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어딜까요?

■ 여주정신은 세종정신·북벌정신·왕비정신

▲조성문 우리 여주는 문화유적 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내노라 할 만한 아주 축복받은 훌륭한 문화유적이 많은 곳입니다. 일부러 꾸미지 않더라도 너무 많은 것들이 있는데...저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주에는 세 가지 정도의 정신사 속에서 흐름이 있다. 소위 말하는 여주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세종 정신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가 북벌 정신입니다. 세종대왕을 중심으로 해서 한때 청나라와 한 번 일전을 벌여보겠다고 했던 배짱 좋은 사람들이 또 있기 때문에 그걸 얘기할 수 있고요. 또  고려시대 때 한 번 조선시대 때 8번 해가지고 9명의 왕비를 배출한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왕비 정신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조금 설명을 더 드리자면 “세종대왕의 능이 있기 때문에 여주가 한 게 있지, 그렇게 큰 연관이 있을까?”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민족을 전체적으로 통 크게 보게 되면 설날이라든지 또 추석 날 민족의 대이동이 지금 21세기에도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전기중 작가가 쓴 세종실록 49권, 세종 12년 9월 11일 기유 1번째기사 1430년 명 선덕(宣德) 1430년 명 선덕(宣德) 5년 ‘아악 연주의 타당함 등에 대해 의논하다’의 글(사진 도자서예작품=전기중 제공, 배경=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인용)
전기중 작가가 쓴 세종실록 49권, 세종 12년 9월 11일 기유 1번째기사 1430년 명 선덕(宣德) 1430년 명 선덕(宣德) 5년 ‘아악 연주의 타당함 등에 대해 의논하다’의 글(사진 도자서예작품=전기중 제공, 배경=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인용)

그 사람들이 가는 곳이 성묘를 하기 위해서 고향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한민족의 얼속에는 돌아가신 조상들과의 만남은 제사상과 무덤자리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세종대왕의 무덤 즉 능이 있는 여주가 세종 정신이 살아있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그런 주장이라고 생각이 돼서 “여주는 세종 정신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세종대왕 개인뿐만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와 여주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의 피를 적어도 50%를 가지고 있는 분이 세종대왕이시기도 하고 “그분이 여주에 자리 잡음으로 인해서 그분의 정신이 여주에 살아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두 번째가 북벌 정신인데 효종이 10년 동안 임금 노릇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수 없었던 게 북벌이었거든요. 실제 실현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마음속에 그것을 한 번도 잊음이 없었다고 저희가 판단하고 있는데 그때 효종을 도와서 북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 여기에 있습니다. 

정신적이고 실제적인 스승이었던 우암 송시열 선생을 기리는 사당이 여주 ‘대로사’고 또 그분이 숙종과의 갈등 속에서 1년 동안 여주에 와서 실제 살기도 했었어요. 우암 송시열 선생이 그래서 그분을 따르는 많이 후학들이 여주에 존재했었고요. 

국방부 장관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병조 판서를 지낸 사람이 북내면에 있는 원두표 선생님이나 국왕의 직할 부대로서 어영청과 훈련대장을 역임했던 이완이 여주 사람입니다. 여주 상거리에 묘가 있기도 하고요. 

그런 것으로 봐서 “조선시대 때 북벌을 추진했던 핵심 인물들, 핵심 사상이 여주에 존재한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비 정신이 있는데, 9명의 왕비뿐만이 아니라 왕비가 될 뻔한 분 이렇게 따지면 열다섯 분이 되는 거죠. 그만큼 여주가 여성이 활기를 띠는 곳, 여성의 능력이 출중한 곳,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여주 출신 왕비들이 그만큼 많이 있고 그것은 우리나라 역사를 뒤져봐도 아주 유례가 없는 그러한 일입니다. 

9명의 왕비가 한 곳에서 직접 태어났거나 부모의 고향인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왕비라는 것이 임금의 어떤 업무 이후의 일과 속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위급했었을 때 또는 후임 임금이 어려서 섭정을 하면서 국가 정책을 수행하는 일도 있었다는 것을 볼 때 조선시대 국가운영에 여주 사람들이 상당히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 특이한 해설 장소로는 해월 최시형 선생님 묘소 추천

△이장호 지역 주민 여러분들하고 답사라든지, 이런 부분도 많이 하셨던 걸로 제가 기억을 합니다. 그전에 지역 주민들과 답사를 하면 가장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곳이 어느 지역인가요?

▲조성문 아무래도 사람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기본적으로는 영릉에서의 호응이 제일 좋았고요. 그 다음에는 명성황후 생가가 또 관심 속에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체험 중에서는 독특했다고 하는 것들은 해월 최시형 선생 묘소가 조금 특징이 있었습니다. 요즘에 들어서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오게 되면서 특별히 동학이라든지 이런 데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여주 최시형 선생의 묘소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움을 표시하고 그분들의 삶에 대해서 그 설명을 하게 되면 굉장히 여주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주가 그렇게 중요한 도시였는가 하면서 동조를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동학 혁명이 봉기 실패를 하고 관군에게 쫓겨서. 이천을 통해서 여주에 들어오게 되거든요. 여주에 들어와서 머무른 곳이 도전리입니다. 거기서 설법을 하게 되는데 그게 이천식천(以天食天)에 대한 설법입니다. 

하늘이 하늘을 먹여 살린다는 이런 건데 그 동학의 생명 존중 사상이 인간을 넘어서 생물에까지 이렇게 퍼지는 거죠. 가령 예를 들어서 ‘하늘이 쌀’이라는 ‘하늘이 인간’이라는 하늘을 보며 살린다는 그런 내용인데 그게 21세기에 환경이 중요시되는 이 시기에도 굉장히 호응을 받을 수 있고 각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테마이기 때문에 100년 또는 150년 전에 그런 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잉태됐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도 갖고 또 놀라움을 갖는 경우를 봐서 특이한 해설 장소로서는 해월 최시영 선생님 묘소를 추천할 수 있겠습니다.

■ 500년 동안 조선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은 여주 사람들

△이장호 이렇게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부분도 있지만 여주에 관한 여러 가지 역사 중에서 여주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저술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술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되게 느끼셨던 게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릴까요?

▲조성문 여주에는 워낙 훌륭한 인물들이 많았어요. 역사 속에서. 특히 조선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의 일대기를 추적해 보면서 느꼈던 거는 “조선 500년은 여주 사람 아니고서는 얘기할 수 없겠구나!” 하는 그런 어떤 자부심을 얻기도 했는데...지역 신문에 한 10년에 걸쳐서 그분들의 간략하나마 이력들 또는 사회적인 활동 업적들 또는 남겨 있는 문집들을 추적해 가면서 썼던 ‘여주와 함께한 사람들’이  제게는 지역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자산이 되기도 했고 그래서 기억에 남고요.

또 하나는 KBS에서 대왕 세종이라는 드라마를 하게 됐는데 그게 실제 역사적인 사실과는 달라요. 그래서 대왕 세종 드라마가 50회인가 그렇게 나갔는데 두 해를 엮어서 25회 분량으로 “어느 부분이 잘못됐다”. “실제는 이렇다”라고 하는 것들을 지적해서 만든 대화체 ‘바라보기’가 저에게는 자부할 만한 그런 책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한문에 그렇게 능통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마침 단국대학에서 15년 전부터 연차적으로 한 곳씩 해서 열다섯 건의 한한대사전을 만들어 냈는데 거기에 그 어휘풀이가 상당히 많거든요. 그래서  그걸 바탕으로 여주 청심루와 여주 팔경에 관련된 옛 시들을 번역한 한시 번역집이 두 권이 있었는데 그게 또 저로서는 성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 한시집의 특징은 의역을 하지 아니하고 조사 하나까지 다 직역을 해서 직역에 의한 한시 번역, 그래서 그 문체는 비록 딱딱하지만은 주석을 보게 되면 그때의 한시를 남긴 사람들의 지은이들의 속마음을 접근하는 데 있어서는 아주 더 할 나위 없습니다. 한시집이 그게 저한테도 조금 기억에 남는 책들입니다.

1941년 여주심상소학교 졸업앨범에 수록된 청심루(왼쪽)과 학교 건물(여주박물관 소장)
1941년 여주심상소학교 졸업앨범에 수록된 청심루(왼쪽)과 학교 건물(여주박물관 소장)

 

■ 여주 정체성 확립에 있어 청심루는 눈여겨봐야 될 유적

△이장호 청심루 말씀을 하셨는데요. 청심루에서 지은 수많은 시들을 두 번에 걸쳐 대략 몇 수 정도 번역을 하는 작업을 하셨나요?

▲조성문 청심루에 대해서는 한 15년 전부터 해가지고 한 100수 정도. 그래서 기존에 한국고전 연구원에서 나온 것들도 있지만 없는 것들도 있었어요. 한 백수를 했었습니다. 조선 중기까지. 그리고 최근에 올 봄에 50수를 더 했어요. 그래서 1600년 말부터 1700년 초기까지 해서 50수를 더해서 150수 정도 했습니다

△이장호 많이 편찮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조성문 네 그것 때문에 저도 몸이 안 좋았었습니다.

△이장호 말씀하신 청심루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도 여주 세종문화재단에서 여주목과 청심루 복원에 대한 학술대회를 한 적도 있는데요. 조성문 선생님께서도 일찌감치 청심루 복원에 대한 필요성들을 여러 차례 말씀하신 걸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청심루 복원에 대해서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해 가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또 이상적일지 혹시 생각하시는 의견이 있으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조성문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가 다시 시작된 게 한 30년 가까이 되면서 지방의 특색 또는 어떤 지방성 이런 것이 강조되는 시기가 지금 됐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주에서는 그동안의 어떤 이렇다 할 만한 어떤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진척이 없다고 지금 생각이 되는데 그런 차원에서 청심루는 우리가 한번 눈여겨봐야 될 그런 유적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21세기에 산업이 발달이 되고 물질문명이 발달이 되는 과정 속에서 굉장히 지구가 오염이 돼서 지금 기후가 오염이 되고 환경이 위협받는 요즘은 코로나로 다 고통받고 지금 세계적으로 조사 받고 있는 그런 시기에 있어서 마음을 맑게 한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환경을 맑게 한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청심(淸心)이라는 말은 여주를 대표하기에 아주 더 없는 그런 정체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그 가치에 대해서 천착해 들어가게 되면서 21세기에 맞는 사상사를 펼쳐낸다든지 또 1945년에 불타 없어진 청심루를 복원해내는 작업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아주 상당히 단계적으로 다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장호 앞서 소개해 주셨던 여주 교과서에서도 이런 내용이 조금 들어가 있나요.

▲조성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적 중에서 훌륭했다는 것 그런 정도의 설명은 돼 있습니다.

■ 지역사회 위해 기여를 할 수 있는 삶 굉장히 훌륭한 일

△이장호 앞에 세종대왕, 효종대왕 그다음에 아홉 분의 왕비를 또 말씀해 주셨고 여러 가지 말씀해 주셨는데 그래도 또 여주 사람들이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바라보았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조성문 여주의 역사를 조금만 들춰보면 예를 들어서 여주시에서 만들어낸 여주시사라든지 또는 요즘 번역이 잘 돼 있는 조선왕조실록이라든지 이런 속에서 여주를 찾게 되면 진짜 아주 빛나는 그런 유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주였구나를 쉽게 알 수가 있거든요. 

한 시대를 살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주변 또는 지역사회 또 소속되어 있는 그 나라를 위해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 삶 그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또는 시대를 불문하고 굉장히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래서 여주에서 여주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고 특별히 시작은 그렇게 되는 거겠죠.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내 가정 또 우리 이웃 이렇게 발전시키면서 그 삶이 확대가 돼서 분단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을 더 훌륭하게 하고 또 세계적으로 어떤 부의 편차가 이렇게 있으면서 가난과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너무 극명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저는 여주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우리 역사를 알아가는 일, 이거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여주 속에서 사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장호 마지막으로 여주 시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있으면  간단하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조성문 그렇습니다. 한 국가의 중대한 직책을 맡으면서 특히 조선이라는 나라에 있어서 500년 동안 조선이라는 나라가 유지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여주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후손이라는 것들을 21세기에 다시 깨달아서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분단된 국가 속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비극적인 일들을 해소시켜 나가는 그러한 쪽에서 우리가 역할을 찾아내는 것 이게 우리의 소명이라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세종 정신이 있는 것이고 또 효종의 북벌 정신이 한때 국왕의 곁에서 국가의 안위를 함께 논의했던 그런 왕비 정신이 있는 이 여주. 이런 여주 사람으로서의 어떤 자부심 같은 것들을 역사 속에서 이끌어낸다면 21세기 각박한 세상을 사는 것이 어떻게 지금 삶에 움추러들지 아니하고 정말 능력 있는 그런 여주 시민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라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가 조금 지금보다는 더 나은 이 침체를 딛고 희망의 내일로 나갈 수 있는 여주인, 여주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장호 여주 정신, 세종 정신과 북벌 정신 그리고 왕비 정치의 여주의 정신이라는 말씀과 또 우리 여주 사람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주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요. 

귀한 말씀해 주신 조성문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성문 네 .고맙습니다.

정리= 박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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