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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주시는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기자수첩- 여주시는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 기자명 이장호 기자
  • 입력 2021.10.1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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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대표기자
이장호 대표기자

여주사람들이 자랑하는 여주목(驪州牧)과 청심루(淸心樓)에 대한 최초의 학술대회가 지난 9월 30일 여주시 썬밸리호텔 세종홀에서 열렸다. 코로나19로 최소한의 인원이 참석해 온라인으로 개최된 ‘2021 여주목(청심루) 학술대회’에서는 그 동안 우리가 자랑해 온 여주목과 청심루가 단순히 여주사람들의 자랑거리를 넘어서는 중요한 역사문화 유산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지금까지 지역에서는 청심루 관련 한시를 200여편으로 추정하고 있었지만, 청심루 관련 한시는 423편, 저자는 전체 232인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도 보고됐다.

여주목(驪州牧) 관아와 청심루(淸心樓)는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각각 군수 관사와 학교의 일부로 쓰이다가 여주목 관아는 1925년 일제에 의해 해체됐고, 여주목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던 누각은 지금 여주시 상동 영월루근린공원에 원래의 이름인 기좌제일루(畿左第一樓)에서 영월루(迎月樓)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나마 여주목 관아 객사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던 청심루(淸心樓)는 학교의 일부로 쓰이며 해방 전까지 옛 모습을 유지하다가 1945년 8월 22일 군수 관사 화재로 사라졌다.

여주의 여러 행사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주목(驪州牧)과 청심루(淸心樓)를 들어 여주의 찬란했던 날을 강조하지만, 그저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해 보인다. 마치 유니콘이나 도깨비처럼 상상의 존재처럼 기억되는 것이 여주목(驪州牧)과 청심루(淸心樓)다.

이항진 시장은 공약으로 현 부지와 인근부지 매입을 통한 시청건립을 약속했다. 그리고 구체적 방안으로는 여주역세권에 학교복합화시설을 만들고 여주초등학교가 이전하면 그 자리에 여주시청 청사가 확장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2021 여주목(청심루) 학술대회를 바라 본 시민들은 이항진 시장이 계획하는 시청사 건립 계획이 수정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주초등학교 일원은 여주목(驪州牧) 관아와 청심루(淸心樓)가 있던 곳이으로 이곳에 대한 건축 관련 구체적 기록이 아직까지는 매우 미흡하지만, 여주초등학교가 이전하면 여주 역사문화의 가장 빼어난 자산인 여주목(驪州牧)과 청심루(淸心樓)의 복원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옛 관아와 누정에 대한 복원의 열기가 뜨겁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 양주시의 경우 이미 양주목 관아를 복원했고, 인근 원주시도  2018년 강원감영을 복원해 감영을 활용한 관광 콘텐츠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여주목(驪州牧)은 전국 20개 목의 하나로서 경기 4목 (여주, 파주, 양주, 광주)의 하나였다. 경기지역 이외에 전국의 목은 충청도 4목(충주, 청주, 공주, 홍주), 경상도 3목(상주, 진주, 성주), 강원도 1목(원주), 전라도 4목(나주, 제주, 광주, 능주), 황해도 2목(황주, 해주), 평안도 3목(안주, 정주, 의주)이다.

여주시청 청사 확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여주초등학교 이전 등 어렵게 찾아 온 여주목(驪州牧)과 청심루(淸心樓)의 복원의 기회를 놓치고 그 자리에 여주시청 청사 확장해 짓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결정한 가장 어리석은 일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언제까지 여주목(驪州牧)과 청심루(淸心樓)를 ‘옛터’로만 기억할 것인가?

이제 역사 속의 그 터에 여주목 관아와 청심루를 복원해 수백 년 이어갈 역사문화유산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여주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때가 되었다.

여주시청에서 세종로를 바라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여주목(驪州牧)과 청심루(淸心樓)의 ‘옛터’인 여주초등학교가 있다. 이제 여주시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할지 빠른 결단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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