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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여주의 바위들

독자칼럼-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여주의 바위들

  • 기자명 편집국
  • 입력 2021.08.05 14:15
  • 수정 2021.08.0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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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힘 작가
최새힘 작가

여주를 흐르는 남한강가에는 세 개의 바위 이름이 전해져 내려온다. 위로부터 차례로 단현리의 단암(丹巖), 상동의 마암(馬巖), 하동의 립암(笠巖)이 그것이다. 한자가 아닌 토박이말로는 단암을 ‘부라우’, 마암을 ‘마라우’라고 부르는데 아쉽게도 입암을 부르는 이름은 알 수가 없다.

한자 이름을 쓰기 전에는 당연히 우리말로 불렀을 것이고 아마도 부라우와 마라우가 그 전부터 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자로 표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한자와 우리말이 사맞지 아니하나 그래도 문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본래의 뜻과 최대한 가까운 한자를 찾아 적으려고 노력했음이 분명할 터이다.

단암이 붉은 바위라는 뜻이니 부라우는 오늘날 불개미, 불호박, 불콩과 같이 ‘불바우’임을 알 수 있다. 또 마암은 마라우라는 이름이 전해지니 부라우와 같이 ‘말바우’가 된다. 말바위란 말개미, 말벌, 말거머리, 말잠자리 등과 같이 큰 바위라는 뜻이다.

부라우 모습/최새힘 작가 제공
부라우 모습/최새힘 작가 제공

 

두 바위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찾는 일은 아주 간단하지만, 마지막 립암은 간단치가 않다. 笠은 대나무 죽(竹) 머리가 부수인 글자로 립(立)으로 읽고 뜻은 대나무로 만든 ‘삿갓’으로 새기는데 큰 바위를 삿갓에 비유했으니 흔히들 삿갓의 모양이라서 그렇게 불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목포의 삿갓바위를 직접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어딜 봐서 삿갓을 닮았냐고 되물을 것이 명백하다.

립암은 앞의 두 바위와 달리 뜻을 정확히 옮길 방법이 없으니 최대한 한자로 적은 이름이다. 소양천과 남한강이 바위 옆을 흐르고 바위가 길게 늘어져 위치한 것을 볼 때 갓길, 갓돌, 갓바다와 같이 ‘갓바우’임이 확실하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이 갯가에 있는 바위인 갯바위로 부른다. 부라우와 마라우의 음운변화를 따른다면 아마도 ‘가사우’가 될 것인데 소리도 이상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전혀 쓰지 않는 말이니 잊혀 전해지지 못하였다.

부라우는 설명을 듣고 나서 가까이 살펴보면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기최면을 걸지 않는 이상 이것이 붉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바위 표면이 깨끗하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해가 뜰 때 붉은 기운을 또렷이 느낄 수 있다. 나무가 우거져 주변의 흙색을 볼 수는 없지만, 강물에 드러난 부분이 바위보다 더 붉은 것을 강 건너에서 관찰할 수 있다.

마라우 모습 / 최새힘 작가 제공
마라우 모습 / 최새힘 작가 제공

 

마라우는 가까이에서도 멀리에서도 검은색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얼룩덜룩 어우러진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검고 큰 말바위이므로 검은말 려(驪)로 옮겨서 적었고, 또 우뚝 솟아있으니 일 흥(興)자로 적었다면 이를 합하여 ‘여흥’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검지 않은 부분을 보고는 황려(黃驪)라는 말이 나왔지 싶다.

큰 바위틈에서 검은 말이 날아오른 전설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땅이름이 되었을까? 아니면 강가에 큰 바위를 가리켜 부르던 이름이 널리 퍼진 것일까? 초행인 사람도 지나다가도 보면 바로 자신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어 많은 사람 사이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지명이 살아남아 퍼지는 것이 순리다.

지명은 오래된 우리말 이름과 한자어 이름이 모두 남아 있어 서로를 비교하고 땅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것이 아니라면 아니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여기저기 전해지는 다양한 풍문은 한자 이름이 만들어진 이후 본래의 이름을 잊고 지어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실제적 증거는 한자가 아니라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바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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