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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폭염은 더 모질고 가혹했다 

현장칼럼-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폭염은 더 모질고 가혹했다 

  • 기자명 편집국
  • 입력 2021.07.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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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필 / 여주시외국인복지센터장
진재필 / 여주시외국인복지센터장

여성 이주노동자에게서 회사 기숙사에 냉난방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묻는 상담이 왔다. 이곳은 16인의 남성 노동자와 여성 이주노동자 혼자서 생활하고 있는 기숙 시설이다. 문제는 이 폭염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상담자 외에는 남자들만 있는 기숙사라서 문을 열고 있을 수 없고, 문을 닫고 있자니 이 더위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고 했다. 사장님께는 이미 수차례 에어컨 설치를 부탁했지만 묵묵부답이고, 본인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에어컨을 설치하고 싶다고 요청했음에도 에어컨 설치를 해주지 않는단다. 선풍기 하나로는 이 폭염을 이기며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인데 이런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 요청이 가능한지도 물어왔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6조의 2(기숙사 정보의 제공)에 따르면 “적절한 냉난방 설비 또는 기구를 갖출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선풍기 한 대만 설치되어있어도 냉방시설을 갖췄다고 인정되는 실정이다. 39도를 오르는 요즘 폭염을 선풍기 한 대로 버텨내라는 것도 무리지만, 특히나 여성 노동자의 경우 안전 문제로 창문을 닫아놓고 생활해야 하기에 그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우선 사장님께 다시 한번 에어컨 설치를 정식으로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의 요청으로 에어컨을 설치해 주면 좋겠지만 설치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직장을 옮길 수 없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직장의 선택권을 이주노동자에게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가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해도 이주노동자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심각한 인권침해다. 임금 체불이나 폭언, 폭행 등 사업장 변경 제한의 예외 조항이 있다지만 이주노동자 스스로 고용센터에 가서 이를 증명해야 하는 절차적 장벽이 높고, 또한 낯선 이국땅에서 부당함에 맞서 혼자 싸우고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는 두려움을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그러기에 참고 지내고, 임금 체불에 시달리고, 위와 같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병을 얻고, 또 죽음을 맞기도 한다.

우린 ‘노동 허가제’라는 말을 굳이 상기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본인의 의사로 직장을 선택하고 퇴사를 하는 것은 우리가 누리는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에게 이 물과 공기는 선택받은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던 시기에는 인력난 해소라는 목적이 우선되었기에 이들의 권리를 보장할 법과 제도가 부실했다지만 이젠 이주노동이 특별한 시대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권은 돌려주자.

백번 양보해서 ‘노동 허가제’를 당장 시행하기가 어렵다면 입국 초기에 이주노동자 스스로 직장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는 일정 기간을 부여하고 그 시기 만이라도  직장 변경을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두자. 어디서, 어떤 작업환경에서 일할지도 모른 채 배치된 작업장에서 사업주만이 이들의 생살여탈권을 갖는다면 이는 너무 가혹한 인권침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노예 무역선을 타고 이제 막 도착해서 주인의 선택을 기다리는 노예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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