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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자서전, 인간은 말하고 싶어한다

여강여담- 자서전, 인간은 말하고 싶어한다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20.10.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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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자서전, 경험과 감동의 순간을 말하고 싶어 쓴다

집채만한 고래 잡은 감격을 새긴 선사인의 울산반구대 암각화

자서전의 홍수다. 책 출간이 쉬워진 것도 이유겠으나 하루에도 수백 권씩 나오리라. 그럼에도 자서전을 펼쳐 드는 이유는 그 한 권에 그 한 사람의 일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가 선거 출마용으로 시간에 쫓겨 썼거나, 살아온 궤적을 부풀려 대필작가를 통해 쓴 책이라면 끝까지 읽기가 역겹다. 내가 읽어본 자서전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역사 속 위인이 쓰거나, 현대사의 한 자리를 장식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다. 내 친구 아버지의 자서전이다. 40년 전 직접 서명을 해서 주시며 “우리 아들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걸세”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자서전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상업학교를 나온 그분이 월남하면서 겪은 인생 역정에서 시작된다.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 일가친척 가계도에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과 자신과의 관계, 어릴 적 에피소드까지 치밀했다. 기독교 집안의 내력과 다니던 교회의 사역을 담당했던 목사님들의 재직 연도에 이르기까지. 월남 과정에서 겪은 사실은 날자 별로 매우 구체적이었고, 화성의 염전에 정착하여 소금밭을 일구는 과정은 일지처럼 정밀했다. 그해의 소금 생산기의 일조량을 측정하기 위해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의 일수, 그해 소금의 출하 가격과 생산량, 소금생산의 3요소까지를 치밀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그분은 굴지의 소금회사 전무로 퇴직하고 기독교 장로로 살아온 과정을 정확하게 적고, 반성과 소회를 덧붙였다.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읽어보지도 않고 던져버리는 자화자찬서가 아니라 진정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본디 말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형벌에 가깝다. 자신의 경험이 극적일수록, 교훈적일수록 그 내용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게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어 이어진다. 저 유명한 울산의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를 보면 그렇다. 그냥 국보가 아니다. 거기에는 문자가 없던 석기·청동기시대 울산 앞바다 가까이 살던 우리 조상들이 힘을 모아 집채만한 고래에서부터 작은 돌고래까지를 오로지 작살과 쪽배에 의존해 천신만고 끝에 잡은 감격을 절벽에 새긴 그림이다. 종류도 다른 60여 마리의 고래와 선사인들의 모습과 도구는 문화인류학적으로도 소중한 보배다. 그 유산이 물에 잠겨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울산시민과 전국의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논란의 핵심이다. 오죽하면 어느 고고학자가 “경주 전체를 준다 해도 울산반구대 암각화와 바꾸지 않겠다”고 하겠는가.

한 권의 자서전을 위해서는 일생을 준비해야

인생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다. 드러내고 싶은 부분도 있고 감추고 싶은 부분도 있다. 가슴에 묻는 일이야 자신의 판단에 맡겨야겠지만 의미 있는 한 권의 책을 쓰려면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는 정확한 통계와 날짜다. 기억은 끝까지 희미하게나마 남지만 수치는 기록하지 않으면 이내 증발하여 버리고 부정확한 어림조차도 사라진다. 자신의 삶에 자신이 있으면 숫자로 남겨야 심지어 곤경에 처하더라도 그 사안의 진실을 입증할 수 있다. 둘째는 사진 한 장이다. 1990년대 일본 경찰 연수에서 배운 똑딱이 카메라의 효능,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훨씬 파급력이 크다. 휴대폰 카메라가 기본이 된 시대에 셀카만 찍을 것이 아니라 기록되어야 할 그 순간의 사진을 찍어 태그를 붙인 채 깊숙이 저장해야 한다. 두 가지를 갖춘 책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다. 수치와 사진이 없는 책은 수필집이 되기 쉽다. 정확한 통계와 자기만의 경험을 사진을 곁들여 기록한 자서전은 전문서가 될 수 있다. 그래야 은퇴 후 ‘1인 창업’이라 할 수 있는 강의·강연의 자료가 되고 관련 전문가들이 인용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어디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는 한 권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서는 일생동안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제대로 된 자서전을 고르려면 저자 사진이 표지에 들어간 책은 가급적 고르지 마시라.” 자화자찬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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