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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2.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거대한 위험이 온다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2.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거대한 위험이 온다

  • 기자명 장주식 작가
  • 입력 2020.06.1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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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먹는데 엥겔 자는데 슈바베 불평등에 지니>

어디선가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엥겔, 슈바베, 지니는 모두 경제 관련 지표를 나타냅니다.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지출 패턴으로 경제 수준을 가늠하는데요, 가장 유명한 것이 ‘엥겔지수’입니다.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고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식료품에 지출하는 비율이 엥겔지수이니 유명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주거에 지출하는 비용도 지수가 있을까요? 네, 슈바베지수라고 있습니다. 독일의 통계학자인 슈바베가 19세기 후반에 발견한 법칙을 슈바베법칙이라고 합니다.

<소득수준이 높으면 주거비에 지출되는 절대적인 금액은 커지지만 전체 생계비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낮아지고, 소득수준이 낮으면 주거비에 지출되는 절대적인 금액은 적어지지만 전체 생계비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진다.>

이 법칙에 따른 지수를 ‘슈바베지수’라고 하는데요. 거주비를 가계 전체 지출액으로 나누고 100을 곱해서 %를 내는 것이죠. 예를 들어 가계 총 지출액이 100만원이라 할 때, 주거비로 25만원을 지출했다면 슈바베 지수는 25%가 되는 겁니다.

슈바베 법칙을 곰곰이 곱씹어 보면 ‘아, 악순환이라는 것이 바로 이거로구나!’하는 한탄이 나올 겁니다. 소득이 낮아질수록 먹고 자는 데에 지출도 힘겨워지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슈바베지수가 25%를 넘으면 ‘빈곤층’으로 분류합니다. 미국에서는 슈바베지수 25%를 주거비 보조금 지급 기준으로 삼고 있답니다.

그런데 주거비는 집세, 관리비, 수도비, 광열비를 다 포함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서울에 사는 청년들은 슈바베지수가 높아도 너무 높습니다. 2000년에 31.7%에서 2010년에는 36.6%로 올랐고 2020년 현재 어떤 청년은 무려 54.5%를 주거비로 지출하기도 합니다. 자기 집이 없는 경우 주거비가 삶을 압박하는 심각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서울에서 방 한 칸 얻어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 기거하는 곳에 압박이 없게 하고, 살아가는 일상에 싫증이 나지 않게 하라.”

노자는 늘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삶을 얘기합니다. 노자가 살던 2500년 전에도 주거 압박이 있었던 것일까요? 물론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겠지요. 형태는 다르지만 분명 사는 집에 압박은 존재했을 것입니다.

집은 몸을 편히 쉬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입니다. 집이 불편하다면 노자의 말처럼 ‘일상에 싫증’이 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노자는 무서운 선언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곧 거대한 위험이 닥칠 것이다.”

일상에 싫증이 난 사람은 삶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포자기한 삶은 주변의 위협에 무감각해질 수 있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어떤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되는 거죠. 이 상태가 되면 자기 자신을 죽음의 길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더러는 주변을 함께 죽을 곳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일가족이 함께 삶을 마감하는 일이 바로 그런 소식들입니다.

이때 노자는 곧 거대한 위협이 닥칠 거라고 말합니다. 거대한 위협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엥겔지수와 슈바베지수가 상승하면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점점 커지고 세상은 휘청거릴 것입니다.

불평등을 평등으로 수렴시켜 가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길입니다. 평등으로 가는 길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노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나만 귀하다고 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입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면 또 다른 나인 타자도 지극히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 귀히 여기지 않을 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타자에게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실천법으로 ‘내가 먼저야! 그건 내꺼!’처럼 어떻게든 자기가 짠! 하고 드러나야 한다는 욕망을 버리라고 노자는 제안합니다.

 

<노자 도덕경 72장 : 民不畏威(민불외위)이면 則大威至(즉대위지)하나니 無押其所居(무압기소거)하고 無厭其所生(무염기소생)하라. 夫唯不厭(부유불염)이라야 是以不厭(시이불염)하나니라. 是以聖人(시이성인)은 自知不自見(자지부자현)이요 自愛不自貴(자애부자귀)하여 故(고)로 去彼取此(거피취차)하나니라.

 

사람들이 어떤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거대한 위험이 닥칠 것이니, 사람들이 그 기거하는 곳에 압박이 없게 하고 살아가는 일상에 싫증이 나지 않게 하라. 무릇 싫증 나지 않아야 염증이 생기지 않느니라. 이리하여 성인은 자신을 잘 알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자기만 귀하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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