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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최새힘 작가

중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운 황제는 길이, 부피, 무게를 재는 단위를 통일하였다. 도량형이 저마다 다르면 환산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겨나고 때로는 착오로 인하여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면 말을 배우거나 쓰는 데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순식간에 퍼져나간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영어 social distancing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사회’라는 말을 사람마다 이해하는 내용이 달라 서로 다르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은 ‘거리 두기’에만 초점을 맞춰 사용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회의 유지와 존속은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므로 전염병도 사회적 협력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데 이를 사회적 거리 두기로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니 ‘물리적 거리 두기’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이 말은 사적 거리 두기의 반대이다. 애초 거리를 두는 이유는 개인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거나 감정상으로 싫어서 멀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옆 사람의 통화를 가까이에서 듣는다거나 전자기기의 화면을 엿보는 것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사적 권리나 감정을 이유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과는 달리 사회적 거리 두기는 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정도만으로도 전염이 되는 병을 막기 위해서 모든 구성원이 불가피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다. 여기에서 social이라는 말은 이런 까닭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로 번역한 순간부터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가 저마다 다르므로 이 말은 한국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언어는 온전히 사회적 산물이다. 사회가 개인의 집합이듯 언어는 두 사람 이상의 사이에서 불필요한 오해 없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살아남은 낱말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말이 가진 본연의 뜻은 느낌으로 대충 익혀 쓰는 것이 아니라 처음 만들었던 뜻을 그대로 익혀 사용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가령 수학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한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자연어는 이러한 점에서 어느 정도 허용하기도 하는데 자유롭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속성 때문에 뜻이 불분명해지면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외국어를 배울 때 정확한 낱말의 뜻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례를 통해서 낱말의 뜻을 찾아내려고 하니 이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어떤 경우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국말에서 같은 낱말을 이용하여 문장을 작성하더라도 토씨가 하나만 달라져도 뜻이 민감하게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영어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전치사이다. 그러므로 전치사에 따라 한 문장의 뜻은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를 어원에 의하여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므로 학생들은 큰 혼란에 빠지고 영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I met her (in/at) a play에서 전치사 in과 at은 둘 다 쓸 수 있고 내가 그녀를 이미 만났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지만 두 문장의 뉘앙스는 다르다. in을 쓰는 경우 나와 그녀는 배우 등으로 연극에 직접 참여하는 관계로 만났다는 뜻이고 at은 관객으로 만났다는 뜻이다.

생소하겠지만 영어에서 사용하는 전치사 at은 라틴어 접두사 ad-에서 온 말로 가까이 접근하지만 완벽하게 도달한 것은 아니라서 어느 정도의 오차를 가지고 있다. 다만 at은 최대한 초점을 맞추므로 in보다 관련성이 조금 더 낮다. 그래서 I got up at 7 o’clock this morning이라고 말하면 오늘 정확히 7시에 일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오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고 최대한 정확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영어교육자들은 at은 결단코 넓이나 부피가 없는 단 하나의 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불분명한 정의로 영어사전에 나오는 at의 모든 용법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t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면 이와는 정확히 반대의 방향을 나타내는 of와 off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한 번의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연쇄적으로 낳는다. 사회적 산물인 언어를 이런 식으로 익혀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모국어나 외국어나 가릴 것 없이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사용하면서 익히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거나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제대로 익혀서 엄밀하게 사용하거나 고도의 생각을 하거나 담으려면 말은 칼과 같이 정교하게 갈고 닦아야만 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정확한 결과를 얻으려면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이 명확해야만 한다. 옛날부터 그랬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속성이 더욱 요구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이다.

최새힘 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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