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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시민으로 돌아 온 이대직 전.여주부시장  “어머님 모시고 죽마고우들과 지내는 날들이 참 좋습니다”

남들은 저를 효자라지만 친구들에 비하면 제가 제일 얼치기
이통장들 특강요청 받아 강의 할 때 호응해 준 일 인상 깊어 
공무원들의 능력은 이끌어가는 사람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
공직 생활..."정의롭지는 못했어도 불의에 동참하지 않았다"

여주신문Tv 인터뷰-여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졸업하고 가남에서 첫 공직을 시작한 후 여주 부시장과 경기도청  농정해양국 국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방행정 전문가로 37년을 근무하고, 이제 다시 여주시민으로 돌아 온 이대직 전.여주부시장의 근황과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의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여주신문TV>를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으며, 지면의 발언 내용은 실제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장호 오늘은 지난 2017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여주시부시장을 지낸 이대직 전.여주 부시장을 모셨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대직  네~ 반갑습니다. 이대직입니다.

이장호 우선 호칭 정리부터 해야 것 같은데요. 어떤 직함으로 부르는 것이 좋을까요?

이대직  사실은 은퇴하고 호칭문제 대해 저도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오늘은 여주신문 애독자님들을 위해서 전.여주 부시장으로 하시는 것이 이해를 돕는데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장호 그럼 그렇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간단히 전.여주 부시장으로 소개해 드렸는데요. 많은 여주시민들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모르는 분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주 능서면 광대리에서 태어나셨어요. 여주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지금 가남읍인 가남면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무려 37년간 경기도의 다양한 분야에서 행정전문가로 활동하셨는데요. 지방행정전문가로서 행정을 하시다가 이제 공직에서 퇴임하시고 전업 주민으로써 살기 시작한 소감을 겸한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대직  우리가 보통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사회적응이 힘들다라고 말씀들 많이 하시는데 저는 1월 31일자로 이천부시장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면서 나와 있는데요. 사실은 여러 선배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어려운 것 같진 않아요. 다만 농업인들, 주민들과 직접 농사를 배우고 해보는데요. 저도 조금 전 지방행정의 전문가라고 소개해 해주셨는데 저도 전문가라고 생각했는데 농업인은 모두가 전문가이시더라고요. 이분, 저분한테 많이 물어보는데 물어보는 것이 농업전문가 분들께서는 조금 불편, 귀찮은 거죠. 뻔히 아는 것을 자꾸 물어보니까요.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있고 우리 친구들이 잘 같이 놀아줘서 아주 요새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장호 친구분 말씀이 나와서 그러는데요. SNS에서 보니깐 촌놈1, 촌놈2, 촌놈3으로 등장하는데요. 친구 분들이라는 것 알겠는데요. 같이 농사일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사실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일이잖아요. 어떤 분들이신지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대직  그 친구들이 정말 죽마고우인데요. 시골동네에서는 넉넉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낸 친구들입니다. 넉넉하진 않다는 표현들도 그렇고 없이 산 친구들이죠. 친구들이 모두 효자였어요. 촌놈1은 저고, 촌놈2는 어머니 봉양을 위해서 20년 전 귀향해서 지금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친구고, 촌놈3은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르신께선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전 정말 극진히 모신 친구들입니다.

제가 제일 얼치기고 촌놈2가 20년 전에 내려왔지만 그래도 농업에서는 전문가 축에 끼고, 촌놈3이  사업하면서 텃밭 가꾸고 농사지고 고구마 심어서 선물도 하고 그러는데...... 보통은 5시 반이나 6시쯤 만나서 서로 일 있으면 도와주고 아침 먹고 그러죠. 제가 도움을 제일 받습니다. 그 친구들한테......

이장호 아무래도 초보자이다 보니까요. 다른 분들도 효자라고 하셨는데 부시장님도 전에 보면 어머님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시는 것을 많이 뵙는데요.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이대직  예전만 못하시죠. 안타깝고 무릎, 허리가 안 좋으셔서 유모차에 의존하셔서 이동하시는데 그것도 힘이 드셔서 한 50m, 100m 가시면 쉬었다 가시고 쉬었다 가시고... 오늘도 집에서 나왔는데 들깨묵 부수는 것을 돕다가 나왔습니다.

이장호 전에도 보면 주말이면 농사를 지으셨잖아요. 이제는 전업 비슷하게 지으면서 아까 말씀하셨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직접 농사를 해보니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요?

이대직  저는 사실은 논농사가 제일 쉽다고 말씀 하시는데 저는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부터 밭일에는 익숙해져서 김 메고 그런 것은 자신 있는데 이번에 농사를 지으려고 밭을 논으로 풀었는데 논농사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밭이야 풀 나면 뽑으면 되고 그렇게 하면 되는데요. 촌놈2 친구에게 모를 얻어다가 심고 또 이앙기 운전은 촌놈3 친구한테 도움을 받아 심었거든요. 근데 물 관리는 잘못해서 모를 다시 내야할 것 같아요.

이장호 밭을 논으로 하면 밭에다 위에 뚝만 쌓아서 물을 부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대직  그게 아니더라고요. 포크레인으로 퍼다 나르고 평탄작업을 하고 해야 하는데 동네 어른 말씀을 들어보면 밭을 논으로 풀면 3, 4년은 가라앉고 앉히고 해서 고생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촌놈3 친구가 포크레인을 가져와서 옮기고, 우리 촌놈2 친구는 트랙터가지고 와서 평탄작업을 해서 애를 써서 했는데 제가 물 관리를 잘못해서 다시 심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장호 그래도 재미있으시죠?

이대직  재밌죠. 저는 재미가 있는데 두 친구들은 짜증의 연속의 날들이 되는 것이죠. 이것 좀 도와줘 저것 좀 도와줘 하니까요.

이장호 농사일이 참으로 귀한 일이잖아요. 

이대직  저한테는 제일어렵고요.

여주시청 재직시 경강선 전철 이용자들과 환담하는 이대직 부시장(사진=여주시청)

이장호 결혼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이대직  연애결혼을 했죠. 제가 아주 좋다고 사랑한다고 햇수로 3년을 쫒아 다녔죠... 처형이 가남으로 시집을 오셔가지고, 가남에서 집사람이 제과점을 조그맣게 했었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 만났고...

이장호 가남에서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을 하셨지만 알고 보면 가남에서 얻으신 것이 많네요.

이대직  그렇죠. 가남은 제가 처음시작하기도 했고 집사람하고 인연이 되기도 했고 처음 시작해서 인상이 깊어서 지금도 가남은 여주에서 제2의 고향같이 느끼고 있고 사실 가남에 자주 갑니다. 가남 분들과 교류를 하고 있고요.

이장호 지금 예전에 비해서 시간이 나름대로 안고 계시는데 공무원으로 37년 사셨습니다. 공직자로 생활하셨을 때와 공직자가 아닌 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차이 같은 것을 느끼고 계신지요?

이대직  그 차이가 꽤 많습니다. 그래도 주말마다 여주 와서 지내고 친구들, 동네 분들과 어울려서 많이 적응이 되고 소통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령 예를 들면 제가 부시장을 오래해서 부시장이 무엇을 합시다. 개선 합시다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시골에 와서 동네친구들과 하다보면 자기주장들이 강해요, 나름대로 그 분야에서 전문가예요. 제가 이렇게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하면 그게 곧 잔소리가 되는 거예요. 현직에 있을 때 옆에 사람이 일 하는 것이 잘못되는 것 같고 옳지 않은 것 같으면 훈수를 두어라. 코칭을 해라. 그래야 우리가 발전이 있는 것이다. 몸에 체화가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꾸 친구가 하는 일에 이렇게,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그 친구들은 잔소리로 들리는 거죠. 제가 하자고 하는 것이 맞아도 안하는 거예요. 자기 고집대로 하는 거예요. 그때 좀 답답하죠. 

이장호 혹시 농사일하면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이대직  일하면서 매일 그렇죠. 아침에 일어나서 모여서 얘기하면 사실 농업에 전문가라는 친구는 촌놈2 친구인데 이렇게 셋이 모이면 이일을 빨리 어떻게 쉽게 끝날까 생각을 해서 각자 생각대로 하는 거예요. 일은 일찍 끝나요. 꼼꼼히 옛날 기존방식대로 별 차이 없이 끝나는데 가만히 일 끝나고 보면 생각해보면 약간 2% 부족한데 하는 것이 저 혼자만의 생각인지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고 그래요. 그래서 자꾸 잔소리하게 되죠.

이장호 친구들 말고 동네에서 생활하시는데 특별히 힘든 점은 없는가요?

이대직  사실은 여주의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겠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우리 3친구가 제일 젊은 축에  낍니다. 밑에는 서너 분 계시고 저희 셋이 잘 노니깐 위에나 밑에는 사실 부러움에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요. 저희가 주축으로 지내요. 어르신들이 주로 많으시죠. 저희 어머님을 비롯해서 여성 어르신 분들이 많으세요.

이장호 지내시는데 큰 어려움이 없네요.

이대직  불편한 것 전혀 없습니다. 어르신들이 많이 이뻐라 해주시고 친구들도 그렇고 저희 옆집이 구이장이라고 그러죠. 전에 이장 보시던 분이 많이 도와주시고 제가 나가 있을 때도 그랬지만 저희 집 뒷집, 옆집 어머님 혼자계시니깐 많이들 찾아주시고 동무해주시고 감사할 일이죠. 불편할 일이 아니라 항상 감사할 일만 있는 거죠.

이장호 보통 공무원 분들이 행정학을 공부하는데 경영학을 하셨더라고요. 경영학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이대직  제가 여주에서 매류초등학교, 세정중학교. 지금은 여주고등학교 예전에 여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을 시작하고 대학하고 대학원은 사실 야간을 했어요. 한경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 했고요. 행정학을 하면서 행정만하고 그러니깐 이론적인 것을 습득을 하고 많이 도움이 되었는데 사실은 대학원가서 경영학을 하게 된 것이 MBA식으로 해서 도청에서 보조도 해주고 공무원도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각 자치단체장들 하시면 경영학을 전공하고 민간기업에서 경영학을 하신 분들이 한창 또 많이 선출되고 그러셨잖아요. 공무원도 경영을 알아야 한다라고 해서 제가 그때 당시에는 앞으로 꽤 오래해야 하니깐 경영학을 알아야 공무원을 하는데 도움이 되겠구나. 경영학을 공부를 했는데요. 사실 경영학이 어렵더라고요. 나는 경영학해서 수학이나 이런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학도 필요하더라고요.

이장호 제일 어려운 것이 회계분석, 통계 등등...

이대직  말씀 잘해주셨는데요. 공무원을 하면 예산하고 회계를 꼭 봐야한다고 하는데요. 제가 회계과는 근무를 해봤어요. 예산을 전혀 모르는데 통계는 실무 담당을 했었는데 사실 통계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시 단위면 통계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상식적으로 통계를 해야 행정정책을 수립할 수 있고 기반이 되는 건데 요즘은 표본추출을 통해 행정을 하다보니깐 현실하고 약간 괴리감이 있는 정책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통계의 정확성이 좀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않는가(생각이 듭니다) 표본추불 하고 있는 것은 통계오류라는 해야 하나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닌가(생각이 듭니다)

2018년 7월 여주부시장 이임식에서(사진=여주시청)

이장호 여주 부시장으로 부임했을 때 많은 분들이 금의환향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어떤 분이 가장 기뻐하시던가요?

이대직  가장 기뻐하신 분은 어머님이시겠죠. 어머님은 기뻐 하시면서도 걱정도 많으셨죠. 고향에 와서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봐 사실 걱정 많이 해주셨고 여주부시장으로 올 때 친구들이 같이 기뻐해줬고 재임 1년 8개월 정도 있을 때 친구들한테 정말 고마운 것이 저한테 무엇을 해 달라고 부탁한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나중에 여주 부시장을 떠나서 몇몇 친구들을 만나서 그때 여주 부시장 할 때 어려운 것이 있었으면 얘기해주지 그랬어? 들어줄지 안 들어 줄진 몰르지만...... 친구가 어렵게 지역에 일하러 왔는데 부담주기 싫어서 안했다. 오히려 떠난 다음에 더욱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퇴직한 요새 만나다 보면 그런 친구들 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정말 참 고맙더라고요.

이장호 처음 여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셨고, 30년 이상 경력을 쌓고 나서도 여주시에서 부시장으로 일하시면서 처음 시작하면서 느꼈던 또 부단체장으로써 느꼈던 부분 중에 많은 차이가 있으셨을 텐데요. 여주 부시장으로 계실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소개 좀 부탁드릴까요?

이대직  사실은 여주 부시장으로 온다는 것이 저도 상당히 부담도 됐고 제가 초임 근무했다 왔으니깐 제가 오기 전에 저보다 더 높은 직위에서 있던 현직에도 계시고 해서 많이 부담도 느끼고 했는데 직원들이 참 잘해줬고요. 사실 여주 부시장하면서 시장님을 보필하는 일이니깐 나름대로 하고 그런 것보다는 직원들한테 행정력을 향상시키고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고 내부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고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이야기하면 직원들한테 더 열심히 하자. 더 분발하자. 직급별로 교육이라는 것을 빌려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고요. 

저한테는 상당히 영광스럽기도 한데 이통장님께서 저한테 특강을 해달라고해서 여주의 연혁, 고려말, 조선시대, 일제강정기 근세사를 내려오면서 여주의 문제점, 여주의 현재 현안, 기타 등등에서 특강을 해드렸는데 이통장님들이 적극 호응해주시고 정말 맞는 이야기다. 여주 사람이라서 저렇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다라고 해주셔서 제가 강의를 하면서 이런 말씀까지 드려야 하나 속으로 걱정을 했는데 나중에 이통장님들이 호응을 해주셔서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이장호 행정 중에서 여주시가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서 전통적으로 잘하는 것 무엇이 있을까요?

이대직  여주시 공무원들이 보고서 작성을 잘합니다. 현장행정도 잘하고요. 공무원조직이라는 것이 대동소이 하니깐 조직에서 큰 차이는 없는데 그 공무원들을 관리, 지원 해주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어떻게 지원하고 어떻게 유도하고 어떻게 끌어가는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직원들의 능력은 그때그때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차이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누가 공무원들과 호흡해서 일을 하느냐? 누가 관리자냐? 누가 국장이냐?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조직은 항상 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장호 오늘 충분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출연해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대직  모든 여주시민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항상 웃는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여주가 낙후되었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낙후된 것이 아니라 천혜의 자연을 잘 갖고 있는 것이 여주의 큰 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장호 항상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는 이대직  전.여주 부시장님과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대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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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직 전.여주부시장은?

여주시 능서면에서 태어나 여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여주군 가남면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경기도지사 비서관 △경기도인재개발원 역량개발지원과 과장 △경기도청 언론담당관 경기도청 총무과장 △과천시 부시장 △여주시 부시장 △파주시 부시장 △경기도청 농정해양국 국장 △경기도 이천시 부시장 등을 지냈다.

/정리 박혜선 기자

 

이장호 기자  yeojup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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