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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68. 편 가르기를 멈추다
장주식 작가

최근에 코로나와 관련하여 이런 통계 기사가 나왔습니다. 전 세계 코로나 19 확진자의 약 30%, 사망자의 약 20%를 차지하는 미국의 예입니다.

<루이지애나주의 코로나 19 사망자 중 70.5%가 흑인이다. 이 지역 전체 인구 중 흑인은 32%이다. 일리노이주 시카고는 코로나 19 확진자 중 50%가 흑인이며 사망자 중 65%가 흑인이다. 뉴욕주는 히스패닉과 라티노가 코로나 19 사망자 중 33.5%이며 흑인은 27.5%이다.>

흑인, 히스패닉, 라티노는 미국에서 빈곤계층 비율이 높습니다. 통계로 보면 전염병 코로나 19는 빈곤계층에게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빈곤계층은 ‘사회적 격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가 격리에 충분한 주거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며, 생활을 위한 수입을 마련하기 위해 재택근무도 어렵습니다. 재택근무가 거의 불가능한 업종에 종사하기 때문이지요.

전염균에 노출되는 빈도도 높을 수밖에 없는데, 전염되면 치료도 쉽지 않습니다.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빈곤계층은 코로나 19 사망에 결정적인 당뇨, 고혈압, 비만, 천식과 같은 기저질환도 높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19 사망자의 99%가 기저질환자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나는 코로나 19가 보내는 특별한 메시지를 하나 발견합니다. 그것은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라는 경고성 명령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빈곤을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로 보입니다. 부를 공유하면 빈곤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공유하는 방법은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겁니다. 기본소득도 그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공공의료입니다. 병든 사람은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 있어야만 치료받을 수 있다는 건 지나친 편 가르기입니다. 돈 있는 사람 편만 들게 만드는 의료시스템은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노자도 이런 말을 합니다.

“적을 잘 이기는 자는 편을 가르지 않는다.”

여기서 ‘적’을 코로나 19 바이러스라고 해볼까요? 이 적은 자기가 기생하기 좋은 숙주를 찾아다닙니다. 불결한 주거환경, 밀집된 사회활동, 치료받지 않는 대상 등등이죠. 이런 조건에 딱 알맞은 대상이 바로 빈곤계층입니다. 기생하기 좋은 숙주에서 충분히 세력을 키운 바이러스는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변종이 되겠지요.

더 힘이 센 변종이 된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자신을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결국 빈곤계층에게만 바이러스가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죠. 자본가와 노동자, 지배층과 피지배층, 부자와 빈자 등등으로 편 가르기를 꾸준히 해 온 현 인류에게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는 점점 불평등하게 쌓여갑니다. 부의 사유화가 극단화된 것이죠.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편 가르기’의 틈을 노려 공격합니다.

코로나 19는 우리들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려 합니다. 변화되는 일상이 긍정적인 방향이 될 수도 있고 아주 나쁜 방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방향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편 가르기’부터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매우 중요한 시험대에 우리가 섰다고 봐야 합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게 된다면 수많은 인간은 ‘잉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쓸데없이 공간만 차지하고 비효율적으로 생산물만 허비한다고 규정되는 잉여 인간은 살처분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미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하지만 상상은 언제든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19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을 숙고해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현생인류는 과연 어떤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하는 기회 말입니다.

<노자 도덕경 68장 : 善爲士者(선위사자)는 不武(불무)하고 善戰者(선전자)는 不怒(불노)하며 善勝敵者(선승적자)는 不與(불여)하며 善用人者(선용인자)는 爲之下(위지하)하나니라. 是謂不爭之德(시위부쟁지덕)하고 是謂用人之力(시위용인지력)하며 是謂配天(시위배천)이라하니 古之極(고지극)이니라.>

잘 완성된 무사는 무기를 쓰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성을 내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사람은 편을 가르지 않으며,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스스로 아래가 된다. 이러한 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사람을 쓰는 힘이라 하며, 하늘과 짝이 되는 일이라 하니,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극한 이치이다.

장주식 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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