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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중랑천(양주·의정부·서울)②

한국의 강-중랑천(양주·의정부·서울)②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4.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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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과 수락 사이로, 갈꽃이 아름다운 서민들의 강

중랑천은 익숙한 이름이다. 홍수가 나면 제일 먼저 차단되는 둔치, 도심으로 들고 나는 동부간선도로의 차량정체도 묵묵히 이겨내는 강, 이른 새벽 에어로빅으로 하루를 여는 서민들의 놀이터가 강 따라 마을마다 펼쳐져 있다. 

일찍이 서울의 동부 외곽은 모두가 양주 땅이었다. 오늘날 노원구의 전신은 양주군 노해면(蘆海面)이었다. 갈숲이 얼마나 넓었으면, 갈꽃이 얼마나 지천으로 눈부셨으면 갈대의 바다라 했을까. 중랑천이 있어 서울의 동쪽을 흐르는 물은 도봉, 수락, 불암 사이를 넉넉하게 안겨 한강으로 갈 수 있다.

 

경춘선과 중앙선 철길의 흔적

월릉교는 중랑천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본격적으로 둔치가 넓어지면서 자치구들은 앞다투어 운동기구를 설치했다. 중랑천변은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아직 어둠도 걷히기 전에 아낙들은 서둘러 에어로빅의 율동을 위해 모여든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고민하던 시대는 옛말이다.  

아줌마들은 늘어나는 뱃살을 어떡하든지 줄여보겠다는 일념으로 아침잠을 줄인다. 대강대강 동작만 흉내 내는 할머니들이야 그렇다 쳐도 아줌마들은 참 궁금하다. 그 시간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서야 하는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는 누가 한단 말인가. “세월 바뀐 것 모르누먼, 요즘 세상에 아침밥 일일이 다 챙겨 먹고 다니는 사람 몇이나 되냐고...” 아줌마들이 그렇게 답할 것만 같다.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분기하여 화랑대역을 지나던 경춘선 옛 철로는 레일을 모두 뜯긴 채 시민공원산책로와 자전거길로 변했다. 검붉게 녹슬어 있는 철교의 잔해만이 기적소리가 배어 있었던 시절을 말해 준다. 그러나 중랑교 못미처에 있는 중앙선 철교는 당당한 현역이다. 그래서 거의 와인색으로 변해버린 철교에 세워진 전철용 철골이 고맙기까지 하다.

장평교 근처 동쪽으로 보이는 아차산(287m) 능선은 용마산(348m) 아래에 용마폭포공원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폭포라는 것이 아무리 산골짜기에 있다 해도 수량이 부족해서 여름 한 철이 아니면 쫄쫄 흐르는 수준이라 굉장한 묘사를 듣고 찾아가서도 실망하기 쉬운데 용마폭포공원은 인공폭포지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채석장의 변신이다. 물론 이 겨울은 그 폭포도 방학이겠지만. 인간이 자연의 유산인 화강석을 캐어 먹는 것을 보는 눈은 곱지 않다. 그러고도 인간은 미려한 대리석이나 화강석의 단단한 석질로 치장하는 이중의 잣대를 지니고 산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위한 호사의 대가를 치를 준비만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수탈을 넘어선다. 아예 채석의 단계에서부터 인간이 고갱이를 빼먹은 자리에 채울 꽃을 준비한다면 우린 그 청사진을 들고 발파의 위험도, 날리는 분진도 참아낼 용의가 있다.

한 때 면목동과 중곡동 일대는 봉제업의 최말단 기지였다. 집집마다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지루함을 달래려는 라디오의 트로트 음악이 반지하방에 가득하던 때도 있었다. 아직도 43번 국도와 3번 국도가 겹치는 동이로 주변에는 그런 흔적들이 낡은 건물들에 남아있다. 원단을 쌓아놓아 가로막힌 유리창은 바람조차 들어갈 틈 없이 갑갑하다. 자전거 바퀴가 천천히 굴러갈수록 생각은 집 한 채 값이 500만원을 간신히 넘던 1970년대 초의 풍경에 머문다.

장안평인가 장한평인가

어느새 자전거는 군자교를 지난다. 40km에도 못 미치는 중랑천 여정은 아끼듯이 걷는 느린 걸음이 제격이다. 용답동에 관한 기억이다. 어느 날 ‘장한평’이라는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지하철 5호선을 개통하며 장안평에 ‘장한평역’을 만들었다. 서울시 지명위원회가 친절하게 찾아준 장안평의 본명이란다. 원래 장한평에는 조선 시대부터 목마장(牧馬場)이 있었다. 대동여지도에도 ‘장한벌’이라 불렸던 곳인데 일본사람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장안평’이라고 불렀단다. 모두들 헛갈렸나보다. 1995년 어느 일간지도 친절하게 장안평의 역사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본명은 찾았으되 관성은 길고도 질겼다. ‘장안’과 ‘장한’이 공존하지만 그렇다고 장안의 위력이 줄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도 장안평은 국내 최대의 중고차거래시장이다. 원래 이곳은 공구상이나 있던 낙후된 곳이었는데 1976년 종로3가의 자동차부품상들이 교통체증을 유발한다고 강제로 이전해온 것이다. 청계천 공구상가가 송파 장지지구에 가든파이브를 야심차게 짓고도 여전히 어정쩡한 상태인 데 비하면 성공적이다. 아마도 시대가 1970년대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80년대의 마이카 붐, 90년대의 허가제 중고차거래의 신고제 전환, 2000년대 SK의 진출 등으로 중고차시장은 신차시장의 2배 이상 불어났다.

장안평은 한 시절 호객꾼들의 유인과 후려치기와 눈속임 같은 서글픈 자동차거래의 격전장이었다. 경찰서로 쇄도하던 고소, 고발의 시대를 지나면서 쇠락을 거듭했다. 쇠락이 있으면 반전도 있는 법, 2014년 ‘종합자동차 유통 벨트화’라는 기치를 내걸며 왕년 장안평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여전히 장안평과 장한평은 뒤죽박죽으로 사람들 입에 살아있다.

청계천과 오래된 석교 ‘살곶이다리’

한양대학교를 바라다보면서 청계천을 가로지른다. 자전거는 갈 수 없는 청계천이다. 사람만으로도 넘치니 자전거가 들어설 공간은 없다. 좁은 차로를 다이어트 하여 자전거전용로를 만든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다. 살곶이다리에 이르면 강폭도 넓어져 이제 중랑천 여정도 마무리에 가깝다. 용비교와 두모교가 지척이다. 구한말에 서빙고에서 채집하던 얼음을 한강 오염으로 두모포(현 옥수동)로 옮겼다는 기록을 보면 수질 오염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나 보다. 살곶이다리는 조선 시대 돌다리 중에서 가장 길다. 마장, 군대 열병장, 광나루 매사냥을 가던 임금님 행차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뚝섬에서 한강 건너 봉은사로 가던 도선을 타기 위해서도 쓰였고, 강릉, 충주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던 다리였다. 세종 2년(1420년)에 착공하여 무려 62년이 걸렸으니 사연도 많았겠지. 대원군이 경복궁 재건 때 돌다리 일부를 갖다 쓰기도 했다하고, 을축(乙丑)년(1925년) 대홍수에 부서진 채 우리 현대사를 지켜보기도 했을 테니까.

뚝섬과 ‘성수동시대’의 부활

용비교에 이르면 한강이다. 지금은 물에 잠겼지만 두모교와 용비교 아래엔 금호동 옥수동 아이들이 여름날 헤엄쳐 건너다니던 모래섬 2개가 강북강변도로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짧은 중랑천 여정이 아쉽다면 성수대교 아래서 토끼굴을 통해 서울숲으로 올라서 보라. 뚝섬의 버려진 땅을 서울숲으로 만든 것은 절묘한 선택이다. 집이 아니라 주거예술이라는 갤러리아포레가 서울에서 제일 비싸다는 아파트로 솟아올라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남향에 대한 선호는 신앙에 가깝다. 서울숲이 정원이고, 한강이 앞 냇가다. 한강을 돌아앉아야 볼 수 있는 압구정동은 잽도 안 된다. 늦게 들어선 고급아파트가 터줏대감 삼표를 향해 떠나라고 난리더니 2022년에는 이전하기로 했으니 뜻을 이루었다. 뚝섬은 고양군 뚝도면이었다. 어두운 지하를 지루하게 1km 간격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2호선 지하철이 땅 위로 솟아오르는 지점이 중랑천부터다. 건설비용을 아끼자고 만든 고가전철은 철공, 염색, 가발 봉제공장을 거쳐 공장들이 해외로 피신해 나갈 때까지 성수동의 쇠락을 고공에서 내려다보았다. 이제 구두거리는 빼어난 손기술로 다시 태어나고, 용도 폐기된 공장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따산즈(大山子)의 ‘798예술구’를 본딴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눈 내린 2004년 겨울 북경에서 만난, 적벽돌이 검게 그을린 공장은 위압적이었다. 독일과 소련기술로 무기를 만들던 공장, 공산당의 증산 구호가 그대로 붙어 있는 벽, 옛 철제 선반 옆에 놓인 금속제 설치미술은 기괴하지만 변화하는 중국을 상징했었다. 그곳이 세계적 미술의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치솟는 임대료에 밀려나는 예술가들이 바로 실존이다. 성수동은 닮아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은 허망한 것일까. 핫한 지역으로 떠오른 성수동의 영화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워낙 큰 덩치라 이겨내는 게 용하다. 분당선 전철로 한 정거장 한강 바닥만 건너가면 압구정이고, 청담이다. 서울숲역은 또 다른 문화로 가는 출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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