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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최새힘 작가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면서 살아왔다. 새로운 물건이 나올 때마다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래야 그 물건의 편리성 만큼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다루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물건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에 대해서도 범위를 정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일을 해왔다. 가령 생존조차 버거운 인류 초기에는 ‘부끄러움’은 실제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참 후에나 어떤 행동으로 말미암아 마음속 불편함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고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만들고 서로 이 말을 사용하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한 도덕적 노력은 이 단계를 넘어서야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매일 물건이나 개념이 생겨나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낱말이 출현하는 정도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새로운 말도 간단히 만들어 쓴다.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는 하려는 일에 적합하도록 명령어와 문법을 재창조하기도 한다. 전에는 없던 인공어도 쉽게 생겨나는 마당에 자연어도 새로운 낱말을 적절하게 만들지 못하면 그 말은 생명을 다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불행하게도 바로 우리말이 이런 쪽에 속하지 않나 싶다. 오늘날 한국말에서 신어는 대부분이 외국어에서 온 것으로 한국말로 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서 만든 물건이나 개념도 외국어로 명명하는 경우가 흔하다. 본디 말이라는 것은 다른 말과 교류가 활발한 법이다. 자기 말로만은 세상을 살 수 없어 다른 말에서 새로운 낱말을 빌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새로운 말이 다른 말에서 빌려와야 한다면 이제 한국말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새롭게 생겨나는 말은 명사가 대부분이다. 한국 사람은 예로부터 외국어나 새롭게 만드는 말은 뜻이 또렷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명사 취급을 해왔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품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본말의 품사와는 상관없이 ‘∼하다’, ‘∼지다’와 같은 말을 덧붙여야 한다. 한국말로 만든 신어라고 해도 앞에 ‘개∼’, ‘극∼’, ‘역∼’ 정도의 말을 붙이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신어 중에는 첫눈에 그 뜻을 알아보고 이 말은 오랫동안 쓸 수 있겠다 싶은 것을 찾기란 어려운 형편이다.

한자는 글자가 너무 복잡하여 정보화시대에 입력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지만 아주 옛날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日), 달(月), 물(水), 불(火), 나무(木), 풀(艸) 따위 것들의 형태를 단순화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세상은 너무 복잡하게 발전하였기 때문에 그런 단순한 몇 가지의 것들만으로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물건이나 개념을 특정하기에는 부적절한 글자가 되어 버렸다. 단적으로 현대에 기계(機械)를 ‘나무’로 만드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글자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고정된 형태를 가지지 않은 말이 문제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한국말이 마주한 위협은 새로운 말을 쉽사리 만들지 못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한국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쓰는 말에 대한 이해가 낮고 이로 인하여 한국말을 응용하여 새로운 생각을 하거나 담아내려는 노력이 부족해지는 것의 악순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이를 바로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엉뚱하게 훈민정음은 과학적인 문자라서 세상에 소리를 아주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고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자랑만 하고 있다. 이는 음식은 맛이 없는데 담긴 그릇이 훌륭하다고 하는 격이다.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이 말에는 큰 오해가 있었다. 이 말은 공구가 좀 맞지 않아도 솜씨를 발휘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라는 뜻이 아니었다. 톱, 끌, 대패 따위의 연장은 날이 깨지거나 무뎌지면 사용할 수 없으므로 목수들은 자신의 연장을 남에게 빌려주거나 남의 연장을 빌려 쓰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철물을 만드는 기술이 좋지 못했던 과거에는 더 그러했을 터이다. 오늘날에도 목수들은 자신이 사용할 연장은 자기가 날을 잘 갈아 녹이 나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연장이 부실하다면 그것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과 정확히 같다. 말도 마찬가지다. 글자가 말을 담는 그릇이라면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이 새로운 시대의 문물을 잘 담아내지 못하면 사람들의 생각이 시대에 잘 맞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훌륭한 목수가 자신의 연장을 매일 갈고 닦듯이 한국인은 한국말을 매일 갈고 닦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해야 한다.

최새힘 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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