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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웰다잉’과 ‘원격 조문’

여강여담- ‘웰다잉’과 ‘원격 조문’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20.04.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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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조문을 다녀오며, 원격조문 시스템 절실해

웰다잉을 위한 인프라의 큰 그림, 대기업이 나서야

조용연 주필 

코로나가 막 확산되며 공포가 극심했던 한 달 포 전 일이다. 모두 저어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다녀와야 할 조문이어서 전라남도 해남까지 다녀왔다. 수원에서 빨리 가도 4시간 반이니 하루를 꼬박 잡아먹는 길이다. 바닷가 마을은 마스크 쓴 외지사람들이 부끄러우리만치 고요했다. 아, 이런 상황이라면 ‘원격조문’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굴지의 보안기업이 준비하다 좌절된 ‘원격조문’

이런 시스템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내의 독보적 보안기업인 S사는 이미 7년 전에 ‘웰다잉 산업’의 인프라구축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었다.

여전한 조문의 풍습과 애사는 함께 모여서 슬픔을 위로해야 한다는 대명제 아래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발품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코로나 사태로 ‘거리두기’가 당연시 되면서 화상채팅서비스 ‘줌(zoom)’을 이용한 쌍방향 교육·면접이 등장하고, 온라인 생중계, 공연 스티리밍에다 대형통신 업체의 결혼식 양방향 생중계까지 선 보이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상가 조문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화상으로 중계하는 ‘원격빈소’를 설치하려 했던 7년 전의 계획은 아주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런 조문 관행 또한 ‘혼밥 시대’가 급속히 진행되고 ‘스몰 장례’가 보편화 되면 없어질 풍속도겠지만 조만간에 그리되기는 어렵겠다.

‘웰 다잉’은 ‘장례 3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은 인간이 태어나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통과의례다. 4차 산업 시대로 진입하면서도 가장 낙후된 인프라는 ‘웰다잉’의 영역이다. 유별나게 우리 사회는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꺼려하여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지 못했다. 그저 장례 3일 뒷처리에 급급한 상조업체가 난립했고, 상조 비리가 터지고 난 뒤에야 이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을 부랴부랴 규제했다.  오늘날 말끔한 장례식장이 등장한 것도 수십 년 된 이야기가 아니다. 역시 삼성·아산병원 같은 최고의 병원들이 장례식장 현대화의 모델하우스 역할을 하자, 시골 읍 단위 장례식장까지도 이에 못지않게 따라 했다.

정갈한 빈소의 속을 들여다보면, ‘황망한 3일’ 동안에 엄벙덤벙 결정되고 이루어지고 있는 일부터, 어디서부터 처리해야 할지 모를 ‘웰다잉’의 전 과정을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현실은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다.

이를 간파한 기업은 가입자 한 사람을 기준으로 △병원의 소개와 건강관리 △질병에 대한 명의 연결 △말기암 등 임종을 위한 양질의 호스피스 △장례 3일간 관리 △묘지나 수목장 등 현명한 선택 도움 △‘49제’ 등 종교의식의 주선, △유산의 배분 등 상속을 둘러싼 갈등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 △유족의 슬픔 관리와 같은 영적 상담 주선까지 그야말로 ‘웰다잉 프로세스’ 전반을 관리할 인프라를 구축하려 했다. 이 또한 대기업이 영세업종에까지 나선다는 저항이 생길지 모른다고 지레 겁을 먹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과정이 영세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전국적 네트워크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기업이 아니면 나서기가 어렵다. 이 장엄한 소멸의 과정에 대해 누군가는 나서서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총대를 짊어져야 할 시점이 늦어도 한 참 늦었다. 단계마다 대기업이 직접 다 장악해서 호주머니 돈을 긁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각종 업소 즉, 상조업체, 공원묘원, 수목농원, 꽃집, 병원, 호스피스, 변호사, 의사, 심리상담사 등 다양한 업체, 전문가들이 파생적으로 참여해야만 가능한 제도다.

‘웰다잉’ 인프라는 대기업 공익재단이 나서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역병이 창궐하는 ‘혼돈의 강’을 우리는 지금 건너가고 있다. 앞으로도 코로나류의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인류를 더 괴롭힐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해 더 촘촘한 방역망을 구축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행복한 작별을 위한 ‘웰다잉’의 얼개 또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공공이 부담하기에는 길이 멀다. 절차는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그다지 수익성이 높지 않은 이런 일이야말로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 국가적 대 재난이 난 뒤 수백억씩 등 떠밀리듯 성금을 내는 그런 사회공헌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분야에 공익재단이 평소에 나서야 한다. 우리 사회 각 분야가 발전되어 왔지만 누구도 함께 묶어서 보지 못한 것이 ‘웰다잉’이다. 온종일을 걸려 조문을 다녀오며 든 생각이지만 죽음의 복지에 우리 사회가 공감의 ‘좋아요’를 눌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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