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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63. 생명은 사소함에 흔들린다
장주식 작가

이성복시인의 시평집 『무한화서』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해군 수병들은 육군과 달리 머리를 약간 길러요. 물에 빠지면 건져 올리기 위해서라 하지요. 디테일이란 그런거에요. 생명을 좌우하는 것들은 본래 사소한 것들이에요.>

 

사소한 것들을 우리는 쉽게 지나칩니다.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성복 시인은 사소한 것들이 생명을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노자도 마찬가지에요.

“사소한 것들을 너무 쉽게 여기면 반드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소함이란 바로 우리 일상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들 일상은 사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요. 일상의 사소함 들이 거짓이면 우리 삶 전체가 어긋납니다.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을 볼 때도 우리는 사소한 것들에서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일을 도모할 때엔 쉬운 것에서 시작하고 큰 것을 이룩하려면 미세한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어려움’이나 ‘큼’을 뜻하는 난대(難大)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최대치 목표 같은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최대치 목표가 있다면 그건 당연히 쉽게 도달할 수가 없죠. 그러나 저 높고 먼 곳을 바라보고만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노자의 말처럼 현재 내가 하기 쉬운 것부터, 내가 잘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쉽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해 나가면 마침내 목표에 도달할 수도 있는데요, 노자는 사람이 도달할 최고 경지의 목표점을 이렇게 말합니다.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모든 원망스러운 일도 덕으로 갚을 수 있게 된다.”

원한을 덕으로 갚는 경지는 어떤 경지일까요? 보통 우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합니다. 덕에는 덕으로 갚고 원한은 원한으로 갚으라는 거지요. 그런데 노자는 원한도 덕으로 갚으라고 말합니다. 마치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건 참 쉽지 않은 경지인데요, 노자는 쉽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라는 주문 외에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합니다. 세 가지입니다.

 

“‘함이 없음’으로 행위하고 ‘일 없음’을 일삼고 ‘맛없음’을 맛있다 하라.”

함이 없음인 무위(無爲)와 일 없음인 무사(無事)와 맛없음인 무미(無味)는 노자철학의 핵심이자 뿌리라고 하겠습니다.

 

바로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원한도 덕으로 갚는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무위는 무불위(無不爲)와 짝을 이룹니다. 무불위는 ‘하지 않는 것이 없다’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한다는 뜻이죠. 결국 무위는 ‘하지 않는 것이 없는, 모든 것을 다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무위의 예를 하나 들어 보일까요? A, B, C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갑니다. 오십 미터 전방에 송아지만한 개 두 마리가 사납게 짖고 있습니다. 무섭습니다. 누구나 개가 있는 곳에서 먼 쪽에서 길을 지나가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맨 바깥쪽에서 걷던 A가 슬쩍 개와 가까운 쪽으로 와서 걷습니다. B와 C는 아무 말은 안 하지만 미안하면서도 한결 편안해지는 마음이 들겠지요. 개가 공격을 하면 A가 먼저 공격을 당할 것이니까요.

 

자, 세 사람이 가까이 가자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댑니다. 세 사람은 아주 빠른 걸음으로 개집 옆을 지나갑니다. 안전거리로 멀어졌을 때 세 사람은 개를 돌아봅니다. 개는 이제 더 짖지 않습니다.

이때 개와 가까운 쪽에서 걸은 사람이 바로 ‘무위를 행위한’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냥 무심하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슬쩍 자기 자리를 개와 가까운 곳으로 옮겨 걸었으니까요. 무위란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사와 무미도 같습니다. 아무런 일도 안 한 듯하고 아무런 맛도 없는 듯하지만 결국 일이 되고 맛이 나는 그런 것이죠.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삶도 그렇고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내가 잘할 수 있는 사소한 것부터 진실하게 해나가다 보면 좋은 삶을 살게 되고 좋은 작품도 생산될 것이니까요.

 

마치 위에서 예를 든 ‘개를 덜 무서워하여, 개를 무서워하는 두 친구를 안심시켜 준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아무 일도 안 한 것처럼 무심하게 해냈으니까요.

 

<노자 도덕경 63장 : 爲無爲(위무위)하고 事無事(사무사)하고 味無味(미무미)하면 大小多少(대소다소)를 報怨以德(보원이덕)하리라. 圖難(도난)에 於其易(어기이)하고 爲大(위대)에 於其細(어기세)하나니 天下難事(천하난사)도 必作於易(필작어이)하고 天下大事(천하대사)도 必作於細(필작어세)이니라. 是以聖人(시이성인)은 終不爲大(종불위대)하여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하나니라. 夫輕諾(부경락)은 必寡信(필과신)하고 多易(다이)는 必多難(필다난)하나니 是以聖人(시이성인)은 猶難之(유난지)하여 故終無難矣(고종무난의)하나니라>

 

‘함이 없음’으로 행위하고 ‘일 없음’을 일삼고 ‘맛 없음’을 맛있다 하면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모든 원망스런 일도 덕으로 갚게 된다. 어려운 일을 도모할 땐 쉬운 것으로부터 하고 큰 것을 만들 땐 미세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나니 세상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데서 만들어지고 세상 큰일도 미세한 것에서 이루어진다. 성인은 끝내 큰 것으로 시작하지 않으니 결국 큰 것을 이룩할 수 있다. 무릇 가벼운 허락은 반드시 믿음이 적고, 지나치게 쉬운 건 반드시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되니 성인은 세상사를 모두 어렵게 여겨 마침내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된다.

장주식 작가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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