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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경안천(용인·광주)②

한국의 강-경안천(용인·광주)②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3.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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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천, 사라져가는 이름 김량과 경안을 지켜보다

광주산맥이 기를 다해 주저앉는 어간에서 경안천은 출발한다. 와우정사에 드러누운 부처님이나, 물줄기의 정수리에  눌러 앉은 문수보살이나 해실 골짜기가 범상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계시리라. 
세월이 가다보니 인구 100만을 넘긴 용인이나, 서울의 동남쪽 관문, 땅금 비싼 광주(廣州)나 어여쁘고 오래된 이름 김량(金良)과 경안(京安)을 잃어버리긴 매한가지다. 
오염의 강을 털고 이제 수도권의 물 창고 팔당댐으로 가는 물 한 바가지라도 더 보태는 경안천, 이 겨울 강물이 얼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습원에 철새가 분주하다.

그리워할 선현이 있어 부럽다, 모현(慕賢)

왕산교에 이르면 모현면 소재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가 들어선 지 30년이 넘었으나 학교 앞 캠퍼스촌은 썰렁하다. 몸피가 늘어난 서울 시내 대학들은 정부 시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운명 속에서 용인이 최적지였다. 엎어지면 코 닿는 수도의 자장(磁場圈)에 자리를 트는 것은 ‘지방화’라는 포장지만 살짝 걸친 임시변통이었다. 이제는 도시의 한가운데가 되었지만 경희대가 그랬고, 경기대도 그랬다. 명지대도, 용인대도, 강남대도 서울 기준 40km, 백리 반경을 절대 넘기지 않으려 애썼다. 골프장으로 가는 길 사이사이에 절묘하게도 들어섰다. 하기야 30년 전의 용인하고도 이 후미진 모현은 시골도 그런 시골이 없었다. 지금이야 빨간색 급행버스가 광화문과 이 산골짝을 시점과 종점으로 이어준다. 서울의 확장이지 지방화는 더욱 아니었다.

모현면은 이름이 아주 젊잖다. 교육적이다. 자존심 센 한국외대가 들어올 만하다. 오래전 이름이 모현촌면(慕賢村面)인것을 보면 모현은 누군가를 숭모하거나 흠모하는 동네다. 모현면 능원리에 묻힌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이 숭모의 그분이라고 향토지는 말한다. 지조를 지킨 개성선죽교의 참변, 국사 시간에 아무리 졸았다 해도 잊을 수 없는 조선조 창건의 역성혁명에 맞선 충신이다. 개성 근처에 묻혀 있던 선생을 고향 영천으로 이장하던 중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아가 주저앉은 곳이 바로 현재의 묘소 자리였단다.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동코스에서 북동쪽으로 보이는 문수산 아래다. 또 한 사람 삼학사에 드는 오달제도 바로 오산리에 묻혀 있다. 참 잊고 지나갈 뻔했다. 역시 오산리 천주교공원묘원에 영면하고 계신 김수환 추기경이시다.   마지막 가시면서 각막까지 이 세상에 남겨주시고 가신 하나님의 사제, 이 시대의 큰 어른이시자 참으로 존경받는 성직자가 여기 계시니 모현의 정신은 용인에 내일까지도 길게 이어지게 되었다.

전통시장과 동네로나마 남은 경안, 참 예쁜 이름

왕산교를 가로질러 북으로 가는 강둑길은 넓은 강폭만큼이나 시원스럽다. 광주 시내로 들어간다. 낮이 되자 추위가 조금은 누그러진 때문인지 자전거들이 둔치로 놀러 나왔다. 광주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옛 이름 경안이 아깝다. 경안은 용인 시내 김량장처럼 아예 중앙동으로 개명해 버린 것은 아니다. 잔치국수가 맛있다는 경안시장에도, 경안동에도 이름이 남아있다. 그나마 중부고속도로 괄호안 경안요금소도 사라졌다. 전라도 광주와 구별하자고 ‘경기광주’ 사자성어가 되었다. 빛 고을 광주(光州)와 너른 고을 광주(廣州)를 한글로는 절대 구분이 불가능하다. 한글전용을 법으로 정하고 있으니 전라도 광주나 경기도 광주나 관형어를 붙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이름이다. 몇 년 전 개통한 광주-원주 고속도로 광고는 민자고속도로답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라디오 광고를 해댔다. 어설픈 성우의 목소리는 ‘쾅주- 원주 고속도로’로 강원도가 더 가까워졌다고 알려준다. 그 성우의 발음은 거의 울음에 가까운 정도로 ‘쾅주’라고 광주를 강조하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는 발음경제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니 경안-원주 고속도로라고 했더라면 경기도라는 설명을 안 붙여서 좋고, 예쁜 이름도 되살아났을 텐데 말이다.

광주(廣州)가 넓은 땅이긴 했다. 지금의 성남시 전역은 광주군 대왕면, 돌마면, 낙생면이었고, 서울 강남의 서초구 일부와 압구정동, 역삼동, 삼성동 코엑스 일대가 모두 광주군 언주면이었다. 송파구가 된 중대면, 강동구가 된 구천면, 하남시가 된 동부읍도 모두 광주땅이었으나 이제 다 떼어주고 말았으니 너른 고을 광주(廣州)라 하기도 뭣하다. 차라리 경안시로 하였으면 얼마나 유서 깊고 낭랑한 이름이겠는가.

338번 지방도로 접어들어 쌍령교를 건너면 강둑길은 아예 없다. 강물이 발아래로 보인다. 초월읍이다. 입에 밴 초월면도 결국은 경부고속도로와 3번 국도를 중심으로 동네마다 빼곡이 들어찬 공장과 창고들 덕분에 늘어난 인구를 이기지는 못했다. 낭만적인 이름의 흔적을 찾으려 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름 석 자, 금자탑 학원의 추억

생뚱맞게 ‘000학원’ 간판이 가로막는다. 이름하여 기숙학원이다. 스스로 자유를 유보했거나 아니면 부모의 강권으로 1년간 유폐된 생활이다. 그래도 흐르는 강물에 지친 눈도 식히고, 무심한 강물의 의미도 떠올리며 공부하라고 이리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건지도 모른다. 이들 학원들도 서울 4대문안에서 학원을 모조리 쫓아낸 강제이주의 한 파편이다. 1970년대 초, 우리가 방학을 이용하여 서울 학원의 족집게 공부 맛을 좀 보려고 들락거리던 곳은 종로2가 뒷골목 공평동의 학원들이었다. 그때도 일류 학원들은 단과로 듣는 뜨내기손님은 사절이었다. 종로학원과 대성학원은 대학입시만큼이나 선발 고사가 까다로워 재수생도 거들먹거렸다. 1년 농사를 지어봤자 쭉정이가 될 부류들은 아예 ‘출입사절’이었다. 그래도 여름·겨울 방학 한철에 등록하는 촌놈들을 받아주는 학원은 어김없이 이름이 석자였다. 금자탑학원과 상아탑학원의 단과반은 3~400명씩 때려 넣고 왕왕거리는 스피커를 통해 성문종합영어나, 수학의 정석을 기초부터 초스피드로 몰아붙였다. 여름과 겨울 방학을 거의 다 투자했건만 모의고사는 별반 성적이 올라붙지 못했다. 후기대학이라도 간 게 천만다행이었다. 재수를 해봤자 ‘내 실력은 내가 안다’고 결행한 포기는 얼마나 현명했던가.

벌써 무갑사거리다. 몇 해 전 우연히 길에서 손을 들기에 태워준 촌노는 대파를 6,000평씩 짓는 대농이었다. 토란을 3,000평씩 지어 추석 녘에 가락시장에 경매로 내다 팔았다.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자신을 태워주었다고 그 고마움으로 계절이 바뀔 때면 채소 갖다 먹으라고 전화해 오는 이종일(80)씨를 한번 보고 가도 좋으련만 벌써 해가 기운다. 겨울 해는 도무지 쓸 데가 없다. 토마토 축제가 열리는 정지리 일대는 긴 겨울잠을 잔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은 경안천에서 가장 넉넉한 자연 친화 공간이다. 강둑에 세워진 조류관찰보호대 언저리는 사람들까지 겨울의 보호색과 완전히 닮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눈이 얼어붙은 데크로는 계절에 관계 없이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으니 심심할 여가가 없다.

붕어찜과 광주분원, 서울사람들 드라이브 코스

광동사거리에서 직진한다. 자연스러우려면 좌회전하여 광동교로 나가야 강물을 만날 수 있으나 이미 걸음을 멈춘 경안천은 팔당호의 일부가 되고 만 터다. 게다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남부의 상수원이다 보니 호반으로도 길이 없다. 온통 삼면이 산이고 그나마 트여있던 강남, 송파, 강동의 벌판은 서울에 떼어 먹힌 지 오래다. 그나마 경안천 언저리에 붙어있던 논밭전지도 팔당호에 죄다 수몰되고 보니 남종면 분원 사람들 해 먹고 살 일이라는 게 서울의 한가한 나들이객에게 붕어찜이나 해서 파는 것밖에 더 있었겠냐는 말이 엄살은 아니다.

분원은 조선조 ‘사옹원분원백자번조소’가 남종면에 있어서 유래된 이름이다. 6개면 30개 리 340여 개의 가마터가 조선 왕실의 백자와 분청사기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큰 규모였는가. 이 또한 여주가 조선총독부 관요로서 주로 생활자기를 생산했고, 이천 도자기가 청자를 중심으로 현대에 들어와 마케팅에 성공하여 이름을 먼저 날린 것에 비하면 점잖게 뒤쳐져 버렸다.

언덕길을 헐떡이며 올라온 것도 팔당호의 거대한 몸피를 보여주는 합수머리가 분원이기 때문이다. 멀리 호수 건너가 두물머리다. 날이 어둡다 벌써, 겨울 해 믿고 있다간 큰일 난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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