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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마스크를 쓸 수 있는 평등한 권리

기자의 눈- 마스크를 쓸 수 있는 평등한 권리

  • 기자명 박관우 기자
  • 입력 2020.03.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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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편집국장

불청객인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죽음이라는 질병의 극한 공포와 함께 우리사회에 여러 가지 질문을 안겨주었다.

의료시스템이 정말 잘 작동하고 있는가? 

위기상황에서 공무원 조직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가? 

공무원조직을 움직이는 선출직 공직자들은 제 역할을 하는가? 

이러한 국가의료시스템에 대한 질문과 함께 시민들에게 가장 민감하게 다가온 것은 마스크 구입에 대한 일이다.

가격이 비싸고 그마저 구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 장에 1000원짜리 마스크는 일단 구하기 어렵고 대부분 3~4천 원짜리다. 한 달이면 12만원, 4인 가족이면 50여만 원이 필요하다. 가계부담이 가능하지 않은 계층이 분명히 생길 수밖에 없는 비용이다.

수급도 문제다. 사고 싶어도 물건이 없어서 살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바이러스 침입을 막지 못하는 의료관계자, 공직자, 상인들부터 면역력이 약한 어린학생과 노인들까지 마스크를 구하는 모습이 마치 빵을 달라고 외치는 프랑스혁명 당시의 파리시민을 연상케 했다.

이 정도 상황이면 “마스크 산업은 국유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볼멘소리가 이상하지 않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쓴 프랑스혁명은 천부인권사상에서 시작됐고 근간은 자유와 평등이다. 개인의 인권은 존엄하다는 이러한 사상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존엄하기 때문에 서로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사회라는 공동체 운영도 어떤 특별한 한 사람이나 소수가 아니라 평등한 다수 인간들의 구성으로 보고 다수에게 선택권을 주는 민주주의로 이어진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은 양면의 칼날처럼 서로 어떤 한 부분이 강조되면 한쪽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재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다보면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의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또 재화에 있어 평등을 강조하면 개인의 능력의 차이가 없어지고 비효율을 초래한다.

16~7세기 네덜란드에서 피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싹은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던 만큼 비타협적인 재화의 독점을 추구하는 자유방임주의를 택했다. 이로 인해 많은 불평등이 일어났고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체제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수정자본주의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대표적이고 영국의 복지국가정책 등이 있다.

우리나라도 초기 극단적인 자유방임주의 시대가 있었고 국가가 통제하는 독점시대를 거쳐 지금은 다시 국가의 개입과 자유방임주의가 혼재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자유방임주의와 수정자본주의가 대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선거를 앞두고 학생들의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시장직을 건 투표를 감행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오세훈 시장의 몰락을 가져왔지만 이 사건은 자유방임주의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반대 진영인 수정자본주의자들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정치인들의 구호는 상대방이나 중간층에게 외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찍는 집토끼부터 결집시켜야 하기 때문에 세게 상대방을 공격한다. 서로 ‘수구꼴통’이니 ‘빨갱이’라느니 하는 정치선동은 상대를 설득하려는 생각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공학적으로 더 선명하게 강하게 부르짖는다. 

성숙한 시민들은 이러한 정치선동에 놀아날 필요가 없다. 양측 주장을 다 알아들었으니 이제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해야 한다.

 예전의 담배와 인삼, 소금처럼 마스크도 전매제도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있는 건지 각 진영마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정치다. 

스코틀랜드가 여성용품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법안을 반대표 없이 통과시켰다. 이제 우리나라도 자유방임주의자와 수정자본주의자들간의 합리적 대안제시가 필요하고 절충이 필요한 사회가 되었다. 

2020년 2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부분 구성원들의 가장 어려운 점은 마스크를 구하는 문제였고 해결 방안은 국가의 개입밖에 없었다. 마스크 없는 자에게 죽음의 공포가 닥치는 상황에서 국가는 무엇이고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자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선동에 놀아나는 유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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