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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둑길6-강원 섬강②영서의 골짜기를 흘러가는 두꺼비 같은 강

횡성 제일의 태기산 산 더덕이 녹아 흐른다는 섬강은 과장이 아니다. 
양두구미재의 구불거림만큼이나 휘감는 감입곡류는 골짜기마다 복주머니 하나씩을 물길 옆에 매달아 놓았다. 
복록을 기원하는 우리네 믿음 한 가운데를 느릿느릿 걸어가는 두꺼비 한 마리, 산협 계곡에 바위로 올라 앉아 물길을 지킨다.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강둑길을 따라간다. 섬강교 버스 추락으로 숨진 부부교사 일가족은 소설보다 더 처절하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잊혀진 전설 그 현장 섬강교로 달려간다. ‘섬강에서 하늘까지’로

=옥산유원지의  호시절은 가고

이즈음 이정표의 기점은 고속도로가 기본이다. 하물며 헬리콥터마저도 고속도로가 장거리 비행의 가장 중요한 노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하면 고압선이 비껴가고, 차량의 미등(테일 램프)불빛은 야간비행에 더 없는 유도등 구실을 하니까.

중앙고속도로 북원주IC 입구에서 섬강 우회길은 끝난다. 강섶으로 다시 접어들면서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가 반긴다 ‘평천상회’다. 지친 길손이 얼음과자 하나 깨어 물고 쉬었다가는 코스다. 주인이 들려주는 가게의 전성기는 옥산유원지가 흥청거리던 때였다. 지금보다 물이 맑았던 시절, 여름날 이 계곡은 원주 사람들로 붐볐단다. 횡성에 공단이 들어서고, 상류에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물빛은 예전 같지 않아 자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나마 섬강 자전거 길이 만들어지면서 오가는 두 바퀴 과객들의 쉼터가 되었다. 호저교에서 바라보는 서편의 길은 하오의 햇살을 받아 빛난다. 그게 무슨 도로이거니 했는데 섬강자전거길을 만들며 낸 데크 교량이다. 거대한 구조물이다. 자전거를 위해 이렇게 강 끝 벼랑에 저 높다란 다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행정이 이미 자연을 보는 눈은 한 차원 올라선 것이다. 이 감탄만으로도 부실로 덜컹거리는 바닥판재에 대한 불만은 잠시 잊을 수 있다. 원주천과 합류하는 이 지점은 섬강 가운데서도 가장 시원한 조망을 주는 곳이다.

장현교를 지나면 자전거길 안내는 송정마을을 지나서 지방도를 가리킨다. 섬강이 그저 꿈틀거리는 게 아니라 심한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생긴 벼랑들이 여기저기서 막아서기 때문이다. 심박 수를 높여주는 구간이 섬강길 중간에 배치되면서 인내심을 실험한다. 그나마 구간이 그다지 길지 않고 차량통행이 뜸해서 다행이다. 송호동을 지나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돼지문화원’이 보인다. 이천 율면에는 돼지박물관이 생겼는데 돼지문화원이란 뭘까, 길섶이니 잠시 들러본다. 마당엔 흑돼지가 꼬리를 돌리면서 아이들과 놀고 있다.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산업에다 문화를 입힌 곳이다. “전국 최초로 돼지를 콘셉트로 하여 가족, 연인, 그리고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레저, 숙박, 교육, 쇼핑의 멀티 복합문화 공간입니다” 안내 카피가 이곳의 기능을 한 줄로 말해준다.

간현역이 있는 지정면 소재지까지는 단숨에 내려간다. 해가 벌써 기울었다. 횡성댐에 주차시킨 차가 문제다. 국가중요시설인 댐의 바리게이트가 쳐지기 전에 자동차를 가져와야 할 텐데. 우선 오늘의 여정은 간현에서 스톱이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맡기고 가야하니 애매할 때는 그래도 24시간 지켜주는 경찰이 제일이다.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가 두어 시간 후에 가지러 올 예정이라 하자, 잠시 후 지정치안센터는 문을 잠그니 문막파출소로 전화하면 즉시 달려와 문을 열어 주겠단다. 구조조정의 여파는 시골치안센터도 단순한 거점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중앙선의 복선화와 간현역의 재발견

한 주일 뒤 토요일, 벌초 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고속도로를 피해 아침 일찍이 간현역에서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간현역은 중년들에게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곳이다. 학생 시절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캠핑을 와서 간현유원지의 모래밭에 텐트를 치고 놀던 곳, 기타와 야전(야외전축)이면 호사스럽게 젊음의 발산이 가능했던 포크송의 합창이 물가의 벼랑에 울려 퍼졌었지. 섬강에서도 지천인 삼산천이 양평 양동에서부터 물을 불려 골짜기를 갉아 만든 서늘한 판대리의 협곡이 섬강의 아우들이다. 중앙선 단선 철로가 복선 전철화 되어 속도를 내며 결국 간현역의 기능은 서원주역으로 몽땅 건네주고 폐역이 된다. 협곡을 감아 돌던 철길은 ‘녹슬은 기찻길’이 되고 만다. 지자체 마다 레일바이크로 재미를 보는데 원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원주레일바이크는 최신판답게 우선 화려하다. 온통 사람의 안간힘으로 가는 다른 곳의 레일바이크와는 다르게 만들었다. 간현역 구간은 7/1,000이라는 약간의 경사가 져 있어 아예 오스트리아제 기관차를 1대 도입하여 ‘풍경열차’를 운행한다. 간현에서 판대역까지 약7km의 구간을 레일바이크와 관광객을 태우고 천천히 구경을 하며 이동했다가 올 때는 각자 레일바이크를 손쉽게 저으면서 내리막길을 달리게 되어 있는 구조다. 이용요금이 만만치 않지만 근처에 새로 만든 소금산 출렁다리의 인기와 함께 서울 기준 반나절 여행권의 명소가 되었다.

지정교에서 출발하자마자 이내 서원주역 부근에 새로 조성된 수변공원을 보며 아쉬움에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야외무대, 정자, 그리고 습지는 거의 지붕을 덮을 정도로 우거진 잡초 속에 애처롭다. 4대강 개발의 졸속 집행이 낳은 또 하나의 살풍경이다. 차라리 민간에 위탁하여 오토캠핑을 겸한 위락공간으로 만드는 게 어떨까. 탓을 하기도 지쳤다.

=문막의 진산, 왕건의 건등산

눈앞에 제법 육덕이 있는 첨산(尖山)하나가 들어온다. ‘건등산’(260m)이다. 왕건이 올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에 담긴 전설이다. 왕건과 견훤이 문막 벌판에서 한바탕 붙을 때 얘기다. 취병산 아래 섬강을 막아 횟가루를 강에 뿌려 흘러내리자 굶주려 있던 궁촌리 견훤산성의 군사들이 쌀뜨물인 줄 알고 먹고 죽는 바람에 견훤이 패했다는 웃지 못할 전설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위장 병법이다. 경기도 오산 독산성 세마대의 전설과도 병참 측면에서 서로 베낀듯하다. “원주는 몰라도 문막은 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 것은 섬강의 수운과 문막 벌판의 식량창고로서의 효용 때문이 아니었을까.

보통 서울 사람들에게 문막은 주말 영동고속도의 귀경길 정체로 기억된다. 서둘러 가기 바빠 길가로 스쳐 지나가는 문막공단의 회색빛 지붕이나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너머 강가의 풍경은 상상이 안 갈 만큼 한가롭다. 아스라이 바라보이던 벼랑은 예고대로 부서진 자전거길로 절대 진입을 금하고 있다.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없다. 노림리 마을을 지나는 49호 지방도로로 우회해서 남한강에 합류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강둑길을 따라온 이들이 마을로 돌아갈 확률은 거의 없다. 모래 트럭이 다져놓은, 강으로 난 길이 손짓하는데 마다할 리가 있나. 지난 여름 물난리의 흔적은 처참했다. 자연의 위력이 공기 단축에 쫓긴 자전거길을 단숨에 찢어 버렸다. 하늘로 고갤 치켜든 철골구조, 거기에 걸린 건초더미, 쏟아져 내린 그 위험하다던 바위. 정말 기약 없이 이 살벌한 현장은 이 가을, 겨울을 넘길게 뻔하다. 로드바이크를 타고오던 사람들은 1km 이상을 강바닥으로 가야 하는 자갈길에 지레 겁을 먹고 돌아가기도 한다. 샥이 튼튼한 산악용이야 이럴 때 제 성능을 발휘하는 털털거림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강섶에서 키보다도 웃자란 갈대숲의 수런거림을 들을 수 있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젊은 부모들이 강변에 텐트를 치고 데려온 하동들의 재잘거림이 적막에 동심원을 그린다.

조용연 여행작가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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