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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가드레일과 과잉보호

여강여담- 가드레일과 과잉보호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19.12.2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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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둑의 높다란 보호 펜스, 과잉보호 행정의 한 단면

말끔한 일본 오카야마의 강둑길, 이용자 스스로 보호토록 해

조용연 주필

남한강을 자전거로 달리며 늘 드는 생각은 참 아름다운 강마을 풍경을 우리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감탄이다. 4대강 사업이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 탁류를 일으키는 문제아가 되어가는 세월에도, 강둑길 자전거 전용로에는 사람이 늘어갔다. 

‘국토종주자전거길’에는 평일에도 외국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일본 종주를 하고 부산에서 올라와 인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는 자전거여행자들이거나 그 반대코스를 택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국토종주자전거길은 SNS를 통해 세계적인 자전거길로 자리 잡았다.

어느 날 자전거길을 걸어가면서 든 생각이다. 문제는 가드레일의 높이였다. 1m20cm에 이르는 가드레일에 갇혀 있는 강둑길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보행자의 가슴까지 와 닿는 사각 목재 펜스는 강과 사람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생겨난 한국적 펜스의 규격은 넉넉한(?) 사업비와 함께 무조건 안전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생겨난 듯 보인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이렇게 무식하게 투박한 4단 가드레일은 없다. 오케이목장의 축사 울타리보다 높은 가드레일은 아무리 봐도 과잉보호다.

그렇다고 강물 쪽이 절벽이거나 위험요소가 커 보이지도 않는다.

자, 가정해 보자. 한 해에 몇 건의 자전거가 멀쩡하게 달리다가 강둑 아래로 떨어진단 말인가. 가드레일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높이면 된다. 오토바이의 대표적 주행로인 경강국도 6호선의 경우에도 가드레일은 최소한이다. 바로 떨어지면 강물이어도 가드레일 높이는 70cm를 넘지 않는다.

지난해 일본 오카야마켄(岡山縣)의 초청으로 자전거 페스티벌이 열리는 요시이가와(吉井川)를 다녀온 적이 있다. 강둑은 아무런 시설이 없다. 심지어는 ‘속도제한’이 얼마라는 둥, 어떻게 조심하라는 따위의 번잡한(?) 표지판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일본의 공무원들이 안전의식이 없어서 거기를 민둥하게 비워놓았을까. 강둑은 철저하게 강변 풍경을 보호하고 있었다. 자전거길이라고 독점적 경계를 긋거나 심지어 중앙선조차도 표시하지 않았다. 딱 하나 하구에서 몇 km 지점이라는 작은 표지가 꽂혀 있을 뿐이었다. 차와 자전거와 사람이 당연히 공존, 공용하는 길이었다. 독일의 라인강 자전거길도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조심하게 만들어 놓는다. ‘과속으로’, ‘추월로’, ‘부주의’로 생긴 일은 스스로 책임질 일이다.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남 탓하고, 관청 탓하는 우리네 행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언제까지 우리는 국민을 ‘과잉보호’ 상태로 어린이처럼 지키고 있어야만 할까.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펜스를 쳐놓고 “내 할 일 다 했다.”는 공무의식은 책임감으로 포장한 무책임에 가깝다. 헌법이 이번에 개정되면 아마도 ‘국민안전권’이라는 단어가 포함될 것이다. 공무원들은 지레 겁을 먹고 여기저기 과잉보호 장구(?)를 온 국토에 덧씌우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아마 자기 돈으로 만드는 강둑길의 펜스라면 높이를 다시 계산해 보았을 것이다. 4대강처럼 예산 돈벼락을 맞지 않았더라면 한 단이라도 더 낮추거나 구간을 줄였을 것이다. 보행기에 태운 아기가 걸음마를 빨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어쩌면 보행기 바퀴에 의지해 천방지축으로 움직이다 뒤집어지기 쉽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배밀이를 하며 기어 다니다 일어선 아기가 튼튼하게 자란다. 국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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