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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43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43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10.2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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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지극한 부드러움이 가장 견고한 것을 뚫고 간다

장주식 작가

중국 당나라 때 승려 혜능(638-713 조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혜능은 일자무식인 나무꾼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총각이었죠. 나무를 팔러 장에 갔다가 승려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됩니다.

 

“자넨 금강경의 핵심이 뭐라 생각하나?”

“글쎄.”

“머무름이 없이 마음을 내라! 나는 이것이라 생각하네.”

“그런가.”

혜능은 희한하게도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와 가슴에 콱 박힙니다. 사실 나무를 하다가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찾아왔던 혜능입니다. 하지만 내가 떠나면 홀어머니는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몸을 붙잡고 있었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혜능은 결국 어머니를 떠납니다.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낸’ 것이죠.

승려들이 머무는 절들을 떠돌아다니다 황매산 절에 머물고 있는 홍인대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홍인은 중국 불교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선종의 5대 종사였습니다. 홍인은 혜능에게 물 긷고 방아 찧는 일을 시킵니다. 그때는 홍인이 나이가 들어 후계자를 지정할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날 홍인이 승려들에게 말합니다.

“내 후계자를 정하겠다. 각자 도달한 경지를 강당 벽에 게송으로 남겨라.”

승려들은 하나같이 신수를 바라봅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수제자 신수가 후계자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으니까요. 역시 하루가 지나자 벽에 신수가 게송(偈頌, 불교 시의 한 형식)을 남깁니다.

내 몸은 보리수요

내 마음은 맑은 거울이라

시시때때 열심히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리라

 

승려들이 웅성거리면서 게송을 보자, 헤능도 옆 사람에게 무슨 내용인지 물어봅니다. 글자를 모르니까요. 내용을 들은 혜능은 자기도 게송을 벽에 남기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 승려가 빙글빙글 웃으며 대신 글을 써주겠다고 합니다. 고맙다고 말하고 혜능이 게송을 읊습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도 드러난 게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어디에 먼지가 앉으리오

 

물지게꾼 일자무식 혜능이 읊은 게송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감탄을 하고 있는데, 홍인이 와서 보고 “웬 쓸데없는 헛소리냐?” 소리치며 신발을 벗어 박박 지워버립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홍인은 혜능을 불러 자기 의발(衣鉢)을 물려주며 후계자로 삼습니다.

홍인은 왜 혜능에게 의발을 물려주었을까요? 혜능의 게송에서 나는 ‘무(無) = 없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신수는 내 몸은 보리수, 내 마음은 맑은 거울이라고 말하지요. 바로 ‘있음’입니다. 그런데 혜능은 본래 ‘한 물건도 없음’이라고 말하지요.   

 여기서 노자의 말을 함께 생각해 보게 됩니다. 노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없음이 틈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

 

창문을 꼭꼭 닫아 두어도 공기는 들어옵니다. 공기는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우리 눈에 보이는 창문은 얼마든지 뚫고 들어옵니다. 마치 ‘세상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뚫는다’는 노자의 말처럼 말이죠.

홍인은 바로 혜능의 그런 경지를 본 것 같습니다. 진정 강함은 부드러움이요 있음의 바탕은 없음이라는 것을 일자무식꾼이라는 혜능이 이미 도달해 있는 경지라는 것을요.

 

요즘 대한민국은 ‘검찰개혁’ 문제를 놓고 떠들썩합니다. 이 소란을 보며 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검찰 권력은 과연 자연스러운 힘이었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억지스러운 힘은 견고함이요, 뻣뻣함이요, 단단함입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합니다. 죽어 있는 것들이 뻣뻣하고 단단한 것이죠.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노자 도덕경 43장 : 天下之至柔(천하지지유)가 馳騁天下之至堅(치빙천하지지견)하며 無有入無間(무유입무간)하니 吾是以知無爲之有益(오시이지무위지유익)하노라. 不言之敎無爲之益(불언지교무위지익)이나 天下希及之(천하희급지)이니라.>

세상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단단한 것을 뚫고 지나가며 ‘없음’이라야 틈 없는 곳에도 들어갈 수 있으니, 나는 이것으로써 ‘함이 없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겠다. 세상은 무위가 유익함을 말없이 가르쳐주지만 세상 사람들 중 그 경지에 도달하는 이는 몹시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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