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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한강4(충주·원주·여주·양평①)

한국의 강-한강4(충주·원주·여주·양평①)

  • 기자명 조용연 /여주신문 주필 
  • 입력 2019.10.0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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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설이 머뭇거리는 남한강의 옛 나루터

산협을 굽이굽이 돌아온 남한강도 탄금대에서 다시 장도에 오른다. 중원의 역사 사이로 더디게 흐르는 물이 여울을 만들 쯤에 목계를 지난다. 장시(場市)가 서던 마을의 영화도 가고 없다. 충청, 강원, 경기가 경계를 이루는 섬강과 청미천 언저리를 지나서도 사람의 발길은 뜸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강가에 부지런히 집을 짓는다. 살아온 날의 신산(辛酸)을 강물 위에 떠나보내려는 듯 반백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삽을 든다. 강의 역사 속 사라진 기억을 더듬은 일은 고달픈 현재에 주는 위로가 된다.

 

=중원의 역사, 그 심장 충주

태백에서 골지천이란 이름으로 발원하는 한강을 달린 지도 햇수로 3년이 지났다. 조양강으로, 동강으로, 충주호로 이름을 바꾸어 내려오던 한강을 탄금대에 올라 바라보며 남겨두었었다. 새봄을 맞으며 민족의 강, ‘한강’의 나머지를 다시 즐기며 가리라 했건만 춥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꺼낼 수조차 없는 2월이 중순이다.

강에서 바라보는 온 세상이 회청색 몽환에 가까우나 목이 ‘싸아~’하다. 대륙 발 미세먼지의 내습이다. 봄날 물안개와는 다른 배경 속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탄금호는 조정지댐이 물을 가두어 생겨난 인공호수다. 우리들 손에 잡히는 역사는 역시 삼국시대정도가 가시권이다. 중원의 쟁패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힘겨루기 결전이었다. 고졸한 탑 하나가 서 있다. 그 옛날 북과 남에서 걸어온 승려가 만나 출발한 날짜를 따져보았더니 한날한시에 같이 출발했단다. 그래서 이곳을 바로 ‘국토의 중앙’이라고 했다는 전설이다. ‘중앙탑’으로 사실상 개명한 ‘탑평리7층석탑’(국보6호)은 아예 가금면이란 행정단위도 ‘중앙탑면’으로 고쳐버렸다.

지척에 귀하디귀한 충주고구려비(국보205호)가 있다. 1979년에 충주 향토문화단체인 ‘예성동호회’가 예사 비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기 전만 해도 마을에서는 그저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비는 영험한 돌이거니 했지 고구려 장수왕이 세운, 귀한 존재인 줄 꿈에도 몰랐다. 충주박물관이 바로 중앙탑 앞에 들어섰고, 국립박물관으로 승격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술박물관‘리큐리움’까지 들어 있어 중앙탑사적공원은 대충 둘러보아도 반나절은 가져야 할 것이다. 게다가 국제경기까지 열리는 조정경기장이 붙어 있어 훈련하는 모습만 지켜보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목계장터, 신경림을 키운 저자거리

중앙탑에서 조정지에 이르는 강변은 벚꽃이 피는 철이면 길 따라 굽이치는 벚꽃의 열병만으로도 제몫을 다한다. 하지만 남한강의 서정을 제대로 불러일으킨 유공은 누가 뭐래도 시인 신경림의 몫이다. 그는 1935년 충주시 노은면 보련산(764m)자락에서 태어났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충주IC에서 동쪽으로 건너다보이는 제일 높은 산허리는 온통 광산이었다. 검은 석탄이 아니라 그야말로 황금을 캐는 금광마을이었다. 금광이란 허망하기도 하고, 한몫 잡기도 하는 것이어서 덕대(광산하도급업자)와 연상(鉛商)들의 허세와 낙담이 질펀한 색주가의 젓가락 장단과 더불어 밤이 깊어가곤 했다. 그런 저자 거리의 풍경 속에서 세상을 향한 눈을 뜨고, 소풍 가던 목계솔밭과 장터의 풍경은 오롯이 시인의 가슴에 들어와 언어로 형상화 되었다.

강원도의 뗏목뿐만이 아니라 밀물 때 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가 만드는 강장(江場), 갯벌장이 모래강변을 달구었다. 정해진 날도 없이 소금배가 오는 날이면 닷새고 이레고 장이 열렸고, 새우젓은 물론, 직물, 약을 비롯한 여러 물목들이 강원도로 경상도로 등짐장수들에 실려 오고 갔다. 그의 나이 44세에 낸 시집 <새재>에 실린 <목계장터>는 되돌릴 수 없는 서정을 문자로 박은 한 시대의 문신이다.  

하늘은 날 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 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 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 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 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 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계장터 전문>

6. 25 난리 통에 장미산성 기슭에서 본 한강, 비행기의 기총소사로 뒤집히는 배와 허옇게 떠내려가던 무고한 목숨에 대한 목격은 그의 많은 시를 진혼의 노래로 이어지게 한 신내림이었을 것이다. 1990년 <강마을의 봄>을 노래하면서도 그는 봄을 눈 틔우는 버들강아지를 볼 겨를도 없었다. 비행기 사격훈련의 표적이 된 가흥 앞 모래섬에 눈이 머문다.

장미산 쪽 가흥도, 강 건너 목계도 이제 한 시절의 영화는 그림자도 찾기 어렵다. 그저 한국의 대표적 수석 산지였음을 증명하듯 온통 강바닥을 훑어 온 듯 수석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자연의 축소판을 완상하는 취미가 골동에 연결되는 것은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최근에는 고서화를 비롯한 옛것들을 취급하는 거래상들이 모여들어 가게 문을 열었다. 앙성 온천 몇 군데가 몰려있는 능암에는 아예 고서화를 비롯한 골동품 경매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여전히 신경림의 시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명품 비내강변길은 자전거에서는 내려서 걸어가라고 요구한다. 갈 길이 바쁜 ‘국토종주자전거길’은 벼슬바위 앞에서 앙성천을 따라 능암온천까지 올라가 조대고개를 넘어 우회해야 한다.

=비내섬, 손대지 않은 자연 30만평

마을마다 유래가 없는 곳이 없지만 조대마을도 30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조정에서 고관을 지낸 김익창(경주 김씨)이 낙향하여 낚시로 세월을 보내자, 그를 아까워한 우암 송시열과 미수 허목이 찾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오라 권했다. ‘洞江七里灘 富靑山釣垈’(마을 앞 강 곳곳이 여울이고, 산수마저 넉넉하니 사방이 낚시터)란 시로 완곡히 거절하고 이 강변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다. 그 흔한 점방 하나, 음식점조차 없는 길을 30리가 넘게 달려오다가 만나는 조대슈퍼라는 삐뚤빼뚤한 글씨와 아이스 바 하나의 맛을 오래된 자전거 꾼들은 기억한다.

비내섬은 미군의 훈련용지로 쓰이는 나라 땅이지만 훈련이 없을 때는 빗장을 잠그지 않는다. 30만평의 땅이 원시상태로 있다 보니 수없는 역사드라마의 단골 촬영지가 될 수밖에 없다. 카메라 웍을 조금만 신경 써도 완벽한 삼국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사극뿐이 아니다. 인적 없는 황량한 강의 풍경이 필요한 현대극에도 이만한 무대가 없다. <근초고왕><수백향><광개토대왕><징비록><정도전><전우치><육룡이 나르샤><서부전선>등이 모두 비내섬 갈대숲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조천리(釣川里)에 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훈련이 있는 날에는 머리 위로 날아서 뜨고 내리는 헬기의 굉음으로 강마을의 정밀(靜謐)이 철저히 부서진다. 우연하게 비내섬 입구에 자리를 잡고 몇 해를 지나왔다. 딱히 할 일도 없는 은퇴자의 로망을 그리며 ‘글이나 써보자’는 허영으로 잠시 머문 거다. 이 강마을 사람들은 참 유순하다. ‘미군 헬기는 떠나가라‘고 악을 쓰는 그 흔한 핏빛 플래카드 하나라도 걸렸을 법하지만 눈 씻고 봐도 그런 건 없다. “우리 마을 떠나 어디 가서 그런 훈련을 하겠냐”는 분위기다. 쓸데없는 텃세 따윌 부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서툰 삽질로 텃밭에 두둑을 만드는 신출내기가 안쓰러웠는지 밭을 갈러 가던 트랙터를 끌고 들어와 한바탕 쓰윽 갈아엎어 주고 가는 인심이 살아 있다. 파뿌리의 질긴 생명력과 온갖 병충해의 종결판인 고추농사의 고약한 맛도 가르쳐 준 강마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경운동권의 힘을 과시하는 플래카드가 앙성과 강 건너 소태면 주민의 이름으로 걸리면서 이런 평온도 그리 길지 않을 듯 싶다.  

□한강(충주-양평 구간의 지류하천)
-국가하천: 섬강, 청미천, 복하천( 제1지류)
-지방하천: 한포천, 운계천, 금당천, 곡수천, 양화천 등 제1지류 24개, 제2지류 하천19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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