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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편집국
  • 입력 2019.08.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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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담백하여 맛이 없는 듯하다

장 주 식 /작가

객지에서 자취하는 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은 늘 ‘집밥’이 그립습니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가 불러도 어딘가 허기가 남아 있습니다. 집밥이 식당보다 맛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쌀밥 한 공기에 된장국과 김치만 있어도 집밥을 먹고 나면 든든합니다. 

집밥은 식당밥보다 담백합니다. 손님을 끌기 위한 특별한 조미료가 없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식당밥은 나그네가 먹습니다. 나그네가 잠시 머물러 가는 곳이지요.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즐길 거리와 맛 좋은 음식은 손님을 잠시 머물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머물게’ 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잠시 머문다는 건 곧 떠나감이 전제되어 있는 말입니다. 집이 아닌 것이죠. 그런데 잠시 머물게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상당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맛 좋은 음식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손님은 까다롭습니다. 눈에 차는 게 없고 귀에 들리는 게 즐겁지 않거나 코를 자극하는 맛이 없으면 그냥 지나쳐버리는 거죠. 아주 찬바람이 ‘쌩’하게 부는 겁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담백하여 맛이 없다고 합니다. 당연히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즐길 거리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맹물 같다고나 할까요? 만약 노자가 말하는 ‘도’와 같은 잔치가 있다고 해요.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도 파리만 날리기 쉬울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요즘 지방마다 시골마다 열리는 축제는 요란합니다.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쉼 없이 풍악이 울리고, 맛 좋은 냄새가 사방에서 풍기며, 보기 좋으라고 현란한 쇼가 펼쳐집니다. 사람들 이목을 끌어 머물게 하려는 수단들인 거죠.

그런데 이런 축제를 노자는 ‘작은 그림’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형상화하면 작은 그림이 됩니다. 그 그림은 누구나 쉽게 파악이 되고 그 이면에 깃든 깊은 맛이 당연히 없습니다. 작은 그림은 또한 바로 눈에 보이는 이익을 좇아 그리는 그림입니다. 바로 주어지는 이익이 없다면 그림 자체를 그리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서 노자는 ‘큰 그림’을 이야기 합니다. 한자로는 ‘대상(大象)’인데요.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큰 코끼리’입니다. 실제로 큰 코끼리를 그리라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 그러니까 어떤 형상을 생각하되 크게 보라는 것입니다.

큰 코끼리, 큰 그림을 노자는 ‘도’라고 봅니다. 이 도를 잡고 있으면 온 천하 사람들이 다 알아서 온다는 겁니다. 눈, 귀, 코, 입을 자극하여 부르지 않더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과연 이 큰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그게 참 궁금합니다.

첫째 큰 그림은 아무런 맛이 없어 담백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좀 해 보다가 ‘집밥’을 떠올렸습니다. 손님이 올 때 내놓는 밥이 아니라 일상 먹는 밥. 최대한 조미료는 자제하고 반찬도 수수하게 몇 가지. 그런 밥이 집밥입니다.

 

다만 집밥에는 집밥에 어울리는 조건들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환하게 웃는 가족이 같이 있어야 하는 거죠.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나 아버지. 숟가락을 놓는 누나나 동생. 물을 떠 놓는 나. 그렇게 함께 차린 밥상에 둘러앉아 먹는 밥. 그게 바로 집밥입니다. 이 밥에는 어떤 조미료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이 들어 있게 됩니다.

 

다시 앞의 축제 얘기로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집밥 같은 축제’는 없을까? 온갖 조미료가 맛을 자극하는 밥이 아니라 담백한 집밥 같은 축제. 분명히 있을 겁니다. 도자기 축제인데 도자기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눈과 귀와 입을 즐겁게 하려는 쇼만 가득한 축제. 산나물 축제인데 산나물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즐길 거리만 가득한 축제. 이런 축제는 담백한 맛을 주진 못합니다. 그냥 똑같은 조미료로 버무린 비슷한 맛만 냅니다. 축제 이름에 도자기와 산나물을 서로 바꿔도 관계없을 정도로 말이죠.

축제에 사람이 오지 않을 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큰 그림 곧 담백한 맛을 지키고 있으면 막아도 사람들이 몰려올 테니까요.

 

<노자 도덕경 35장 : 執大象(집대상)하라. 天下往(천하왕)하리라. 往而不害(왕이불해)하며 安平太(안평태)하리라. 樂與餌(락여이)는 過客止(과객지)하지만 道之出口(도지출구)는 淡乎其無味(담호기무미)하여 視之不足見(시지부족견)이요 聽之不足聞(청지불족문)이나 用之不足旣(용지부족기)하리라. >

 

큰 그림을 그려라! 천하가 찾아오리라. 온 세상이 다 와도 아무런 해도 없으며 모두 편안하고 평화롭고 태연하리라. 즐길 거리와 맛 좋은 음식은 손님을 잠시 머물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도는 밖으로 나와도 담백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 보기에 볼거리가 충분치 않고 듣기에 들을 거리도 만족스럽지 않지만 써보면 그 맛이 다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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