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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3.2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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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가르치려고 하지 말거라

장주식 작가

한 가족이 단란하게 저녁식사를 합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난 뒤 차를 마시다 갑자기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대학에 갓 들어간 딸이 한 말이 시작입니다.

“자기개발서도 괜찮은 부분이 있던데?”

“응? 이런. 자기개발서를 좋게 본다고?”

아빠가 깜짝 놀라서 되묻습니다.

“아니. 괜찮은 부분이 있다는 거지.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들과 절실하게 어울리는 부분이 있더라고.”

“큰일이네. 너 왜 그렇게 속물성을 갖게 되었니. 안타깝다.”

아빠가 고개를 흔듭니다. 딸은 아빠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반박합니다.

“속물성이라니? 아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도 자기개발서 같은 책은 극혐이야. 좋다는 게 아니라고. 다만 어쩌다 보니 괜찮은 부분도 있더라는 거지.”

“괜찮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위험한 거야. 괜찮다고 생각하다보면 인정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그러는 거지. 그러다보면 점점 속물이 되어가는 거고.”

딸이 고개를 흔들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게 아니라니까. 왜 아빠 생각대로만 주장하는데? 아빠는 자기개발서를 쓰레기라고 딱 규정해 놓고 있잖아. 지금.”

“그럼 쓰레기 아니고 뭐니. 성의도 없고 돈만 벌겠다는 기획으로 만드는 책이잖아. 자기 삶은 전혀 그렇지도 않으면서 누군가 평생 삶 속에서 일구어낸 한 마디 명언을 마치 자기 것처럼 써 먹는 게 얼마나 가증스러워.”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자기개발서의 그런 점은 싫어. 난 단지 자기개발서도 괜찮은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옆에서 논쟁을 듣고 있던 엄마가 한마디 합니다.

“괜찮은 부분이 있다면, 그 책은 이미 자기개발서 범주를 넘어선 게 아닐까? 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아빠와 딸이 잠깐 말을 멈춥니다. 서로 말하려고 다투는 중이었는데 말이죠. 조금 뒤 딸이 말합니다.

“엄마 말이 일리가 있네.”

자, 이 일화에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딸은 아빠에게 신뢰를 가질까요, 엄마에게 신뢰를 가질까요? 제가 보기엔 엄마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빠는 딸을 가르치려 들기 때문입니다. 반면 엄마 말을 보세요.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니라 동의를 구한다거나 제안하는 형식을 취하는 등 충분한 여지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내 생각만 옳고 내 생각만 주장하는 방식이 아닌 것이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대화중에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내 말만 일방적으로 하려 드는 건 아닌지. 상대방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내가 할 말을 생각하는 건 아닌지. 상대방 말에서 흠만 잡으려 드는 건 아닌지. 만약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면 상대방 말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건 가르치려드는 태도입니다. 내가 ‘학생의 자리’에 있을 땐 어쨌든 ‘선생의 자리’ 보다는 수용하려는 태도가 더 강합니다. 어떤 큰 스승이 제자를 하산시킬 때 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배움을 크게 이룬 수제자가 세상으로 나가면서 스승에게 묻습니다.

“스승님. 제가 세상에 나가 조심해야 할 것을 하나 알려주십시오.”

스승은 짧게 한 마디 했답니다.

“남을 가르치려들지 말거라.”

스승이 한 말은 곱씹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노자도 말합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말을 귀하게 여긴다.’고 말이죠. 공을 이루고 일이 완성되었을 때 사람들이 다 ‘내가 그렇게 했다’하고 말하더라도 지도자는 아무 말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그 일을 이루는데 절반이 넘는 공을 세웠다고 해도 말입니다. 말을 귀하게 여기는 그 태도가 곧 신뢰를 얻는 길입니다. 믿음을 뜻하는 신(信)이라는 글자 자체가 ‘사람다운 말’ ‘말을 하면 꼭 지키는 사람’을 뜻합니다.

<도덕경 17장 : 太上(태상)은 下知有之(하지유지)요 其次(기차)는 親而譽之(친이예지)요 其次(기차)는 畏之(외지)요 其次(기차)는 侮之(모지)하니라. 信不足焉(신불족언)이면 有不信焉(유불신언)하니 悠兮其貴言(유혜기귀언)이면 功成事遂(공성사수)를 百姓皆謂我自然(백성개위아자연)하니라.

가장 좋은 지도자는 사람들이 그 존재만 알뿐이다. 다음은 가까이 여기며 칭송하는 자이며, 다음은 두려워하는 자이며, 다음은 업신여김을 당하는 지도자다. 서로 신뢰가 부족하면 불신만 있을 뿐이다. 지도자가 신중하여 말을 귀하게 여기면,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완수된 뒤 백성들이 모두 ‘내가 그렇게 했다’라고 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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