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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깨어있는 시민일까?

누가 깨어있는 시민일까?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3.2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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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목사 여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한국전쟁 이후 혼란의 시기에 온통 반공(反共)에 대한 교육 일색이었다. 당시 그것을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필자의 담임선생은 강원도 산골에 무장공비가 침투했는데 한 어린 학생이 그들 앞에서 당당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말해 끔찍한 죽임을 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랑스런 반공의 어린 영웅이 되었다. 그렇기에 종아리를 맞아가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것도 감내했다. 교과서에는 북한군의 얼굴은 광대뼈가 튀어나온 늑대 같은 모습이었고 실제로는 북한군은 그런 괴물 같은 사람들이라 믿었다. 군에 입대했다.

1979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방송이 나오며 우울한 장송곡이 계속 흘러나왔다. 비상령이 선포되고 부대 연병장에는 각종 화기와 탄약을 실은 군용트럭이 정렬되었고 완전 무장을 한 채 취침 시에도 군화를 벗지 않고 출동 명령만 기다렸다. 얼마 후 전라도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갑자기 군사 훈련은 ‘충정교육’이라는 것으로 달라졌다. 착검을 하고 여러 가지 대형을 만들며 총검술을 하는 시위진압용 교육이었다. 시위현장에 투입되었다. 공격하고 방어해야 할 적(敵)은 시민들과 동 시대의 대학생들이었다. 순간 분노가 치밀었던 기억이 난다. 군인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그 중에는 일부 마치 인민군을 마주하듯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동료도 있었다. 전역을 하고 누구나 그러하듯이 예비군 훈련을 오랫동안 받았다. 이것은 비단 필자만 겪어온 여정은 아닐 것이다. 시대는 달라도 60대 이상의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런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본다.

얼마 전 TV뉴스에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사람이 광주 법정에 37년 만에 출두하는 모습을 보았다. 90세가 다 된 나이에도 건강한 모습이었다. 기자들과 몸이 닿자 ‘이거 왜 이래’하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있었고 이미 대법원에서 중죄를 선고 받았던 사람으로서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나는 아무 죄가 없다는 언어와 몸짓을 했다. 그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일까? 잠자는 척 하는 것일까? 한편 카메라는 법원 앞의 한 학교 건물을 비추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이 반, 저 반 창문을 열고 ‘000을 구속하라!’고 두 주먹을 쥐고 그를 향해 외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두 장면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저 학생들은 깨어있는 어린 시민일까? 마치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 반공(反共) 교육을 받으며 ‘공산당이 싫다’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했던 것처럼 저 아이들도 ‘5.18 광주 민주항쟁’이라는 일방적인 교육을 받아서 저렇게 외치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하루가 지난 후 ‘자유연합’이라는 단체가 바로 그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교장과 교사들이 중립적인 위치에서 교육을 하지 않아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였으니 징계하라는 퍼포먼스였다. 저들은 깨어있는 시민일까? 혼란스럽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어릴 적 교육은 그래서 특히 더 중요하다. 시대의 아픔을 경험한 광주라는 도시에서 부모들로부터, 부모들의 부모들로부터, 선생님들에게 진지하게 들어서 인지된 확고한 의식이다.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더구나 영화 ‘1987’의 주인공 고(故) 이한열 열사가 그 학교를 졸업한 그들의 선배라면...

요즘 여주에서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환경적인 문제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는 모습을 본다. 몇 년 전에도 산북면이나 금사면의 두 마을이 신경기변전소 후보지역으로 선정되었을 때 해당 지역주민들은 심각한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투사가 되었고 결국 승리했다. 거대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기절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밀양의 할머니들은 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살았던 순박한 국민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잠을 깰 수밖에 없던 것이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했다고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생존권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라고 했다. 깊이 공감하는 말이다. 한편 그와 사상을 달리하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그의 저서 ‘당랑의 꿈’ 출판기념회 초대의 글에서 ‘깨어있는 국민이 자유 민주주의를 지킵니다’ 라고 했다. 그 말에도 깊이 공감한다. 서로 같은 말을 하는데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지금 정 반대의 길을 향해 가고 있다. 한 나라에서 살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신봉하며 살자고 하는 사람들이 현실 인식에서 확고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우려가 된다. 미래의 주인이 될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누가 깨어있는 시민일까? 여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으나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고 한다. 누가 잠자는 사람이고 누가 잠자는 척 하는 사람인지 오늘 밤도 그 생각에 잠을 설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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