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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되어야 할 일제 잔재

청산되어야 할 일제 잔재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3.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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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중 서예가

 

삼일 만세운동 100주년이라고 이 나라 방방곡곡이 시끄럽다. 하지만 왜놈이 물러간 지 70년이 넘었어도 광복이라고 기념식만 하고 구호만 외쳤지 그들이 남기고 간 더러운 유물들은 자랑스럽게도 우리들 머리 위에도  붙어있고 마을 골목에도 늘어서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의 위정자들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국회의장의 약하디 약한 말 한마디를 불경스럽다고 대거리를 해댄다. 아마도 그들의 심중에는 한반도가 지금도 식민지이고, 남북한 민중은 자기들이 징용 잡아가고 정신대 보내던 그 시절, 그 백성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그러한 정신상태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70년 동안 그들이 짜놓은 왜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며 남북이 싸우고 동서가 대립하고 그들이 후대하며 부렸던 일제 부역자들이 정치, 경제, 문화계의 지도자로 우뚝 서서 민족주의 인사들을 짓밟으며 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남기고 간 마을 이름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까..........

1947년 3월 종로 경찰서에서 왜놈 순사보다 몇 배나 악랄했던 노덕술이 일제 강점기 김구 주석보다도 현상금이 높았던(백범 60만 원, 약산 100만 원 * 지금의 300억 원) 조선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뺨을 때리고 고문하는 일이 벌어지니 약산은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3일간 통곡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약산은 월북하고 밀양에 남았던 형제자매와 친척들은 빨갱이로 몰려 총살되거나 고문을 받아 그야말로 멸문지화를 당하였으니 이러한 현상이 시골 마을 구석구석 비일비재하였다. 제2, 제3의 노덕술이 해방 조국의 안방을 차지하였고 그 2세와 3세들이 70년 세월 동안 양지에 앉아 일제 잔재의 청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수원에서 화성행궁을 복원할 때 신풍초등학교 동문회에서 학교 이전을 반대하여 복원공사가 지체되는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보며 청산작업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1914년 4월 1일 여주목이 여주군으로 바뀔 때 함부로 지어진 이 땅의 지명부터 전부 바꿀 것을 제안한다. 총독부의 하명을 받들어 유치원 아이들이 친구의 별명을 지을 때 보다 더 쉽게, 오로지 식민통치에만 유리하도록 아무렇게나 지어놓은 지명들을 100년 만에 스스로 바꾸자는 것이다.

고도의 인문학적 소양과 역사성, 자연지리의 형상을 토대로 지명을 지어 국가기록, 향촌기록, 문중기록, 개인기록에 촘촘히 적고 읽고 하던 것을 밀가루 반죽하듯 합하고 나누고 주물러서 上中下, 大中小, 內外, 前後, 左右, 東西南北, 1.2.3.4里등으로 이름 지어 부르고 사용하기에 간편하고 쉽다면서 조선의 근대화를 자기들 손으로 이루어 주었다고 강변한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동면, 서면, 상리, 중리, 하리가 지천으로 생겨났고, 집집마다 딸이 태어나면 뒤에子를 붙여 미자, 순자, 옥자, 영자가 한 반에도 몇 명씩이나 되곤 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너무 쉽게 작명을 하다 보니 여러 마을을 묶으면서 한자(漢字) 한 글자씩을 모아서 (예:文岩洞+早章洞=文章里)이름 짓고 부근의 마을은 아예 이름을 없애고 숫자만 붙여서 번도리는 번도1,2,3,4,5리까지, 복대리는 1,2,3리까지 만들고 고유 지명인 안양촌, 독골, 석계울은 무시되었다.

또한 지금은 산북면 명품리가 된 하품리 사람들은 애당초 상품과 하품이 바뀌었다고 근 100여년을 서로 우기다가 기어이 명품리로 개명했고 그 과정에서 하품2리 지역은 원래 지명인 주어리를 택하였다.  이 얼마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가?

이웃 고을을 돌아보자.  원주시내의 구(舊)도심을 걸어가다 길을 물어보면 A도로, B도로, C도로 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들이 주둔하면서 파괴된 도시를 정비할 때 지도위에 표시한 것이 그대로 쓰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77년에 주민 공모를 통해 A도로는 원일로, B도로는 중앙로, C도로는 평원로라는 근사한 새 이름을 얻었건만,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젊은이들까지도 도로 명을 혼용하고 있으니 이웃 동네일이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원주 땅 부론에는 손곡리가 있고 손곡초등학교가 있다. ‘손곡’은 조선시대 뛰어난 시재(詩才)로 서얼의 신분을 뛰어넘어 최경창, 백광훈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추앙받으며 허균과 난설헌을 걸출한 문사로 길러낸 이달(李達:1539~1612)의 호이다. 손곡은 충청도 홍성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가 작은 벼슬도 하고 당대의 문사들과 교류하며 활동하다가 이 마을로 내려와 호를  ‘손곡’으로 하고 은거하며 시작(詩作)과 후학 훈도에 전념하였다. 1950년 3월 이 마을에 하교를 세우면서 교명으로 ‘손곡’을  사용하였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 운동장과 마을 동구에 손곡의 시비(詩碑)가 서 있으니 손곡리 마을길을 걷노라면 논두렁을 깎는 농부님 네도 모두 시 한 수씩 지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달’은 오늘날까지 손곡리에 살아 숨쉬고 ‘손곡리’는 ‘이달’이라는 옛 시인으로 인하여 외지 사람들도 다 알아주는 명소가 되었으니 지명을 어찌 上中下나 東西南北으로 의미 없이 지어 부르랴! 또 다른 이웃인 이천 땅에 증일동(增溢洞)이 있다.  옆에 ‘진리’라는 마을이 있기에 ‘증1리’인줄 알았는데 增溢洞이라는 것을 후에 알고는 많이 놀랐다.  지금의 그 곳에는 시청, 경찰서, 세무서, 아트센터 등이 들어섰고 아파트가 많이 지어져 있어 정말 더하고도 넘치는 마을이 되었으니 옛사람들이 앞날을 미리 알고 지은 것은 아닐까 새삼 궁금해진다.

여주로 돌아와서 우리네 땅이름을 한 번 둘러보자. 능서, 북내, 산북에다 상리, 하리, 하거리, 후리, 상품리, 하품리, 상백리, 상대리, 하다리, 하귀리 등……. 부르기 쉬고 쓰기 쉬울지는 몰라도 깊은 의미가 없고 전국 여러 곳에서 너무도 흔하게 쓰이는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공무원들이 지도만 보고 마구 마구 지어놓은 졸작이다. 몇 년 전 공모를 통하여 지였다는 중앙동도 우리의 옛 지명에는 거의 없는 왜색이 짙은 불쾌한 작명이다. 전국의 중앙동을 모으면 수 십 개도 넘을 것인데 그 중에 1914년 이전부터 부르던 곳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 편, 부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우리말 이름으로는 모래실((점동면 사곡리), 부처울(흥천면 계신리), 갈매(강천면 간매리), 부라우(단현리), 쑥디(가남면 연대리), 새미실(능서면 신지리), 실앗(흥천면 내사리), 신털이봉(북내면 상교리) 등이 있다.

정갈하고 뜻 깊은 한자 지명으로는 △간매리(看梅里)-- 매화를 본다.  봄.   희망을  상징 △청안리(淸安里)-- 맑은 정신, 편안한 생활 △장흥리(張興里)--오래도록 흥성하라 △연대리(蓮臺里)-- 연꽃처럼 생긴 마을 △월송리(月松里)-- 북성산 솔밭에 달이 뜬 풍광 △갑동(甲洞)가업리-- 제일의 마을, 최고 마을이라는 자부심 △이호(梨湖),이포리-- 배꽃이 핀 아름다운 포구 등이 있다.

바뀌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 ‘국민학교’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모두 ‘초등학교’라고 말한다. 전라북도 익산시를 누가 이리시 라고 부르는가? ‘이리’라고 부르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쳐다볼 뿐이다. 바꿀 때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몇 해 전 ○○면에서 산위에 정자를 지어놓고 이름을 정할 때,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몇 명이 모여서 거수로 결정했다는 말을 듣고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세종시가 생기기 훨씬 전인 2001년 필자는 여주군을 세종군으로 바꾸고 능서면은 효종면, 북내면은 목은면, 점봉초등학교는 명성초등학교로 개명하자고 지역신문에 글을 썼었다. 그 글을 읽은 어느 높으신 분이 부르더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다니느냐, 그러니까 젊은 놈이 머릿털이 다 빠지는 거여” 하며 아주 많이 못 마땅해 하던 일이 생각난다. (만약 그 때 세종군으로 바꿨더라면 세종시는 언감생심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義旺市(의왕시), 仁旺山(인왕산), 旺垈里(왕대리)의 旺(왕)에서 日자를 떼어내고 義王市, 仁王山, 王代里로 다시 쓰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는 말인가..... 몇 년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제발 왜놈들이 너무 쉽게 고쳐버린 우리땅의 이름을 조상들이 불렀던 의미심장하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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