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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2.18 09:11
  • 수정 2019.02.1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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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배를 채울 건가 눈을 채울 건가

장주식 작가

갑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위 나 권력이나 돈에 기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계급질’이라는 건데요.

어떤 재벌가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녀가 한 행동이 세간에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소녀가 자신을 위해 운전하는 50대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퍼부었다는 겁니다. 운전기사가 제보한 내용에 ‘때리기도 하고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르기도해서 교통사고 날까 불안하더라고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전기사 녹취가 세상에 알려지자 소녀 아버지는 책임을 지고 회사대표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딸을 잘못 가르친 벌을 대신 받겠다는 것이죠. 이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모 방송사 기자가 갑질 대신 ‘계급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느낀 것은 이미 그들은 갑질을 넘어 자신들이 이 나라의 특권계층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일반 서민들을 맘대로 부려도 되는 계급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은 갑질을 넘어 계급질이라고 해야 맞다.”

소녀는 집안사람들이 하는 언행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웠을 겁니다. 기자 말처럼 자신들의 계급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 말입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런말을 합니다.

“타고난 인성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습관에 따라 점점 멀어진다.”

멀어진다는 말은 ‘달라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인간이 타고난 성품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태어나고 보니 가정이 부유하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지위가 높기도 하고 지위가 낮기도 합니다. 태어나고 보니 왕자이기도 하고 거지이기도 합니다.

노자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떤 습성을 익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먼저 온갖 화려한 색깔에 현혹되면 눈이 멀어진다고 합니다. 노자는 목맹(目盲)이라고 하는데요, 이 글자를 뒤집으면 맹목이됩니다. ‘맹목적’이라는 말을 우리가 씁니다. 한마디로 눈에 뵈는게 없다는 뜻이지요. 소녀가 운전기사에게 무례하게 한 언행을 보면‘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둘째, 온갖 소리에 사로잡히면 귀가 멀어지고 온갖 맛에 빠지면 입이 망가진다고 진단합니다. 이른바 상류사회라고 하는 재벌이나 지위 높은 사람들이 식사할 때 보면 연주자들을 불러다 놓고 음악을 연주하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음식도 산해진미가 가득하죠. 그런데 그런 장면을 보고 노자는 ‘귀 먹고 입 망가진’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귀가 먹었으니 남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입이 망가졌으니 말을 함부로 하게 됩니다.

셋째, 총 들고 사냥질 해대며 귀한 재물을 가득 쌓아놓았으니 사람다운 좋은 행실을 아예 글렀다고 봅니다. 서양 부자들이 아프리카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수백만 달러를 들여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 위해 죄 없는 동물들을 학살하는 거죠.

이제 갑질을 넘어 계급질 까지 도달한 이 비뚤어진 사회습성을 어찌하면 좋을 까요? 노자는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말라’는 해법을 제시합니다. 배는 내 몸을 기르는걸 말합니다. 눈은 온갖 색깔, 온갖소리, 온갖 맛 등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빠지면 겉치레일 뿐인데 그것이 본질이라고 오해하게 되죠. 내 살과 내 뼈를 건강하게 기르며 사람다운 삶을 추구할 뿐 겉치레에 현혹되지 말라는 겁니다.

하지만 너무나 화려한 색깔, 소리, 맛이 주변에 널렸는데 어떻게 거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상류사회에서 생활하는 재벌가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위치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다운 본질을 못 보게 유혹하는 것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노자 도덕경 12장 : 五色(오색)은 令人目盲(령인목맹)하고 五音(오음)은 令人耳聾(령인이롱)하며 五味(오미)는 令人口爽(령인구상)하고 馳騁畋獵(치빙전렵)은 令人心發狂(령인심발광)하며 難得之貨(난득지화)는令人行妨(령인행방)이라. 是以聖人爲腹(시이성인위복)하며 不爲目(불위목)하니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하니라.

온갖 화려한 색깔은 사람 눈을 멀게 하고 온갖 꾸민 소리는 사람 귀를 먹게 하며 온갖 좋은 맛은 입을 망치고 말달리며 하는 사냥은 사람마음을 미치게 하며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좋은 행실을 방해한다. 그리하여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위하지 않으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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